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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ㅣ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우리가 '홍길동전' 하면 생각나는 그 유명한 문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나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 그렇다. 누구나 알고 있고 홍길동이 서자 출신으로 가열차게 내질렀던 통탄의 한마디가 사실은 홍길동전의 주제이자 작가 허균의 소명 의식이자 당시 시대상을 가늠케 하는 발호의 표현이다. 하지만 홍길동전의 내용을 전체 다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에 '펭귄클래식(이하 펭클)'에서 제대로 번역해 내놓았는데.. 우선은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조선 세종때 재상인 홍씨 가문에 아들이 둘이 태어나니 하나는 본부인이 낳은 인형(완판에서 길현)이고, 시비(侍婢, 시중드는 계집종)가 낳은 길동이 있었다. 길동은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재주가 비범했음은 다 아는 사실. 하지만 천한 여자 몸에서 태어난 죄로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며 통탄해 하는데.. 이에 아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첩이 자객을 들여 죽이려 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길동은 그들을 죽이고 아비와 어머니에 죄를 말하고 집을 떠나게 된다.
그러면서 집을 떠난 길동은 바로 산적의 우두머리가 되어 탐관오리를 벌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활빈당의 당수로 두목으로서 이른바 의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인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든 그를 가만두지 않고 잡아들이려 하고 그의 아비와 형까지 불러들여 그를 끌여들이지만 그는 손오공처럼 똑같은 길동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을 농락한다. 그냥 쉽게 잡히지 않는다거..
이렇게 그를 잡기가 싶지 않은 상황에서 길동은 병조판서 제수 받기를 원하고 이에 조정에서는 그에게 병조판서 교지를 내리고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군대를 이끄는 한 무리의 수장이 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의적 활동을 그만두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잘못을 인정하고 조선을 떠나 심기일전하더니 이웃나라 율도국을 점령하면서 이상 국가를 건설하고 늙어 죽을때까지 자자손손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은 홍길동전.. 누구나 대충 알아도 한번쯤 읽어보면 그가 서에 번쩍 동에 번쩍 활약속에 양반 나리들과 탐관오리를 벌하는 모습은 통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홍길동은 그렇게 의적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라 조정에 수긍하고 또 아비와 형에게 효와 우애를 다하는 모습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의적으로만 그친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
이런 내용적 평가뒤에 홍길동전은 사실 여러 이본(異本)들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면서 각 판본의 특징을 비교하며 읽기 적합한 경판 24장본과 완판 36장본을 이번 '펭클'에서 소개했다. 그런데, 홍길동전을 허균이 안 지었다는 학계의 또 다른 설을 제기하는데.. 예를 들면 허균 저작설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택당집>의 기록이 저자의 사후에 편집된 것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견해와,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될때 <홍길동전>의 저작 사실이 죄목에 포함되었어야 하는데 그런 언급이 없었다는 점, 또 허균의 인품이 간사하고 음흉하여 <홍길동전> 을 지을 위인이 못 된다는 주장까지..
하지만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467)의 문집에서 <홍길동전>이 처음 언급된다는 점을 든다. 이 근거로 초창기 국문학자들은 허균을 <홍길동전>의 작자로 확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하였다. 하지만 택당의 기록과 허균의 문학 활동을 통해 볼때 <홍길동전>은 연산군 때의 역사적 실존인물 홍길동(洪吉同, 실제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강도행각으로 처형 기록이 있다.)을 주인공으로 한 한문 전(傳)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결국, 허균이 역모에 연루되어 불행한 죽음을 당한 까닭에 그의 저작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국가의 정체성을 비판한 <홍길동전>은 금서가 되어 더 이상 세상에 전해질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읽고 있는 지금 작품은 수백년이 지나서 1890년경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떤 변이가 이루어졌는지 허균의 원작이 과연 국문으로 된 것인지, 아니면 한문으로 지은 것을 후대의 누군가가 국문으로 번역해서 전한 것인지등에 대한 추론이 난무하다고 언급한다.
또한 <홍길동전>의 초기 이본들은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는데 간행 지역에 따라 하나는 서울 지역에서 간행된 경판계이고, 다른 하나는 전주 지역에서 간행된 완판계이다. 물론 두 계열의 기본 줄거리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세부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는데, 완판 36자본이 좀더 상황 묘사가 디테일 하고 사투리가 많이 사용돼 다소 번다한 편이다. 꿈속의 내용이라든지 전개 과정속에 홍길동이 율도국을 치는 상황 묘사등이 말이다.
이렇게 여러 모로 봤듯이 홍길동전은 당시 조선 중기 사회의 아니 조선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사회적 병폐였던 적서 차별에서 재기된 신분 차별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가열차게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허균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비록 양반집 자제였지만 스승 이달 선생 또한 서자 출신으로 뛰어난 학식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빛을 못봤듯이 그가 스승을 위해 지은 <손곡산인전>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또 자신 스스로 민중의 삶과 유교적 터울에 얽매힌 규제에 대한 타파등 그는 단순히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적서 차별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물론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만인 평등의 미래 사회를 갈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선소설사(朝鮮小說史)>의 저자 김태준은 <홍길동전>이 허균의 사상과 삶이 강하게 투영되며 허균의 자서전이자 주인공 길동은 허균의 자화상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결국, <홍길동전>을 통해서 허균이 설파한 이상사회에 대한 갈구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서 제시된 사회 비판 의식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그것을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전개하여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이것은 문학사적으로 사회의 메세지적 최초의 한글 소설임과 동시에 한국 소설사상 중요한 가치와 함께 기념비적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의적 홍길동이라는 기본 개념에서 탈피해 그 이면에 숨겨진 가치를 진중하게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말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