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 운명을 뛰어넘어 세상을 지배한 여왕 아이세움 역사 인물 6
마이라 웨더리 지음, 강미라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영국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위대한 통치자 엘리자베스 1세를 알기에는 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들이 있다. 이 중에서 이 책도 그중 하나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책 자체가 두껍지도 않고 간결하게 정리하며 소설처럼 써내려갔다. 그래서 다른 성인용 책들과는 틀리게 한 두시간만에 금방 읽었는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이렇다.

이야기의 첫 서문은 통상적인 그녀의 출생부터 나오지 않는다. 첫 시작은 21살의 엘리자베스가 런던탑에 갇히는 신세부터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상황의 제공자는 바로 그녀의 이복 언니 메리 1세의 철권통치 기간에 엘리자베스가 반역을 했다는 모략으로 갇히게 됐으니.. 어찌보면 그녀의 순탄치 않은 인생 역정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거슬러 그녀의 출생을 애기하는데.. 튜더 왕가를 만든 헨리 7세의 아들 헨리 8세와 두번째 왕비였던 앤 볼린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 하지만 그녀의 출생은 행복하지 않았고 아버지 헨리 8세의 여성편력은 그녀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급기야 둘째 부인이었던 앤 볼린은 간통과 모함으로 참수를 당했으니.. 그때 엘리자베스의 나이 세살.. 이후 엘리자베스는 아버지 헨리 8세가 4번의 왕비를 맞이하는 격동의 스캔들동안.. 엘리자베스는 1왕비가 낳은 메리와 3왕비가 낳은 에드워드와 함께 어린 시절 궁전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아스트랄한 상황을 겪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 엄마들은 예상과는 틀리게 엘리자베스를 잘 대해주었고, 그녀의 유모들도 그에게 교육도 시키는등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 역시 운이 좋은 여왕이었다.

그러면서.. 헨리 8세가 죽고나자(1547).. 남동생 에드워드 6세가 즉위하고 얼마 안있어 죽자 엘리자베스의 이복 언니 메리 1세가 즉위하니(1553) 그녀는 종교개혁 부문에서 로마 카톨릭 신봉자로 수많은 개신교들을 처형하며 '피의 메리'라 불리는 무서운 여왕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엘리자베스가 런던탑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메리는 나이가 많았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등 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엘리자베스가 즉위(1558)하니 바로 영국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 백성들은 피의 메리의 통치에서 벗어난 것부터 반기며 여왕의 즉위를 반겼다고 한다.

엘리자베스의 40여년의 통치동안 수 많은 업적이 있지만 그중 꼽으라면 두가지를 들 수 있다. 단연 헨리 8세때부터 시작된 종교 개혁과 관련된 문제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아버지나 메리 1세가 로마 카톨릭으로의 선회를 종교의 통합의 과정으로 다른 종교의 자유도 인정하고 성공회를 국교로 선포하여 사회의 안정을 꾀했으니.. 종교 문제는 당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다. 이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지리상의 발견후 강대국으로 떠오른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누루고 대양의 해상권을 장악한 점이다. 물론, 동시대에 세익스피어등 수많은 인문주의자들과 시와 연극을 통해 인본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며 르네상스 문화시대의 절정을 맞이한 점도 업적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업적 과정 중에도 영국의 당시 상황은 그렇게 좋지 만은 않았다. 가난한자는 계속 늘고, 전염병은 창궐하고, 국가 재정은 줄고, 외세의 침략도 계속되는등.. 또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여기서 메리는 메리1세와 다르다)의 반란으로 처형시키는등 그녀에게 끊임없이 마수를 펼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거니와 이런 처녀 여왕에게 구혼하는 이들도 꽤 많았으니.. 그녀는 측근에 두었던 로버트 더들리와 꽤 오랫동안 염문에 쌓이는등 만만치 않은 애정감각?도 보여준다.

이렇게 엘리자베스는 '짐와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과 같은 자신감의 표출은 꽤 유쾌하고 활달한 성정을 엿볼수 있고 언제든 순행을 나서면 백성들과도 어울릴줄 알았던 여왕.. 그것은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순탄치 않은 궁전 생활을 통해서 보고 듣고 겪은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 책으로 엘리자베스를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또 책으로 만나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항상 공통된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녀가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뛰어넘을려는 의지가 충만했던 군주가 아니였나 싶다. 

죽기 2년전 1601년 11월 당시 68세의 늙고 기운 빠진 여왕이 영국 의회에서 '황금의 연설'이라 부르는 이 연설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한번 음미해 보자.

"나는 그대들에게 나보다 국민들을 더 사랑한 왕은 없었다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재임한 기간 동안 일어났던 영광스러운 일은 모두 다 그대들의 사랑 덕분입니다. 왕이 되고 왕관을 쓴다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겉에서 보기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왕이나 여왕의 권위와 영광스러운 이름을 이용해 유혹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다. 고맙게도 하느님이 믿음과 영광을 이루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도구로 나를 만드셨기 때문이지요.. 지금보다 더 나라를 걱정하고 왕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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