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의 흑역사 - 방송의 중립에는 좌우가 없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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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의 핵심 가치는 독립성과 공정성, 그리고 언론 자유다. 언론과 방송은 언제나 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하고 권력에 비판적이어야 한다. 이는 '언론의 어용화'를 방지하기 위한 원론적인 원칙이다. 문제는 언론의 어용화는 권력의 꿈이면서 동시에 종종 막장 현실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권력이 예뻐하는 언론, 권력의 방귀조차 향기롭다 말하는 어용 언론은 늘상 존재했다. 권력을 잡은 게 진보 세력이든 보수 세력이든, 한결같이 공영방송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설레발을 떤다. 그리고 경영진 물갈이를 시킨다.

"방송의 중립에는 좌우가 없다." 원론적인 의미에서 바른 말이다. 마치 '정치적 올바름'처럼 대중의 귀에 예쁘게 들리는 신조다. 그런데 지식인의 생각은 다르다. 중립과 공정은 현실을 개무시한 사탕발림이 아닐까, 라는 느낌적인 느낌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정치적 색채를 띤다고 해서 지탄을 받아야 하나, 이게 진보 진영의 평균적 발상이다. 나 역시 이런 위험한 생각에 감염되었던 것 같다. '조중동은 보수, 한경오는 진보'의 이념 프레임과 노골적인 정략 게임에 갇혀, 저널리즘의 원칙과 방송의 공정성을 가볍게 생각한 무거운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런 내게 정신 차리라고 매서운 죽비를 내리친 이가 있으니 바로 언론학자 강준만 선생이다.

강준만 선생은 방송의 과도한 당파성, 즉 '방송의 진영화'와 '정치의 유튜브화'의 위험과 폐해를 지적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문화방송 MBC다. 저자는 월간 『신동아』에 2022년 12월호부터 2023년 4월호까지 5개월에 걸쳐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MBC의 비극」이란 글을 연재한 바 있다. 이 책 『MBC의 흑역사』는 그 기고문을 바탕으로 4배 가량 늘려쓴 것으로, MBC의 정치적 편향성을 비판하면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공영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질문한다.

잘 알다시피, 한국 사회는 이념 대립이 극심한 사회다. 대중들은 이념 대립을 수단으로 돈벌이에 치중하는 지적인 이데올로그들과 유튜버들의 일용할 밥이 되기 쉽다. 공영방송 담론은 주로 언론노조와 진보 학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33년 전, 그러니깐 1990년 저자 역시 『한국 방송 민주화 운동사』에서 방송 노조를 적극 지지하면서 방송 민주화의 가치를 확신한 바 있다. 문제는 방송노조와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 방송의 중립을 기계적 중립이라고 폄하하면서 부정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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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츠나구 1 - 산 자와 죽은 자 단 한 번의 해후 사자 츠나구 1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정화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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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는 연습이 바로 철학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지인의 죽음은 깊은 상실감 때문에 내면의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충분한 애도가 따른다면 오히려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되기도 한다. 일본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사자 츠나구》는 산 자와 죽은 자 단 한 번의 해후를 약속하는 소년, 사자(使者) 츠나구를 매개로 삼아, 다섯 명의 사연을 그린 연작소설이다. '츠나구'는 매개, 즉 '연결하다', '잇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현실세계와 이세계를 오가는 그리스 신화의 전령 헤르메스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소설로 2011년 일본 고단샤 출판사의 제32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츠나구는 무당이나 영매가 아니라 망자와의 직접적인 대면 기회를 제공하는 '만남 중개인'이다. 만남의 규칙은 간단하다. 망자와는 딱 하룻밤만 만날 수 있다. 보통 보름달이 뜨는 밤, 오후 7시 정도부터 새벽까지 만남이 이루어진다. 망자가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도 단 한 명뿐이기에, 의뢰인의 요구가 있더라도 망자가 그 만남을 거절할 수 있다.

"오소레잔산의 무녀 이타코와 같은 방식은 아닙니다.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으로 빙의하거나,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당신에게 전하는 형식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직접적인 만남을 주선해 드리는 만남 중개인입니다."(13쪽)

"세상을 떠난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존재한다니, 정말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딱 한 번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날까. 책은 유일하게 위안을 주던 아이돌을 찾는 직장인 여성의 사연,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는 아들의 사연,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죽은 친구를 찾는 여고생의 사연, 실종된 약혼자를 찾는 남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그러고 보니 만나고 싶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한 유명 연예인이 있다. 바로 그룹 자드의 사카이 이즈미다.

"인간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아니면 느끼지도, 슬퍼하지도 않아. 모두에게 사랑받았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아도 딱 그것뿐이야. 오락으로서의 슬픔은 모두 가식이니까. 마지막에 모두에게 그런 감정을 제공할 수 있었다니 명예롭다고는 생각하지만. 비꼬는 말이 아니라 정말 기뻐. 하지만 모두에게 금방 잊힌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어. 겸손이 아니라 그게 바로 사실이고 진리야. 연예계에 있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60, 61쪽)

자드도 내게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사카이 이즈미의 신조는 "인생을 긍정적으로."라고 말이다. 세상엔 악인보다 선인이 훨씬 많고, 작은 호의에 감동하고 행복해하는 이들이 여전히 다수다. 뉴스를 보면 '세상이 미쳤구나' 싶다가도, 자드의 음악을 들으면 세상이 그래도 한결 아름답게 보인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나와 같은 감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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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투 스케이트보드
잭 프랜시스 지음, 에바 자크 그림, 서나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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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보드는 요요가 아니다. 요요는 아이들의 장난감에 불과하지만 스케이트보드는 올림픽 경기 종목에 오른 익스트림 스포츠다. 더구나 스케이트보드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쿨한 라이프스타일이다. 라이딩 무대에 따라 크게 스트리트 스케이팅과 파크 스케이팅으로 나눌 수 있고, 즐기는 스타일에 따라 크루징, 트릭, 트랜지션 등으로 나눌 수도 있다. 프리스타일과 프리라이딩, 슬라럼 등 다양한 즐김이 가능하다. 보드 형태는 90년대 이전의 올드 셰이프드 보드와 90년대 이후의 팝시클 보드로 나뉜다.

영국의 스케이트보더 잭 프랜시스의 《하우 투 스케이트보드》(한스미디어, 2023)는 스케이트보딩 입문서다. 스케이트보드의 구성과 조립하기, 복장, 스케이팅 장소, 기물 유형, 파크 예절을 시작으로 보드에 올라서고 밀고 회전하는 기본 기술과 다양한 트릭을 깔끔한 일러스트와 함께 정리했다. 기본 기술은 보드에 올라서기, 떨어지기, 푸시, 멈추기, 턴, 킥 턴, 롤 인, 램프 오르기, 드롭 인 등이다. 트릭의 경우, 히피점프, 보디 베리얼, 매뉴얼, 팬케이크 플립, 알리, 백사이드 팝 셔빗, 프론트사이드 셔빗, 킥플립 등 트릭의 세계에 입문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발 위치 잡기와 단계별 동작 그림으로 동작의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하우투' 영상을 같이 찾아볼 것을 권한다.

초보자들은 그 무엇보다 안전 장비를 갖춰야 한다. 헬멧과 보호대는 필수다. 그리고 트릭을 배울 때 절대 조급해하면 안 된다. 조급증과 과도한 열정은 부상을 부른다. 파크에서 고수의 화려한 트릭을 지켜보다 보면 욕심이 날 수도 있겠지만, 차분히 자신이 오늘 도전하는 기술과 트릭에만 집중해야 한다. 트릭의 꽃은 알리다. "알리는 거의 모든 플립과 그라인드 기술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트릭이다." 알리는 스케이터에겐 복식호흡과 같은 기술이다.

사는 곳 주변에 파크와 기물이 없다면 배울 수 있는 트릭이 제한되기 마련이다. 자전거도로 옆이나 교가 밑에 올림픽 규격에 맞는 램프나 제대로 된 기물 하나 설치해준다면 정말 고맙겠다. 그리고 혈세 낭비에 불과한 과속 방지턱과 자전거도로의 빨간 페인트칠 좀 삼가해 주면 감사하겠다. 넘어지면 다 벗겨진다. 옷도 피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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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어원을 만화로 잡는 4컷 영단어
히지이 가쿠 지음 / 더북에듀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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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은 영단어 학습의 지름길이다. 자주 쓰이는 어원을 통해 빠른 시간내에 영단어를 익힐 수가 있다. 영단어의 구성은 '접두사+어근+접미사'가 일반적이다. 자주 쓰이는 접두사 10개만 알아도, 그 네 배가 되는 단어 40개를 쉽게 익힐 수 있다. 가령 pro(앞)와 post(뒤), in(안)과 ex(밖), over(위)와 de(아래) 등 매우 유용한 접두사가 있다.

히지이 가쿠의 《필수 어원을 만화로 잡는 4컷 영단어》(더북에듀, 2023)는 대략 80개 정도의 어원을 통해 333개의 영단어를 빠르게 습득시키는 교재다. 4컷 만화는 웃음과 재미를 유발한다. 가령 뱀파이어가 문득 통마늘 만찬을 즐기게 된 자신을 자각하는 대목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내 당초 예상과는 달리, 재미진 만화가 단어 기억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진 못하는 것 같다. 영단어보다 오히려 웃음짓게 만든 그 컷이 더 선명하게 기억 나는 건 왜일까.

나는 학창 시절 어원으로 영단어를 집중 학습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원의 힘을 믿는다. 영어의 어원은 크게 두 줄기다. 게르만어와 라틴어. 대개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좀 딱딱하고 고상하고 어려운 편인데, 어원 분석이 이를 보다 쉽게 익히게끔 돕는다. 물론 눈으로만 대충 보고 끝나면 무용지물이다. 손으로 적고, 어원이 결합하여 이런 뜻이 되는 이유를 잡아내야, 그 단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모든 공부는 '과잉학습'이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두껍고 비싼 어원사전을 따로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 온라인 어원 사전은 강추한다. 그래도 초등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어원 공부의 첫걸음은 이 책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배워둔 어원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기억 이론 중에 '레미니슨스 효과'란 게 있다. 기억한 내용이 기억 직후보다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에 더 명확하게 생각나는 경우를 가리킨다. 내가 보기에, 어원에 의한 단어 학습은 레미니슨스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게 한다. 아마도 어원 조합에서 뜻을 유추하는 논리력이 기억력을 돕는 것 같다. 가령 본문에선 'spir(숨쉬기)'라는 어근에 기반한 단어로 spirit, inspire, expire, conspire가 나온다. 하나의 어근으로 네 단어를 쉽게 익히는 꼴이다. 여기에,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spiritual, spiritualism, spirituality 등은 그냥 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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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기술 - 세상을 움직이는 거짓말쟁이들의 비밀
마셀 다네시 지음, 김재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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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구라'에 있다. 정치인의 인품과 개성보다도 언어 전략이 정치적 성공을 좌우한다. 정치인에겐 구라가 곧 능력이다. 기호학자 마셀 다네시는 악명 높은 정치 리더들의 구라들, 점잖게 말하면 언어 전략 혹은 수사적 전술을 파헤친다. 나라와 역사를 뒤흔들던 못된 정치인들을 '거짓말쟁이 군주'라고 부르고, 대중 선동에 능한 이들의 성공 비밀을 '거짓말의 기술'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지만, 거짓말의 기술을 파훼할 유일한 해결책은 진실과 논리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저자의 주요 탐구 대상은 트럼프와 트럼프 진영의 슬로건이다. 일테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가짜 뉴스, 대안 사실, '오물을 퍼내자', '민중의 적' 등이다. 그리고 행동과 발언에서 트럼프와 공통점이 적지 않은 독재자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양념으로 등장한다. 또한 대중 통제의 기술과 지배의 수사학과 관련된 다양한 문헌들이 소환되는데, 가령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조지 오웰의 『1984』, 월터 리프먼의 『여론』,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 에드워드 허먼의 『위선의 이면』, 동양고전 『손자병법』 등이 그러하다.

"말재간이 뛰어난 거짓말쟁이 군주는 기만적인 언어를 사용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현실을 가리는 안개를 드리우고, 그 대신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어 정치 사회에 도덕적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주된 방법은 동일한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이다."(47쪽)

거짓말이 인격을 말살하는 위험한 무기라면, 거짓말쟁이 군주는 세상의 평화를 해치는 사악한 존재다. 사업가이자 배우이자 리얼리티 쇼 스타 출신인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의 지성인들과 딥스테이트 엘리트들의 끔찍한 악몽이었다. 트럼프는 노골적인 기만과 선동, 과장된 허언과 현혹, 뻔뻔한 유혹과 설득의 종합선물세트다.

저자가 다루는 '거짓말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아노미의 토양에서 만발한 소외감, 사이버 공간의 내부 냉전, '대안 사실'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은 허풍, 날조와 조작으로 역사를 호도하는 '작화', 오늘날 온라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짜 뉴스',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인식을 왜곡하는 '가스라이팅' 등이다.

거짓말쟁이 정치꾼은 소외된 이들을 집중 공략한다. 사회심리학에 따르면, 소외란 "희망이 사라졌다는 생각 또는 사회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품게 되는 고립감"이다. 즉 배후에 아노미와 소외감이 작동하면, '죄 많은 구원자'가 정치적 스타가 되곤 한다. 사이버 공간의 내부 냉전은 '분열시키고 정복하라'는 마키아벨리 전술에 충실하다. "적들의 힘을 분산시키고, 기존의 권력 구조를 해체하며, 민중 내에 대결 구도를 조성하는 것"이다. 가령 "트럼프의 발언은 지지자들을 응집시키는 신호, 상징적인 비유, 호전적인 구호 등 내부 냉전을 위한 수사적 전술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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