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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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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는 복제 기술로 인해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변용되었는지, 누드화에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선의 정체가 무엇인지, 실제처럼 보이는 유럽의 유화에 담긴 소유관계와 무의식적으로 노출되어 온 광고 이미지의 본질들을 꼬집는다.



1.신비화


카메라 발명이후로 그림은 더이상 신비화 될수 없다.

카메라 상용화 되면서 복제기술이 발달화 됨에 따라 지배권과 비지배권이 개념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미지에 의도되는 정치적, 상업적 이슈들이 개입되었다.

현재에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한폭의 풍경화를 '볼'때 우리는 자신이 그 풍경속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과거의 미술을 본다면, 자신이 역사 속에 있는 것처럼 생각할것이다. 과거의 미술은 특권을 지닌 소수가 지배 계급의 역할을 정당화 할수 있는 역사를 새로 꾸미려고 신비화 한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에는 신비화의 개념이 시간의 격차로 가질수 없는 부분으로 신비화 시킨다. -34P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한다. 매일 저녁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볼때 , 우리는 해가 지평선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럼에도 불구 하고 미술작품에는 보는 광경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언어와 시각 사이의 영원한 어긋남을 그림속에 표현했다.


2. 누드화를 통한 성차별


누드화를 소재로 성의 불평등을 이야기한다. 

여성모델을 관찰하는 관객은 남자이고, 여성은 남성 지배층 관객들에 대상화 된다.

관찰되는 여성은 관찰자에게 어떻게 보여지는지 의식한다.



우리를 움직이기 하는 것은 초상화에 그려진 인물들이 할스 앞에 포즈를 취했을때 할스가 보았던 방식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때문이다.-19p


3.유화안에 담긴 자본주의


유화는 물질성을 보여주는 사유하는 정신이 아닌 외양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게인즈버러의 귀족부부의 풍경화,

정원에 앉은 앤드루스 부부 전원 풍경, 자연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싶어 그렸던 전원풍경이  부부의 부를 상징하는 장소를 과시하기 위해 그려졌다고 비평을 한다.



4.광고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 미술형식을 빌어온다.

화려한 이미지 현혹되는 광고안에 숨겨져 있는 사회,정치적의미를 살펴본다.


광고는 계속 연기되는 미래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현재를 배제하고, 모든 생성과 발전의 여지를 없에버린다.광고안에서의 경험이란 불가능하다.왜냐하면 모든것은 광고밖에서 일어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다수의 관심을 가능한 한 좁은 범위안에 가둬 둠으로서 생명을 이어나간다.

오늘날 와서는 발전된 국가들에서 무엇이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않은지에 관해 잘못된 기준을 

부여하여 달성한다. 177P



최초의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그림이나 책을 접하기전 설명를 읽지 않는다.

미술사조, ~개념이전에 '보는 주체인 나의 직관'을 가지고 작품들을 대하는 방법이 작품을 잘못 해석하더라도 말 이전에 행위에 행하는 이유이다.



게인즈버러 '앤드루스 부부의 초상'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9P

#다른방식으로보기
#존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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