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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그렇다. 여기 피를 팔아 고달픈 인생 역정을 버텨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바로 '허삼관'이다. 요즈음 우리식 달인 개그로 "아니 다들 피를 팔아봤어.. 안팔아 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이렇게 이야기할 주인공이 바로 달인 김병만 아니 허삼관 선생 되시겠다. 먼저, 이 소설은 중국의 젊은 3세대 소설가 '위화'의 세번째 작품으로 96년에 발표되고 국내에는 99년에 첫 출간되며 2007년 개정판까지 재판된 인기작중에 하나다. 과연, 허삼관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그의 인생사를 간단히 정리해서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허삼관은 성안의 생사(生絲)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하는 젊은 20대의 노동자다. 삼촌과 함께 열심히 자신의 일에만 매진하던 그에게 어느날 병원에 피를 팔러가는 동네 방씨 아저씨와 근룡이를 따라가며 자신도 그일에 동참해 피 팔고 받은 돈 35원의 거금을 마련해 점지해둔 동네의 예쁜 처녀 허옥란과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허옥란은 원래 허삼관보다는 좀더 세련된 하소용에 끌리지만 허삼관에게 얻어 먹은 음식때문에 책잡혀 울며 겨자먹기로 시집을 가게 된 것이다.
결국, 둘은 5년 사이에 셋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도 부르기 쉽게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라 짓는다. 그러면서 이들 다섯명의 가정사가 재밌게 때로는 우울하면서도 저잣거리 욕설이 난무한 가운데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결혼전 사겼던 하소용과 한때 불장난으로 낳은 일락이 문제로 허삼관과 허옥란의 계속되는 트러블과 상호 비존중의 걸죽한 욕설 난무와 하소용네 집안과의 싸움에서 '자라 대가리'(중국에서 부르는 바보짓이나 병신스런 남자로 불리는 최악의 욕이다)로 전락해버린 허삼관..ㅎ
그러면서 일락이는 동생을 때린 동네녀석을 짱돌도 머리통을 박살내 아버지 허삼관이 피를 팔아 병원비를 대면서 허삼관은 젊은 시절 잊고 있었던 피를 파는 매혈의 길을 뛰어 들게된다. 또 허삼관이 젊은 시절 좋아했던 여자의 약값 때문에 또 피를 팔아 허옥란에게 구박한당한 사연부터 대약진운동으로 기근이 몰아쳤을때 근 석달을 옥수수죽으로 연명하며 탕진된 가산때문에 국수를 사먹기 위해서 피를 파는등.. 일락이를 빼며 삐딱선을 탄 허삼관이지만 결국 집나간 일락이를 찾아내 업어주면서 국수 먹으러 가자던 아버지 허삼관..
이후 문화대학명의 광기에 빠져든 정국에 허옥란마저 과거 전력때문에 기생으로 몰려 만인민투쟁대회의 반동분자로 인민재판을 받으며 집에서도 가족 비판투쟁대회의 희생양이 되니 남편 허삼관이 자신의 과거를 소회하며 둘 부부의 애정은 돈독해진다. 하지만 이제는 훌쩍커버린 세아들중 일락이와 이락이가 농촌의 생산대에 징병되어 노동현장 투입되며 이들의 가족은 흩어져 살게된다.
그러면서 어느날 찾아온 이락의 생산대장한테 잘보이기 위해서 허삼관은 아픈 와중에도 피를 두번이나 팔아 밥먹이고 선물까지 사주는 호의를 보이고, 장남 일락이가 생산대 현장에서 지쳐 간염에 쓰러져 상하이의 큰병원으로 옮겼을때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니 아들 일락이를 살리기 위해서 이주일 넘게 상하이로 가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이른바 '매혈 여로'를 가열차게 펼치니.. 이 소설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즉, 그 매혈 여로를 따라 그는 사흘 걸러 닷새 걸러 한번씩 피를 팔면서 자신의 몸은 매마르고 피폐해져 죽어가는 상태에서 수혈받아 다시 피를 팔고 끝까지 버텨낸 허삼관이었다. 의지의 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과연, 그는 초반 자기의 아들도 아니라며 매일 타박주며 하소용에게나 가라고 윽박지르던 장남 일락이를 살릴 수 있을까.. 살렸다면 어느덧 세월이 지나 이제는 늙어버린 허삼관은 아직도 피를 팔고 있을까?
만약 피를 또 팔았다면 아니 못팔았더라도 항상 자신이 피팔고 해온 세레모니처럼 승리반점에 들러 그는 이렇게 주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냥.." 그것도 부인 허옥란과 함께라면 그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 작품은 제목 '허삼관 매혈기'처럼 허삼관이 피를 팔아 인생사 역정을 그려낸 이야기다. 그래서 그 중심에는 바로 '피'가 존재하고 그 피는 바로 허삼관이 버터낸 힘의 근원이자 가정을 유지하는 경제 수단의 돈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피는 육체노동의 댓가가 아닌 말 그대로 '피같은 돈'이라는 아주 소중한 존재로 각인되며 허삼관이 여러차례 피를 파는 매혈의 수단을 그려낸 과정들은 때로는 희극적인 상황을 자아냈고 때로는 집을 구하기 위해서 허기를 채위기 위해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비극적으로도 교차하며 그들 삶의 고단함과 여정을 보여준 매개체이자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마냥 비극적인 작품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마지막까지도 웃음과 위트를 잊지 않고 해학을 선보이며 읽은 이로 하여금 가슴 한켠을 따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위화'작가만의 희비극적 통찰이 엿보이는 필력과 함께 어찌보면 '철지난 중국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네 소시민들의 삶을 투영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동감이 있지 않나 싶다.
특히,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 허삼관의 캐릭터가 인정사정없고 소갈머리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따뜻한 인간애를 통한 우리시대 아버지를 투영시켰다는 점과 그렇게 피를 팔면서까지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부정(父情)의 참된 의미와 그속에서 묻어나는 통절함과 애절한 삶의 고단함과 슬픔까지.. 하지만 그속에 익살과 해학으로 인간애를 능청스럽게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대 아버지들에게 이 책을 감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분명 많이들 공감하시리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