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 허스토리 - 왜 경제학의 절반은 사라졌는가?
이디스 카이퍼 지음, 조민호 옮김 / 서울경제신문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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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이디스 카이퍼는 '경제'가 '젠더'와 같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와 경제학을 구분하고, 주류 경제학은 남성 중심의 경제학이라고 비판한다. 경제학 이론과 문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된 이유는 여성 경제 저술가와 여성 경제학자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류 경제학이 여성의 담론을 일방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동안 이른바 '여성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가 내놓은 답변들마저도 여성 저술가와 경제학자의 목소리는 빠져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1700년부터 2020년까지 남성 중심의 경제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잊힌 여성 경제 저술가와 여성 경제학자들을 연대순으로 조망한다. 이들의 경제 담론은 재산, 권력, 교육, 생산, 분배, 소비, 정부 정책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다.

주류 경제학은 사적 영역 대 공적 영역, 자연 대 사회(문화), 저축 대 투자, 여성성 대 남성성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해 주요 경제 행위 주체를 공적 영역, 사회(문화), 투자, 남성성에 방점을 찍는 '합리적 경제인'으로 설정했다. 역으로 사적 영역, 자연, 저축, 여성성의 가계관리 혹은 가정경제는 무시되거나 경제학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그동안 경제의 틀을 규정하는 경제사상사는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 같은 서구의 남성 경제학자 중심의 역사였다. 주류 경제학은 사익 추구, 재화 생산,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중산층 남성의 이익만 반영했다. 역으로 중산층 여성은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고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정치경제학은 가정의 성 분할을 당연시하고 이 분리된 영역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남성의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재화의 생산 및 분배 문제를 '경제'로 귀속시켰다. 이제 정치경제학은 서양 중산층 백인 남성을 중심에 둔 채 서로 평등한 남성 노동자의 노동과 남성들 사이의 교환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과 아동을 경제에서 배제하고 흑인을 '타자'로 묘사하는 언어를 사용했다."(93쪽)

반면에 페미니즘 경제학은 젠더와 인종, 자연환경 보전을 함께 고려한다. 이들은 경제학을 가부장적 헤게모니에 기초한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 인식하고 여성, 노동자, 노예에 대한 경제적 탈취를 비판한다.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본다면, 19세기 산업 자본주의는 '경제 기사도'에 기반한 성별간 소득 재분배 모델이 구축된 시기다.

"여성 관점에서 보자면 초기 산업화는 가부장적 권력에 기반한 가계 모델이 남성 임금 노동 모델, 즉 아내의 경제적 의존과 남편의 '관용', '자애' 또는 '기사도'를 토대로 한 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이었다." (235쪽)

페미니즘 경제학은 여성, 아동, 식민지 원주민, 유색인종, 자연 환경과 관련된 비용과 손해를 고려한다. 가령 1970년대와 80년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사 노동', '가계 생산', '무임금 노동', '돌봄 노동'의 가치와 역할을 이론화했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셀마 제임스, 실비아 페더리치와 같은 이들은 무임금 가계 생산에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 문제를 비롯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념과 관련된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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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완벽한 방법
앤서니 맥가윈 지음, 최이현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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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철학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논하는 윤리학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적 지식의 조건과 맥락을 다루는 과학철학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윤리학이 행복에 대한 망상과 사기극을 밝히는 나침반이라면, 과학철학은 과학 기술과 의학에 대한 사기극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서양철학사를 다룬 새로운 철학 입문서를 접하면 꼭 윤리학과 과학철학에 대한 내용을 먼저 살피곤 한다. 저자의 수준을 이 두 분야에 대한 담론의 질에 따라 평가하는 셈이다.

영국의 철학자 앤서니 맥가윈이 쓴 서양 철학 입문서 『개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완벽한 방법』(니케북스, 2023)을 읽었다. 저자가 가장 사랑하는 철학자는 임마누엘 칸트이지만, 책의 전개 형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요학파' 스타일을 택했다. 쉽게 말해서, 저자는 반려견 몬티(몰티즈 테리어)와 함께 런던의 거리와 공원, 묘지 등을 산책하면서 철학의 주요 주제들을 가이드 삼아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적 전통에 따라 철학의 핵심 문제들을 토론한다. 여기서 철학의 핵심 문제들이란 '옳은 행동이란 무엇인가, 자유 의지는 존재하는가, 실재의 궁극적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식을 어떻게 얻는가, 신은 있는가' 등이다. 철학의 주요 주제들이란 윤리학과 도덕철학, 자유의지, 논리, 형이상학, 인식론, 과학철학, 삶의 의미 등이다.

몬티와 본격적으로 철학적 산책을 나가기 앞서서, 저자는 일종의 몸풀기로 '철학사에 등장한 개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영국인의 썰렁한 농담이 어떤 식인지 잘 보여준 잡담의 예랄까. 그리고 책 말미에 '더 읽을거리'를 추천하고 있다. 가령 과학철학의 경우, 앨런 차머스의 『현대의 과학철학』,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방법에 반대한다』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포퍼와 쿤을 매우 좋아하는데, 저자 역시 과학철학의 양대 영웅으로 포퍼와 쿤을 언급한다.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과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은 과학철학의 핵이 아닐 수 없다. 이 두 사람의 절충노선으로 헝가리 철학자 임레 라카토스의 '연구 프로그램'까지 소개한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몬티는 주인 덕분에 가장 철학적인 개가 된다. 몬티는 주인과 과학철학에 대한 토론 후에 이런 날카로운 반론을 남긴다.

"흠……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귀납법은 엉터리고, 반증 가능성 원리는 반증됐으며, 쿤의 패러다임에는 전환이 일어났고, 라카토스의 연구 프로그램은 퇴행했다는 얘기잖아.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420, 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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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 흔들리고 지친 이들에게 산티아고가 보내는 응원
손미나 지음 / 코알라컴퍼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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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은 '곧은 길'이다. 걷는 길이 양의 창자처럼 꾸불꾸불해도 순례길은 굽은 길이 아니라 언제나 곧은 길이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언제나 명확하기 때문이다. 방송인 겸 여행작가 손미나는 2022년 5월 23일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이 책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거야》(코알라컴퍼니, 2023)는 스페인이 제2의 고향인 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느낀 감상과 길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단 책 표지를 보면, 산티아고 순레길이 '곧은 길'이라는 내 얘기가 바로 체감될 것이다.

산티아고 순레길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이름이 산티아고다. 야고보의 유골이 안치된 곳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이고, 로마, 예루살렘과 더불어 세계 3대 가톨릭 성지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북쪽 길 등 여러 갈래가 있다. 저자가 선택한 길은 가장 많이 알려진 카미노 프란세스, 일명 프랑스 길이다. 남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라는 마을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 나바라, 리오하, 카스티야 이 레온, 갈리시아를 거쳐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킬로미터의 코스다.

누군가 말했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영혼이 젖어 드는 특정 장소가 있다"고.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오래 전부터 저자의 버킷리스트 단골 메뉴였다. 결행까지, 이십 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산티아고 길을 언제 걸을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이 아니다. 그 길은 때가 되면 당신을 부를 것이다." 저자는 40일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걸었는데, 일본인 사진작가 레이나와 청년 영상감독 이지환이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순례자의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영혼은 그만큼 가벼워진다. "산티아고 길의 모든 순간은 고행이면서 힐링 그 자체였다."

저자는 순례자와 순례길의 관계가 결코 일방통행의 독백이 아니라, 서로 내면의 속 깊은 대화를 주고받는 양방향 관계라고 강조한다.

"나는 순례자들이 그 길 위에서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얻어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걷는 이들도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그 안에서 무르익는 생각을, 수많은 사연과 감정, 에너지를 그 길 위에 내려놓는다. 그것은 일종의 '작은 씨앗을 심는 과정'이며 길과 나누는 속 깊은 대화이다."(78쪽)

그렇다, 길에서 순례자들이 서로 '부엔카미노'라며 축복의 인사를 나누듯,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순례자들도 내딛는 매 걸음마다 순례길과 그런 축복의 인사, 고해와 위로, 용서의 기도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 감동과 위로, 힐링과 치유의 성지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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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스 고스트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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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궁합이 맞는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이사카 코타로가 바로 내겐 그런 작가다. 나와 같은 세대라서 그런진 몰라도 좋아하는 문화적 취향이 비슷하다. 비틀즈 음악, 성룡 영화, 니체 철학 같은 자잘한 문화적 선호도 그러하고, 무엇보다도 테러와 폭력 같은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가벼운 유머와 만화적 명랑으로 다루는 특유의 시그니처가 매력적이다. 물론 내가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내 취향과는 꽤 먼 작품도 없지 않았다. 특히 일본 야구를 소재로 한 일부 작품이 그러했다. '이사카 월드'에는 사신, 갱, 킬러처럼 개성 만점의 인물들이 곧잘 등장하지만, 소시민적 성향의 마음씨 착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게 더욱 큰 장점이다.

그의 신작 『페퍼스 고스트』(소미미디어, 2023)에도 소시민적 주인공과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2인조 콤비가 등장한다. 두 줄기의 이야기 흐름이 평행선을 타다가 갑작스런 계기로 하나의 파도가 되어 출렁거리게 된다. 작중작 이야기 같았던 허구의 인물들이 위기에 빠진 주인공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시민적 주인공은 중학교 국어 교사 단이다. 다만, 단은 다른 사람에게 비말 감염되면 그 사람의 미래를 선행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초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은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온 일종의 특이체질 같은 것이다. 또다른 이야기의 축을 담담하는 2인조 킬러는 '고지모 사냥꾼'이라 불리는 러시안블루와 아메쇼다. '고지모'란 고양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찍어 SNS에 올리는 '고양이 도살자'의 팬덤 단체인 '고양이를 지옥에 보내는 모임'의 줄임말이다. 두 사냥꾼은 고양이를 학대한 고지모 멤버들을 추적해 그들이 이전에 고양이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한다.

단이 담임하는 반 학생들 가운데 사토미 다이치와 후토 마리코가 있다. 우연히 사토미가 탄 기차가 탈선 사고가 일어나는 미래의 장면을 보고 이에 개입하게 됨으로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토미의 아버지에게 특수한 관심을 받게 된다. 한편, 후토 마리코는 자신의 습작 소설을 담임에게 보여주고 평을 듣는데, 소설 주인공이 바로 고지모 사냥꾼이다. 두 콤비는 성향이 음양처럼 상반된다. 러시안블루가 세상의 위기를 한없이 걱정하는 비관적인 캐릭터라면, 아메쇼는 걱정이 없고 무한 긍정의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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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해법 - 문제의 너머를 보다
에이미 E. 허먼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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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다. 문외한의 눈, 아마추어의 눈, 전문가의 눈. 문외한은 말그대로 그 분야에 대해 교육도 받지 못했고 정보나 지식도 전혀 없는 생짜, 요즘말로 무지한 트롤들이다. 아마추어란 한 분야에 발을 내딛었지만 교육도 정보도 기술도 원만하지 못하거나 한쪽이 크게 기울어진 경우다. 전문가는 한 분야의 공인된 프로로, 교육, 지식, 기술의 삼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다. '안목'이란 말은 전문가의 눈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트롤이든 아마추어든, 사고방식을 전환하려면 전문가의 두뇌를 훔쳐야 한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일으킬 때와 같은 식으로 사고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해결에는 사고의 전환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리고 사고의 전환은 곧 인식의 변화, 지각의 변화, 심지어 세계관의 변화다.

미술사가이자 변호사, 리더십컨설턴트인 에이미 E. 허먼은 사고의 전환을 배우기 위해 좋은 멘토를 찾아나선 트롤들과 아마추어들에게 예술가를 추천한다. 예술가의 창작과 문제해결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지각의 기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빈치나 피카소 같은 미술의 거장들은 한마디로 월드클래스 수준의 문제해결사다. 탁월한 예술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고 예술을 통해 상식에 도전하고 평소에는 간과한 가능성을 열어보인다. 저자는 무척 다양한 화가의 그림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1819)을 범례로 내세우면서 여러가지 지각의 기술을 선보인다.

예술가의 창작 과정은 크게 준비 단계, 밑그림 단계, 전시 단계로 나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속적인 관찰과 편견 없이 바라보는 태도,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 보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불편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발명가가 불편을 해결해 세상을 좀더 편하게 만들려고 한다면, 예술가는 문제를 해결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예술가에겐 문제란 창작의 어머니인 것이다.

"예술 창작과 마찬가지로, 문제해결은 우리가 수집한 재료(혹은 정보)로 일관된 서사를 만드는 과정이다. 예슬가는 거친 원재료만으로 시작해서 이내 재료를 조합하여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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