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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이스트
다카야마 마코토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3년 8월
평점 :
사랑과 연애는 '일반'이든 '이반'이든 별다르지 않다. 이반의 사랑과 죽음, 연인의 상실과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다룬 『에고이스트』는 일본 작가 다카야마 마코토의 자전적 소설이다. 요즘은 확실히 영화가 원작을 견인하는 힘이 원작이 영화를 추동하는 힘보다 더 크다. 스즈키 료헤이와 미야자와 히오 주연의 퀴어 영화 「에고이스트」(2023)가 없었다면, 원작 소설인 『에고이스트』(민음사, 2023)가 과연 국내에 번역되었을지 의문이다. 일단 저자의 지명도가 낮은 인물이고, 본업이 소설이 아닌 칼럼과 에세이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자전적인 경향의 게이 소설이라는 점에서, 원작은 당시 일본에선 '아사다 마코토'란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한다.
동성애 로맨스를 그린 LGBTQ 문학이지만, 대중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러브신이나 갈등신이 보이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영화가 원작보다 나을 것이다. 감수성이 녹아든 건조한 문체는 간혹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게 하지만,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신사가 형편이 어려운 귀여운 여자에게 끌리는 전형적인 이성애 로맨스물처럼, 이 퀴어 소설도 나름 성공한 이반이 형편이 어려운 연인을 돕는다는 흔해빠진 설정이 감점 요인이다. 여기에 연인의 장례식이 눈물을 자아내는 신파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유명 출판사 편집자인 주인공 고스케는 한마디로 착한 남자다. 연인 류타의 생활비를 삼 년이나 대주는 것은 물론, 류타의 갑작스런 죽음 후엔 류타의 병약한 어머니까지 보살피는 선한 심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고스케는 이런 자신의 이타적 행위를 사랑도 모르고 연애도 모르기에 그저 돈으로 사랑을 사는 그런 이기적인 작위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나는 한 사람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한테 똑같은 짓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어떤 성장도, 깊은 고민도 없이, 새로운 깨달음마저 발견하지 못한 채 나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각도로, 단지 힘에 의지해 파고들 뿐이었다. 나는 단순한 동작밖에 할 줄 모르는 싸구려 드릴 같은 인간이다. 이런 행동이 사랑일 리 없다. 자신의 행동을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인간과 나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159쪽)
가족과 사회의 존중을 받으며 평범한 일상을 무탈하게 살아가는 성 소수자는 드물다. 뭐랄까, 이반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치 이중스파이처럼 가장하며 지낼 수 밖에 없다. 방심하는 순간 곧바로 성 정체성이 들통나 차별적인 시선이나 폭력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스파이가 피붙이 가족에게 본업을 숨기듯, 이반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모에게까지 꼭꼭 숨기곤 한다. 고스케는 아버지와 계모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끝까지 숨겼고, 류타도 병약한 어머니에게 애써 감추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