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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과학 - 세상을 움직이는 인간 행동의 법칙
피터 H. 킴 지음, 강유리 옮김 / 심심 / 2024년 6월
평점 :
신뢰는 실망시키지 않을 거란 믿음이다. 신뢰의 기본은 동질성과 유사성이다. 유유상종이라고, 나이, 성별, 사회적 계층, 세대, 고향, 취향 등이 같으면 기본적인 대인 신뢰감이 대폭 상승한다. 소조직의 신뢰도는 끈끈한 '끼리끼리 문화'를 낳는다. 인싸는 인싸끼리, 아싸는 아싸끼리. 일반적으로 타인에 대한 우리의 신뢰 판단은 합리적이거나 치밀하지 못하고, 주관적인 편향이나 엉성한 고정관념, '카더라 평판'에 쉽게 좌우되곤 한다. 가령 정치 성향, 직업, 거주 지역, 출신 학교처럼 속해 있는 집단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해 매우 성급한 결론을 내리곤 한다.
한국계 미국인 출신의 조직행동학자 피터 H. 킴은 신뢰를 결정짓는 두 개의 강력한 요소로 '역량'과 '도덕성'을 크게 강조한다. 역량은 "누군가에게 과제 수행에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과 대인관계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고, 도덕성은 "누군가가 용납할 만한 일련의 원칙을 지키리라는 믿음"이다. 정치판이든 스포츠판이든, 아님 방송연예계든, 한국 사회에서 학연과 지연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바로 사회적 평판과 신뢰도를 좌우하는 이 두 요소의 검증이 용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우리가 어떤 사람의 신뢰도를 평가할 때 최대 열 가지 특성을 고려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시간적 여유, 역량, 일관성, 신중함, 공정함, 도덕성, 신의, 열린 마음, 약속 이행, 수용력이다. 이중에서 역량과 도덕성이 신뢰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신뢰 위반과 불신의 문제, 그리고 신뢰 회복의 여부 역시 이 두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
역량에는 긍정적인 편향이 개입된다. 신뢰 위반이 역량 문제로 인지되면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열 번 잘하던 사람이 한두 번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능력하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심 어린 사과가 신뢰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도덕성은 부정적인 편향이 개입한다. 신뢰 위반이 도덕성 문제로 인지되면 땅에 떨어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다. 가령 유명인사에게 들이대는 우리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떠올려보라. 평소 '바른 생활 사나이'나 '유교걸'의 이미지를 지닌 공인이 한 번이라도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비도덕적인 자로 낙인찍히기 쉽다. 이 경우 위반자의 사과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명심하라, 도덕성 문제는 사과로 해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