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렇다. 우리네 인생은 바로 운명과 죽음이 반복적으로 교차돼 펼쳐지는 ’살아간다는 것’ 즉 삶의 역경이자 욕망의 그림들이다. 여기 그런 삶의 역경과 욕망을 다룬 이야기가 있다. 바로 중국 문단 선봉파의 기수로서 해체적 글쓰기 작가이자 ’문림(文林)의 고수’답게 ’위화’가 가열차게 펼쳐낸 이야기가 바로 <인생>이다. 이 원작 소설은 이미 장예모 감독이 영화화하며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비주얼을 접하지는 못했지만 책으로 만난 인생의 이야기는 철지난 중국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삶의 거울이자 투영으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다. 먼저, 중국의 어느 한적한 농촌 들녘 이곳에서 한 젊은이가 민요를 수집하고 일하는 농민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세상의 시름을 좇는다. 이런 그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으니 그의 이름은 ’푸구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바로 ’푸구이’ 노인의 인생 역경의 이야기를 젊은이에게 세세하게 들려 주는것이 이 책의 내용인 것이다. 과연 어떤 내용들일까..
 
푸구이는 먼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한다. 때는 바야흐로 1940년대.. 그는 젊은시절 한마디로 한량으로 개망니였다. 쉬씨 가문의 부자집 도련님 신분으로 집안은 돌보지 않고 계집질과 도박에 빠져사는 그런 못된 놈이다. 갓 결혼한 부인 ’자전’까지 내팽긴채 말이다. 결국, 그는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버린다. 졸지에 기와집에서 초가집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에 아버지는 울화통에 시름않다가 똥통 옆에서 그렇게 죽으며 이 집안의 운명은 파란을 예고한다.

이때 푸구이는 정신을 차리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갔다. 부인 자전과 사이에서 낳은 큰딸 ’펑샤’와 아들 ’유칭’ 그리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돈 한푼 없고 생활은 찌들어간다. 그런 와중에 아들 유칭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딸 펑샤를 부자집에 하녀로 팔아야 하는 상황.. 그 속에서 그는 못난 부정(父情)으로 눈물을 쏟는다. 하지만 끝내 다시 딸을 데리고 오는데.. 이런 생활속에 그는 어느날 약을 구하러 시내에 갔다가 우연찮게 군대에 끌려가게 된다.

바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바로 국공내전으로 국민당 장제스쪽 포대에 편입돼서 그는 생사를 넘나든다. 그곳에서 만난 라오취안과 춘성. 그들과 함께 전장의 참혹함과 배고픔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결국 공산당에 포로로 잡히지만 죽지 않고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정권은 바로 마오쩌둥이 수립한 중화인민공화국시절이 된다. 죽은지 알고있던 ’푸구이’가 돌아오자 다들 기뻐하는데.. 집안 환경은 가히 좋지 않다. 큰딸 펑샤는 열병을 앓아 ’농아’가 되버렸고, 유칭은 학교는 뒷전에 양 키우기에 몰두하고, 어머니는 급기야 돌아가시고.. 부인 자전은 더 매말라가고 있었으니..

이런 가운데 그래도 꿎꿎이 집안을 살리기 위해서 푸구이는 노력한다. 하지만 1958년 대약진운동이 벌어지면서 인민공사에게 그는 온 집안의 가재도구와 농기구를 빼앗기고 큰 드럼통에서 철제를 녹이는등 당시 현실이 반영된다. 그러면서 주자파로 몰린 지주 롱얼이 총살당한다. 그 지주의 자리는 사실 쉬씨 집안이었는데 풍비박산후 자리가 뒤바뀌며 반혁명분자 색출때 푸구이는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가뭄과 기근으로 이 집안도 몇달은 배고픔에 허덕이고.. 그런 와중에 아들 유칭이 학교 여자 교장 선생님을 살린다며 피를 너무 많이 뽑다가 어의없게도 죽게된다. 바로 그 교장의 남편은 바로 전장에서 만난 춘성이었다. 이런 운명이라니..

이제는 다큰 처자가 된 펑샤를 결혼시키는 문제로 두 부부는 어려움에 봉착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남자 ’얼시’를 만나 한시름 놓는다. 그런데, 사실 얼시도 왼쪽머리가 기울어진 장애인이다. 하지만 둘은 정말로 행복하게 잘 살았고 어려운 살림에도 이렇게 넷은 의지하며 살았다. 문화대혁명이 휘몰던 시절에도 반동으로 몰리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전장 시절 전우였던 춘성이 반동으로 몰려 이기지 못하고 춘성은 자살하고 만다. 유칭을 죽게한 장본인이였지만 푸구이와 자전은 이제 그를 용서하고 만다.

하지만 이들 가정에 파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딸 펑샤가 아기를 낳다가 죽고 만다. 아들 하나만 남겨둔채.. 이후 몇달후 ’구루병’을 앓으며 항상 남편 푸구이 등에 업혀다니고 점점 피폐하고 매말가던 부인 자전마저 죽는다. 이제 남은건 사위 얼시와 푸구이 그리고 손자 ’쿠건’.. 이렇게 세 남자가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운수업을 하던 얼시가 작업장에서 사고로 죽는다. 이제는 늙어버린 푸구이가 손자 쿠건을 혼자서 키우지만 나름 행복감을 맞는다. 그런데, 쿠건마저도 7살때 콩을 너무 많이 먹다 기도가 막혀 죽어버린다. 이제 남은건 늙어버린 ’푸구이’와 소 한마리..

이렇게 여기 ’푸구이’의 삶은 한마디로 운명같은 죽음으로 시작되는 파란의 연속이다. 이렇게 온 집안 식구가 죽어나간 상황에서도 그는 삶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한다. 자신만이 살아야 하겠다는 의지의 발현보다는 때로는 관조적으로 보편적으로 대처하고 삶의 방식을 터득하며 도정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런 그림들은 잔잔하면서도 지고지순하게 때로는 울분과 애절함이 교차되는 삶의 아픔들로 그려냈다. 하지만 그 아픔은 바로 좌절이 아닌 그런 운명에 거역하지도 않은 결연함도 엿보인다.

또한 이 작품은 ’인생’의 주인공 ’푸구이’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이 역사를 관류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40년대 국공내전의 전쟁중에도 살아남고, 50년대 대약진운동에 참가하며 가뭄과 기근에도 꿎꿎이 버터냈고, 60년대 문화대혁명의 피바람 선전에도 그는 비켜갔다. 이런 그림들은 이 작품이 역사소설적 가치를 보여주었고 그런 그림들은 중국 근현대사의 지평으로 나아가며 한 노인의 삶속에 오롯이 투영시켰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들은 먼저 접해본 <허삼관 매혈기>와는 차이가 있다. 우선 <인생>에는 허삼관의 인생사처럼 해학이나 풍자가 묻어있지 않다. 대신 삶의 역경을 통한 비애감과 가식 없는 진솔함이 묻어난다. 그것이 바로 ’푸구이’ 노인의 인생살이였고 그런 인생사는 바로 위화가 바라본 삶의 문제를 중국적 삶의 특성 속에서 진솔하게 그려낸 통찰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물론, 그런 진솔함은 우리네 인생사와 교차돼 오롯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 <인생>은 한 인간의 운명과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을 느낄 수 있는 책으로 감히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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