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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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 지도의 금자탑인 '대동여지도'를 남긴 김정호를 모를 이는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배웠듯이.. 하지만 그는 고산자(古山子)라 불린다. 그것은 오로지 생애를 바쳐 그 모든 것을 품어안았고 평생 산을 그리워하며.. 그 산중에서도 옛산을 닮고 그 옛산에 기대어 바람처럼 살고 했던 고산자 김정호 선생.. 그는 조선 후기의 유명한 관리출신도 아니요 가난하고 몰락한 중인 신분의 한낱 지도쟁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런 지도쟁이는 조선의 강토를 사랑한 나머지 생애를 바쳐 그 모든것을 품고자 했다.

이런 그의 일대기가 박범신의 힘껏 벼린 문장과 장엄한 울림으로 한땀 한땀 그의 생애를 복원하며 첫 역사소설로 다시 살아났다. 하지만 책은 초반 쉽게 읽히지 않는다. 각종 고어(古語)와 문학적인 표현과 순수한 우리말 배치에 현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은 그냥 소설로 치부되기에 너무나 숭고한 맛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자 역사 문학의 새로운 감흥이라 말하고 싶다. 과연,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생애는 어떠했을까 그 이야기의 실타래는 이렇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이 아니기에 통속적인 김정호의 어린 시절부터 얘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이미 대동여지도의 판각이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수정하고 목판본 작업을 그린다. 그래서 소문대로 백두산을 열번이나 오르며 그 힘들고 뼈를 깍는 고통으로 만들어진 대동여지도의 탄생 과정은 빠져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야기는 조선후기 민중의 난 홍경래의 난(1811년)의 중심으로 김정호 삶의 전과 후를 조명한다.

그 난에 참가했던 형의 죽음과 그 난을 진압하러 떠난 지원대 행렬속에서 군현도의 잘못된 지도로 길을 헤매면서 아버지를 포함해 전원이 죽은 사건. 그때 김정호는 생각한다. 지도가 사람을 죽였다고.. 그래서 백성을 위한 지도, 누구나 쉽게 갖고 볼수 있는 지도.. 그것이 그를 평생 지도쟁이로 만들었다. 그 후 김정호는 길을 떠나 이 나라 강토를 하나하나 밟으며 땅의 형상과 물의 흐름 산의 굴곡을 몸소 체험한다. 그런 과정에서 혜련 스님과의 아련한 인연의 끈과 그 스님에게 건네받았던 딸 순실이.. 이들의 얘기는 한편의 가녀린 서사적인 표현으로 일관한다. 어찌보면 <고산자> 생애의 새로운 꿈같은 이야기로 읽은 이로 하여금 몽롱하게 만든다. 

이렇게 그가 찾아떠난 혜련 스님의 발자취속에서 조선 강토를 주유천하한다. 그런 과정에서 당대 실학자 혜강 최한기, 오주거사 이규경, 위당 신헌, 난고 김병연(김삿갓)과 대동여지도에서 간도, 대마도와 독도(우산도)가 빠진 당위성에 대해서 김정호는 설파하는데 바로 이용후생이자 실사구시의 입각한 지도 편찬의 효용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자세히 펼쳐진다. 즉, 지도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 그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신념.. 그것이 그를 지탱해준 힘이자 원천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대동지지(大東地志)』편찬을 위해서 북쪽의 넓은땅 간도 답사를 떠난것이 화근이 되어 우리가 많이들 알고있는 오류중 하나.. 바로 첩자로 몰려 조선의 최고 권력가 안동 김씨 일파에게 호된 고문으로 목숨이 위태로워 지는데.. 하지만 그렇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당시 조선후기 천주학쟁이들의 박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 결국, 그의 딸 순실이도 몰려 위험에 처해지자 아비의 애끊는 부정으로 만장(輓章)을 통한 눈물나는 탄원크리.. 결국, 그는 딸을 구했을까? 이후 김정호는 어떻게 됐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책의 마지막에 있다.

하지만 누구나 예감할 수 있듯이 그는 한평생 지도쟁이로 살다간 그다. 그에 대한 정확한 생몰년이 없는 신비스런 인물로 그가 남긴 방대한 지도와 지리지만이 그의 업적을 얘기할 뿐이다. 이런 고산자 김정호의 흔적은 지도의 업적으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강토에 기대어 바람처럼 살고 싶어했던 그의 일대기를 박범신은 유유하면서도 숭고하게 그렸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인 것이다.

불과 150여년전의 선조였던 그도 그리고 변하지 않은 강토에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으니.. 한 평생 지도로 그려낸 고산자 김정호 삶의 여정에 우리도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래처럼 그의 이상과 함께 말이다.

평생 꿈꾸어온 것이 무엇이었던가..
조정과 양반이 틀어쥔 강토를 골고루 백성에게 나눠주자는 것이고, 조선이라는 이름의 본뜻이 그러하듯.. 강토를 세세히 밝혀 그곳에서 명줄을 잇고 있는 사람살이를 새롭게 하자고 한것 뿐이다. 땅의 흐름과 물의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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