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타인의 얼굴>이라는 제목부터 주는 의미가 남달라 보인다. 보통 얼굴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자신의 거울이자 타인과 소통하는 첫번째 연결 통로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즉, 우리가 첫인상을 대하듯이 말이다. 바로 이런 얼굴에 대한 주제를 다룬 이야기 <타인의 얼굴>은 바로 '일본의 카프카'라 불리우는 '아베 고보'가 1960년대 썼던 이른바 '실종 삼부작' 시리즈중 두번째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은 그를 유명한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 대표작 <모래의 여자>이고 세번째 작품은 <불타버린 지도>다. 

여기 두번째 실종을 다룬 문제작 <타인의 얼굴>.. 여기서 말하는 실종은 형체적 의미로 눈에 안보이는 실종이 아닌 인간 존재에 관한 즉, 형이상학적인 실존의 상실 문제를 다룬 이야기다. 그래서 사실 쉽지 않다. 일반 소설처럼 대화체가 드물고 오로지 자신과의 이야기를 무수히 나누고 성찰하며 수기형식으로 쓴 그런 소설이다. 그러다보니 읽는 내내 우리 영화 올드보이를 보듯이 그가 외친 "넌 누구냐?"에서 주체가 바뀌어 "난 누구냐?"의 계속된 물음의 반복속에 펼쳐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런 마음속 싸움에는 바로 기존 얼굴의 나와 가면을 쓴 얼굴의 나가 존재하며 그 둘의 존재감속에 인간이 어떻게 실존해 가는 문제를 던진 이야기다. 먼저, 간단히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첫 이야기부터 주인공은 읽는이 '당신'을 끌어들인다. 자신의 아지트로 들어와서 자신의 '수기'를 읽어보라면서.. 그가 세권의 노트에 남긴 검은색, 흰색, 회색표지로 구분해 놓고 그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먼저, 자신의 아지트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액체질소 폭발로 맨 얼굴을 잃어버린 남자 주인공 '나'.. 이름도 없이 독특하다. 그는 그렇게 일그러지고 망가져서 어찌보면 그로테스크한 얼굴로 살아가는 자신이 원망스렀다. 아니 원망보다는 어떤 의지의 발견을 하게 된다. 이대로 물러 설 수는 없기에.. 그는 자신의 얼굴을 찾아야하는 일념과 인간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자신의 얼굴'을 대체할 '타인의 얼굴' 즉 '가면'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이야기의 전체 구도상 절반 이상은 다른 얼굴의 선택 과정에 대한 기술을 통해서 인공적으로 가면 만들기 계획의 착수과정.. 이런 과정에서 과학적이고 디테일한 성형기법과 심지어 수학 공식까지 나오며 읽는이로 하여금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다. 그러면서 원하던 얼굴형의 가면을 10만엔을 줘서 사고 그 얼굴의 주형을 떠서 가면을 완성해서 착용하기까지 과정과 심경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 또 펼쳐지는데 주인공 '나'의 세밀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게 완성된 타인의 얼굴 '가면'을 얻고 나서부터 그는 새로운 '나'로 탄생한다. 그래서 그때부터 거리를 활보하는등 마음껏 주위를 돌아다니지만 어느 순간 이 또한 무서운 결과에 직면한다. 이렇게 자신의 얼굴과 분리된 나는 새로운 갈등에 빠진 것이다. 가면을 쓰기전 붕대를 한 복면과 가면을 쓴 얼굴, 그리고 과거의 맨 얼굴이 삼각관계를 이루며 그는 가면이 갖고 있는 이면의 '파괴본능'에 눈을 뜨고 공기권총까지 사면서 자신의 아내를 유혹하기에 이른다.

결국, 가면의 얼굴을 쓴채 아내를 유혹하며 그둘은 밀회를 수차례 나눈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 '나'는 가면이 아내를 유혹하자 타인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질투를 하고, 몸을 허용한 아내에 대해서 단죄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인공 남자 '나'의  중심 이야기고, 결국 수기까지 쓰게 된 동기이자 읽는이 당신을 끌어들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과연, 주인공 '나'는 가면을 통해서 만난 아내를 단죄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아내는 정작 가면속의 남자를 몰랐던 것일까.. 그런 과정속에 그려진 주인공 '나'와 아내의 관계속에서 또한 자신의 욕망의 충족이 '치한적 행위'로 치부되고 언제든 가면을 통해서 잠재적 치한이 될 수도 있는 역설적 상황까지 그려내며 자신의 타자성까지 담고 있다.   
 
이렇게 <타인의 얼굴>은 독특하다. 노트 형식의 수기를 쓰듯이 특이한 구성을 지녔고 그런 이야기는 평이한 수준이 아닌 맨얼굴의 나 시절과 화상을 입고 일그러져 붕대로 가려진 얼굴, 그리고 이 두 얼굴을 모두 가려버린 새로운 가면의 얼굴 즉, '또 하나의 얼굴'.. 이렇게 구도속에 주인공 남자 '나'는 끊임없이 반문하고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나중에는 그런 이면에 숨은 결과물에 소외돼 분노하는등.. 독특한 수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 작품이다.

그래서 조금은 난해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주로 맞닥뜨린 인간의 상실과 소외문제 즉, 실존에 관한 이야기는 '타인의 얼굴'이라는 소재가 '가면'으로 투영돼 '내 안의 숨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과정을 심도있게 그려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얼굴로 대치된 '가면'이라는 소재속에 '변신'이라는 모티브로 발전시켜 인간 존재의 소외와 불안을 다룬 우리시대 도시민의 자화상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즉, 누구나 자신의 얼굴을 직접 못보고 거울을 통해서 비쳐진 모습만을 우리가 보듯이.. 내안의 숨은 또다른 나의 발견을 타인의 얼굴인 '가면'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리며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그것은 어찌보면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꾀한 도발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 도발은 쉽게 되지 않고 또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그래서 인간 실존 문제가 어려운게 아닌가 싶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처럼 말이다.

ps : 읽는 내내 가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디테일함에 생각난 영화가 있었다. 바로 오우삼 감독의 97년작 <페이스 오프>.. 당시 이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의 얼굴이 체인지되는 소재와 액션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는데.. 바로 오우삼 감독은 아베 고보의 이 작품 <타인의 얼굴>을 읽고서 영감을 받았고.. 그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흥행에 성공한 것이라며 고백했다고 한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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