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일컫는 덕혜옹주(1912~1989).. 사실 난 그녀를 잘 몰랐다. 학창 시절 배운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와 반대로 명성황후 관련된 이야기는 책, 사극, 영화, 뮤지컬등을 통해서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느정도 알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덕혜옹주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전무한 상태..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작게나마 그녀의 비극적인 삶이 오롯이 전달된 느낌이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당시 시대상과 제도, 덕혜옹주의 삶에 대한 묘사는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소설적 개연성을 위해서 재구성 작업이 있었지만 모두 허구로 치부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지 정리해서 줄거리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야기의 서막은 일제 강제 합방(병합)을 앞둔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통해서 당시 시대상을 이야기 한다. 대한제국을 만든 고종은 일본에게 이미 폐위당하고 아들 순종이 즉위한 상태.. 하지만 대한제국의 미래는 없다. 일본의 식민지배로 민중의 삶은 이미 피폐해가고 암약중인 독립군과 일본 앞잡이(극중 갑수역)가 활개치는 세상에 이미 고종 조차도 뒷방 할아버지 신세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런 고종에게 말년에 얻은 막내 딸 덕혜옹주(이하 덕혜)만이 유일한 희망이자 낙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고종은 1919년 어린 딸을 두고 승하(독살설 제기가 있지만 확실치 않다)하고.. 이러면서 유년 시절 아비의 사랑을 받고 자란 덕혜는 이때부터 아비를 잃은 슬픔에 당차게 일본을 향해 모질찬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망국의 운명앞에 그녀를 포함한 이왕가의 황족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는 시련을 맞이한다. 그러면서 10대시절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바로 일본 대마도주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와 마음에도 없는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뜻하지 않은 결혼과 일본에서 생활은 자신의 고국 조선을 그리워하며 이미 작고한 어머니 양귀인과 아비 고종을 그리워하는데.. 물론 그 중심에는 조선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점점 피폐해가며 우울증과 함께 정신질환을 않는데.. 혹자는 그녀의 남편 다케유키의 폭압에 그렇다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도리어 남편은 그녀를 보듬어 주는 따뜻한 남자로 나오며 자신의 부인의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때로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이다.

하지만, 덕혜는 딸 정혜(마사에)를 낳고부터 조선인과 일본인의 피를 반반씩 갖은 자신의 딸을 보며 심한 자괴감에 빠지며 자신의 가둬둔 늪에 한없이 빠지고 만다. 그러면서 당시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태평양 전쟁을 통해서 패전이 짙던 일본은 항복하며 국내외 상황이 악화되자.. 이 둘 부부도 위기에 처하고 어느새 훌쩍커버린 딸 정혜는 엄마 덕혜옹주를 가녈차게 몰아붙인다. 그러면 그럴수록 덕혜는 심한 정신적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덕혜는 해방 전후로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만다. 그러면서 남편 다케유키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딸 정혜의 행방불명까지.. 그녀는 인생의 나락으로 이미 떨어진 상태다. 과연 그녀는 거기서 살아 돌아왔을까.. 물론, 역사적 기록대로 그녀는 김을한 기자의 구명운동으로 환국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신병원 탈출장면에 대한 묘사를 넣으며 소설적 재구성으로 비극적 삶에 대한 발호로 투영시켰다.

이렇게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 태어났지만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감내해야 했던 30여년의 그녀의 비참한 삶을 이야기한 중심에는 두 인물이 있었다. 바로 옹주의 정혼자였던 박무영(김장한, 고종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이자 양아들로 김을한의 동생)과 그녀를 지근에서 끝까지 지키려했던 '복순'이라는 나인이다. 여기서 박무영은 명성황후를 지키려 했던 호위무사 '무명'처럼 그는 덕혜를 일본에서 어떻해든 구출하려는 구국청년단의 수장이다. 그리고 복순은 바로 덕혜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그녀를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나인이다.

특히 여기서 복순의 캐릭은 소설 중반이후에 도리어 덕혜옹주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 느낌이다. 작가는 아마도 복순 그녀를 통해서 일본 식민지 시대의 그들의 광기를 그녀를 통해서 투영시킨 느낌이다. 바로 식민지배로 인한 민중의 피폐와 위안부 문제, 그리고 패전이후의 삶까지.. 복순은 어찌보면 덕혜에게 차마 메스를 못가했던 부분을 가한 그런 처참한 피해자로 그린 것으로 본다.

이렇듯 작가는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소개글로 말문을 연 <덕혜옹주>.. 기존 일본의 번역서에 그치며 지금까지 우리네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녀의 삶이 오롯이 이렇게 한권의 책으로 태어난 것이다. 책의 큰 얼개인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써 고귀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잊혀져간 덕혜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이야기는.. 나라 잃은 자의 설움과 함께 매 순간마다 조국을 그리워했던 어찌보면 그냥 한 여자의 비극적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황녀였다는 사실.. 하지만 그녀는 황녀였다는 사실..

더군다나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그려냈기에 그래서 더욱더 울림이 있지 않나 싶다.
그것이 바로 이런 소설이 주는 맛일 것이다. 직관적인 사료(史料)가 줄 수 없는 그런 감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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