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 찬란한 생의 끝에 만난 마지막 문장들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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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해진다. 증자의 말이다. 유명인사의 유언이나 비문을 살펴보면 얼핏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죽음에 처한 이의 마지막 말을 모아 보면 어처구니 없어 보이거나 허무맹랑한 것도 적지 않다. 설령 진지한 유언을 남겼다 해도, 진실성은 느껴지지만 뭔가 배울 만한 그런 게 없어 보이는 것도 있다. 가령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부인과 동반자살을 했는데 이런 유언을 남겼다."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 그런데 의사 출신의 독일 작가 한스 할터에 따르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언은 이보단 더 문학적이다.

"나의 모든 친구들이 길고 긴 밤 뒤에 찾아오는 붉은 해를 볼 수 있기를. 그러나 무엇보다 참을성 없는 나는 그들보다 먼저 떠난다네."(221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책도 썼는데, 유럽 명문가 출신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다. 어머니가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이고, 남편은 프랑스 황제 루이 16세다.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왕녀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말은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였다. 처형될 때 사형집행인의 발을 잘못 밟자 한 말이란다. 반면에, 남편인 루이 16세는 보다 당당한 최후의 말을 남겼다.

"나는 비록 죄가 없지만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나의 피가 프랑스를 위해 사용되기를 기원하고 그리고 신의 화를 잠재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 불행한 민족에게도……."(66쪽)

한스 할터는 이 책에서 유명인사 수십 명의 유언과 마지막 말을 조사하고 수집했다. 개인적으로 괴테나 오스카 와일드 같은 문필이 뛰어난 작가보다도 찰스 다윈,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 같은 과학자들의 마지막 말이 더욱 큰 문학적인 울림을 준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일테면, 찰스 다윈은 심장병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에도 어떠한 섬망 증세도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죽음 앞에서 일말의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다"는 현자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아인슈타인 역시 아주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는데, 수양딸에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구나"라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고. 라듐의 방사선 폐해에 오랫동안 시달린 마리 퀴리는 햇살 가득한 알프스를 바라보면서 "나의 고통을 덜어준 것은 약이 아니라 자연과 신선한 산의 공기로구나"라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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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나야 할 단 하나의 논어 - 혼돈의 시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고전
판덩 지음, 이서연 옮김 / 미디어숲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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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는 비밀이 없다. 암호학자가 나서야 하는 그런 난해한 암호도 없다. 공자의 가르침은 맑고 투명하지만, 그 해석은 늘 열려 있다. 배우는 이의 수준에 따라서 이해는 점차 깊어지고 넓어진다. 공자의 가르침을 딱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박제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가령 「학이」편의 유명한 세 구절을 보자. 각각 배움, 인간관계 그리고 자기수양의 정수를 알려주는 핵심구다. "학이시습지"는 개인의 학습을, "유붕자원방래"는 협력방법을, "인부지이불온"은 수양의 결과를 강조한다.

이는 증자의 "오일삼성오신"(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령, "전불습호"(전수한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는 배움의 태도를, "여붕우교이불신호"(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이 있지 않았는가)는 인간관계의 태도를, "위인모이불충호"(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는 직무 태도와 수양의 측면을 가리킨다.

공자의 지혜가 담긴 『논어』의 문장은 누구나 적용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 먼저 배움에 있어선 자기주도적 학습과 메타인지, 그리고 무지와 자만의 위해성을 톺아볼 수 있다. "배우고 제때 익힌다"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강조하고, "안다는 걸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게 아는 것이다"라는 말은 메타인지의 측면이다. 한편,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는 낡은 통념을 비롯한 '학습된 무지'와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자만'의 위해성을 가리킨다.

또한,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라는 말도 빼놓을 수 없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거워하는 사람만 못하다"는 공자의 이 말은 배움의 경지에 관한 최고의 명언이 아닐까 싶다. 공자는 교사나 강사처럼 배움을 아는 사람보다는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배움을 즐기는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한다. 잘 알다시피, 공자가 제일 아낀 수제자는 안회다. 공자는 안회를 배움을 좋아하는 호학의 본보기로 보았고, 안회의 '불천노, 불이과'의 자세를 높이 평했다. "노여움을 옳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안회는 분명 '락지자'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을 것이다.

흔히 공자의 인품을 논할 때 '온량공검양' 다섯 키워드로 말하곤 한다.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검소함, 겸양함을 말하는데, 이 오덕은 군자의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인품을 갖고 있다면, 열심히 노력했는데 남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논어』에는 이밖에도 '군자무본', '군자불기', '경사이신', '지자요수, 인자요산' 등등 인품과 덕에 관한 주옥같은 명문장이 수두룩하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저명한 '독서 커뮤니케이터' 판덩은 '지자요수, 인자요산'을 이렇게 해석한다. "지혜로운 사람의 즐거움은 물과 같고, 어진 사람의 즐거움은 산과 같다"고. 참고로, 유가의 삼달덕(三達德)은 지(智)ㆍ인(仁)ㆍ용(勇)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미덕'은 어짊과 지혜로움 이외에 용맹스러움이 추가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자가 말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덕목을 모두 갖춰야 한다."(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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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고 뭔가 빠져있다면 - 마음을 치유할 심리치료사의 핵심 아이디어
프랭크 탤리스 지음, 손덕화 옮김, 김정택 감수 / 더로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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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서서히 망가지지만, 현타는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한번 망가진 관계는 우리의 인식을 매트릭스 안에 갇히게 한다. 매트릭스 내부에서 나오려면 관계가 깨지게 된 과정과 상황을 소급하여 분석해야 한다. 과거의 사건, 상황, 사람들을 소환하고, 당시의 감정, 생각, 분위기 등을 반추하게 된다. 마치 누군가의 과거사를 추적하는 끈질긴 탐정이 된 것처럼, 자신을 낯선 타인으로 삼아 망가진 관계의 깊은 고랑을 파헤쳐야 한다. 고랑은 점차 깊어지거나 갈래로 퍼져나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아갈 방향을 도와주는 길잡이들이 있다. 프로이트, 융, 에리히 프롬, 프리츠 펄스, 빌헬름 라이히, 도날드 위니캇, 앨버트 엘리스 등의 심리치료 멘토들이다.

무한궤도 매트릭스에 속절없이 갇힌 느낌, 바로 그런 게 "삶이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고 뭔가 빠져 있다"는 휑한 느낌이다. 망가진 관계의 진흙탕에서 빠져나오려면 관계의 개선이냐 아님 관계의 청산이냐 선택해야 한다.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형제자매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언제나 관계의 질이 관계의 수보다 더 중요하다.

현대인은 불안하고 우울하고 외롭고 자기중심적이다. 화가 호퍼의 대표작 〈밤을 새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인과 연락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나왔지만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손안의 스마트폰은 개인 정체성의 분할, 복제, 전파와 분산에 무한한 기회를 제공한다. 얄궂게도,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절규〉는 바로 분열된 자아나 과장된 낭만적 자아상이라는 스마트폰의 치명적인 부작용에 딱 걸맞는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심리치료사 프랭크 탤리스는 우리의 상당수가 디지털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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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먼지와 잔가지의 과학 인생 학교 - 과학 공부한다고 인생이 바뀌겠어?
이명현.장대익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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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종교의 나라다. 방송 채널은 물론, 지하철 역과 번화가 거리, 병동에서 종교 전도사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종교의 나라다. 반면에 과학의 나라는 못된다. 우선 방송 채널 가운데 이렇다할 대중 과학 프로그램이 없다. 유튜브에 물론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나 과학도들이 있지만 게인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 평생 교육 운동의 차원은 못되고 있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과학도조차 밥벌이인 자기 전공 외에는 타 분야에 대해 신경쓸 여력이 없다. 가령 천문에 심취한 뇌과학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조류에 흥미있어 하는 물리학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의 자연과학 공부도 한두 특정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 뇌과학이나 진화생물학 정도다. 솔직히 물리, 화학, 천문 쪽으로는 고딩 수준에서 제자리 걸음 상태다.

대중의 과학 지식을 제고하기 위해 두 명의 과학자가 용감히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전파 망원경으로 천문을 연구하는 천문학자 이명현과 《다윈의 식탁》으로 유명한 진화학자 장대익이다. 두 사람은 "21세기의 핵심 교양은 과학이다"라고 외치면서, 과학 공부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과학 지식은 세상을 크게 바꾸었다. 지동설과 진화론, 상대성이론 같은 과학 지식을 떠올려보라.

그런데 자연 세계를 설명하는 이런 딱딱한 과학 지식이 과연 나 자신의 삶과 행복 그리고 인생의 의미에 대해 뭔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나 싶은 의심이 들기 쉽다. 삶의 의미와 행복의 문제는 주로 철학과 종교의 영역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령 두 과학자는 인간의 본질을 각각 '별먼지'와 '잔가지'로 바라보는데, 얼핏 이런 과학적 시각이 내 개인적 삶에 뭔가 특별한 영향력을 끼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두 과학자에 따르면, 과학 정신,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태도는 우리 인생에 위안과 행복을 주고, 타인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법을 깨닫게 하고, 만물과 공존하는 열린 시각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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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선택을 위한 가장 쉬운 경제학 - 기본 상식부터 투자, 금리, 국제경제까지 생활 속 궁금했던 경제 읽기
남시훈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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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연구대상은 사람들의 '선택'이다. 흔히들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떠올리며 경제학이 사람들의 합리적 선택만 중시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은 "양심적인 선택, 사회적 규율을 우선시하는 선택, 비합리적인 선택 등"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경제학 연구의 출발점은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다. 경제체제란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면서 상품을 분배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품의 생산과 배분은 시장과 가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시장경제체제다.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경제체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때론 수요 측의 사재기 현상이나 공급 측의 바가지요금과 담합 같은 불공평한 현상도 발생하고 가격 변동 때문에 혼란이 발생하기도 해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시장경제체제보다 더 나은 경제체제가 없지만, 시장경제체제와 가격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경제체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 이유다. 또한 규모의 차원에서, 개인, 가계, 기업 차원의 경제를 넘어 GDP(국내총생산), 인플레이션, 국제수지 같은 국가경제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그럼, 효율성과 형평성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정답은 없다. 다만 일부 자유지상주의 경제학자들은 효율성을 중시해 '작은 정부'를 옹호한다. 하지만, 저자 남시훈의 견해는 다르다. 저자는 형평성을 강조해 정부가 많이 개입해야 한다는 '큰 정부'를 옹호하는 편이다.

"현대 사회와 경제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의 해답은 결국 정부에 달려 있다.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형평성을 추구하며,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인구 감소와 노령화에 대비하고,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안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거듭 강조하지만 정부가 제 역할을 하려면 세금이 있어야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세금을 안 내거나,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시장경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시장 경제 내에서 정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물론 큰 정부가 좋은 정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은 정부는 좋은 정부가 될 수 없다."(64, 65쪽)

저자가 '큰 정부'를 옹호하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 문제에서도 긍정적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재원 조달의 어려움과 정부의 선별 능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흔히 경제학 진영을 좌우파로 나누어, 좌파적 경제학자는 불평등과 빈곤을 줄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큰 정부를 선호하고, 우파적 경제학자는 불평등과 빈곤을 줄이는 것보다는 효율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여 작은 정부를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큰 정부를 옹호하면 기본소득에 찬성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게 아니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기본소득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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