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에 핀 꽃도 아닌데 사과꽃이라 부르는 꽃이 있습니다.
붕어도 안 들었는데 붕어빵이라 부르는 풀빵도 있죠?
살아가는 게 늘 장밋빛은 아니지만, 장밋빛이라 부를 수는 있어요.
오드리 헵번이 그랬던가요? 와인 잔을 눈앞에 대고 세상을 바라보라! 그게 바로 장밋빛 인생이다 라고요.
정말?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멘트를 쓰고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새벽이 아직도 기억난다. 몇 년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 주인공 공진솔에게 이 멘트를 주었다. 원고에 자꾸 인생이란 낱말이 들어가서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진솔 씨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싶다. 장밋빛 유리로 잿빛 현실을 채색하는 마음은 나약함일까요, 차라리 삶을 대하는 용기일까요. 그렇게 바라보는 세상은 가짜인 걸까요? 그렇다면 맨눈으로 응시하고 파악하는 현실이란 과연 얼마나정확한 세상인 걸까요. 거기엔 오류가 없다고 믿어야 할까여전히 쉽게 단정 짓지는 못하겠다. 다만, 대안이라 하기에도 미약할지 모를 그 필터 같은 존재들을 나는 창문 페인터라 부르고 싶다. 창밖이 건물 벽으로 꽉 막혔다. 해도, 거기에 빛나는 존재들.
생의 어느 순간이 되면 창문 페인터가 간절히 필요한 때가 있다.
내 남루한 벽의 흠집을 가릴,낡고 피로한 풍경을 바꿔줄 희망이.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해도 사랑스럽고 고맙다. -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