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서당 8 - 조선시대 순조편 맹꽁이 서당 8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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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던것 같다.   지금까지도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역사도 잘 있는것 같아서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례부터 재미있는 제목들이 나와서 가장 빨리 읽은 것 같다.   도움도 잘됐다.    

정약용은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그는 실로 박해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긴 개혁이론가로서 근세 실학사상을 총 집대성했다.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서구라는 사람이 길을 가는데 웬 소년이 책을 가득 지고 가는 걸 보았다.   그런데 10여 일 후 같은 장소에서 또 만난 것이다.   그는 그 책들을 다 읽고 내려온 것이다.   그 소년이 바로 정약용으로, 이서구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비상한 천재였기에 훗날 많은 저술도 남길 수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 죽이려 드는 세력들의 핍박 속에 18년 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년에 그 일을 이루어 냈다.    

순조 11년, 홍경래는 불과 10여 일 만에 청천강 이북 지역의 여덟 개 고을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이는 관아마다 내통한 아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수령을 겁주어 항복하거나 도망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홍경래가 반란 119일 만에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성 일부가 무너졌고 들이닥친 관군은 반군, 양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실육했다.   홍경래는 우군칙, 홍총각과 더불어 남문으로 빠져 나가던 중 마구 쏘아 대는 총탄에 맞아 죽었다.   우군칙, 최이륜은 귀성 우장령 고개를 넘다가 사로잡혔고 이희저는 희천에서 장수 함의형 손에 목이 떨어졌다.   이로써 홍경래의 나은 막을 내렸으나, 실로 엄청났다.   성 중에서 사로잡힌 2,983명중 여자 842명과 10세 이하 어린이 224명을 제외한 1,917명이 효수되고 반란에 가담한 무리는 속속들이 추적해 죽이거나 옥살이 시켰다.    

정약용은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로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그를 아끼는 정조를 도와 많은 업적을 쌓았다.   나는 정약용을 본 받아야겠다.   하지만 난사람이 되는 것보다 된사람이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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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7 - 조선시대 정조편 맹꽁이 서당 7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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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표지를 봤을 때부터 정조가 나와서 전에도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만화책이라서 그런것 같았다.    

조선 임금 중 가장 장수했고 가장 왕위에 오래 있었던 것은 영조였다.   영조는 호협, 검소하며 현명한 임금이었다.   평생 두고 세자를 뒤주 속에 가두어 죽게 한 일로 후회하였다.   뒤를 이어 등극한 임금은 정조이다.   바로 사도 세자의 아들이 된다.   정조 역시 조선 후기 영명한 임금이고 그는 어릴 때 겪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원한이 맺혀서 살았다.   보위에 오르자 당시 간신배들을 모두 처형하거나 사악을 내렸다.   그리고 양주 땅의 묘를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역대 어느 임금 못지않게 묘를 가꾸고 치장을 했다.   자주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가 부친 묘애 참례했다.   그 당시 임금의 능행 거동은 장관이었다 한다.     

정조는 조선 제 22대 왕으로 아버지는 사도 세자이며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이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뜻을 이어받아 당파 싸움을 뿌리 뽑기 위해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고루 뽑아 썼다.   또한 규장각을 세워 역대의 서적을 보관하고 인쇄술의 발전을 꾀하였으며 서적 편찬에도 힘써 많은 서적을 간행했으며 자신의 문집도 완성했다.  

어느 날 홍국영은 친척인 영의정 대감을 찾아가서 이때 옆에 있던 동생 홍인한이 욕을 퍼부었다.   머리가 좋은 홍국영은 패물을 팔아 300냥을 만들어 시험관 댁 청지기를 매수했다.   며칠 후에 편지가 왔는데 그 편지는 사위를 급제시키려고 시험지 끝에 O 표시를 하란 것이다.   묘한 술수로 벼슬길에 나간 홍국영은 세자시강원의 사서가 되었다.   이 때 세손은 사도 세자의 아들로 웬일인지 말이 없고 흥국영도 본체만체 무표정일 뿐이었다.   그런 어느 날 상감이 세손을 불렸는데 세손은 불쑥 대답한다는 게 읽지도 않은 책을 말했다.   그 책은 영조가 아주 싫어하는 책이다.   영조의 생모는 궁중 무수리 였던지라 그런 귀절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홍국영은 세손을 떼어 놓으려고 수작을 부렸다.    

내가 이 책을 2번 읽었지만 그때 읽은 것과 또 다른 것을 알게 된 것 같고 독후감을 쓰니 기억에 더 남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 부터는 읽은 책은 독후감을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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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6 - 조선시대 영조편 맹꽁이 서당 6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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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사 위주가 아닌 만화위주가 되어서 조금 아쉬운것 같다.   그래도 나는 재미있어서 좋았다.   알게 된 것도 많이 있다.   하지만 역시 역사책은 역사위주가 좋은 것같다.    

영조는 조선 왕 중 가장 장수했다.   또한 가장 오래 임금 자리에 계셨던 분이시다.   그의 어머니 최씨는 원래 대궐에서 심부름을 하던 궁녀였는데 숙종 임금의 은총을 받아 후궁이 되어 연잉군(후일영조)을 낳은 것이다.   당시 왕비였던 장 희빈은 숙빈 최씨를 아주 미워했다.   어느 날 숙빈 최씨를 끌어다 몹시 매를 쳤다.   그때 마침 숙종은 낮잠을 자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은 큰 황룡 한 마리가 커다란 항아리에 깔려 죽어 가는 꿈이었다.   숙종은 괴이하게 여겨 대궐 뒤뜰로 가 보았다.   거기엔 과연 큰 항아리가 있었다.   내시들이 항아리를 치우자 거의 죽어 가는 숙빈 최씨가 나왔다.   곧 방으로 옮겨져 치료하니 숙빈은 살아났는데 이때 영조를 잉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영조는 죽을 뻔한 몸숨이었다가 태어나 후일 왕위에 오른 것이다.   그 후에도 당파 싸움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영조는 아주 검소한 임금이고 자신이 거처하는 방의 창호지가 떨어지자, 손수 종이를 오려 붙이기도 했으며 비단옷보다 무명옷을 즐겨입었다.   신발과 버선도 해지니 기워 신도록 했으며, 보료도 낡은 것을 그냥 썼다.   이처럼 영조는 검소했을 뿐 아니라 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썼으니 건국 이래 새로운 꽃을 피우는 시절을 맞이한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천 이종성 대감은 덕행이 높은 어른이다.   오성 이항복의 후손으로 대대손손 인재가 쏟아져 나온 명문 경주 이씨 가문으로 이종성 역시 나라에 공이 컸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그는 노년을 장단 땅에 은거하여 장단 대신 이라고도 불렀다.   당시 청나라는 우리 조선을 괴롭혔다.   제단인 대보단을 만들어 놓고 없어진 명나라의 태조, 신종, 의종 세 임금의 제사를 드리는 걸 못마땅히 여겨서이다.   어느 날 이종성 대감은 하인들이 깨끗이 청소하고 기다리니 과연 유척기 대감이 왔다.   평소 반대파인지라 병풍을 치고 맞아들였다.   그런데 이종성은 관계없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유대감은 말 뜻을 곧 알아들었다.   유 대감이 청나라에 이르러 황제를 배알했다.   이종성 대감은 지략도 뛰어나니 나라 근심도 덜게 된 것이다.    

나는 이번것이 재미있다고 생각 하지만 다른 책에 비해 도움은 조금 덜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읽으니까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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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5 - 조선시대 현종-경종편 맹꽁이 서당 5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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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많아서 더욱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이제 부터도 이런 책이 더욱 많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잘 알지 못했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것을 잘 알수 있었다.   그래서 전 부터 읽은 보람을 느꼈다.     

효종의 북벌 정책에 앞장섰던 우암 송시열은 도량도 매우 넓었다.   어느 해인가, 평복으로 종자 하나와 지방을 다녀올 때였다.   얼마 안 가 큰비가 쏟아졌다.   비를 흠뻑 맞고 주막에 들어서니 방엔 웬 벼슬아치가 먼저 와 있었다.   벼슬아치가 깨니 거만한 자세로 힐끔힐끔 보다가 음성이 우렁차니 다소 놀라는 듯하다가 다시 얕잡아 보고 무관은 금세 새파래졌다.   효종의 북벌 계획을 적극 추진한 이완 대장이다.   매우 용맹스런 장수로 만약 효종이 일찍 붕어하지 않았으면 청나라 서울까지 쳐들어갔을 사람이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힘이 장사였고, 담력과 배짱은 당할 사람이 없었다.    

북벌을 추진하던 효종이 41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자 하나뿐인 아들 현종이 등극했다.   현종은 병자호란 때 인질로 청나라에 끌려간 봉림 대군 의 아들로 심양에서 출생했다.   당시 논학이라는 아주 충실한 노비가 있었는데 논학은 봉림 대군을 극진히 모셨다.   외로운 처지의 봉림 대군은 늘 논학 의 고마움에 감사했다.   그러다가 아들을 낳자 그는 사방에 수소문하여 용한 점쟁이를 찾아 낸 후 논학은 허둥지둥 다녀왔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이른바 상복 제도에 관한 시비인데 효종의 상중에 그 계모인 조 대비가 상복을 3년 입느냐 2년 입느냐는 문제이다.   대관절상복 입은 문제를 놓고 왜 대신들이 시끄럽게 논란을 벌인 하겠지만 이것은 소현 세자가 죽어 대신 왕이 된 효종이 적통이냐 아니냐로 판가음나느 문제라 자칫 현종마저 왕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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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꽁이 서당 3 - 조선시대 선조편 맹꽁이 서당 3
윤승운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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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모르는 것이 아주 많이 있었지만 읽는 것에는 문제가 거의 없었고 재미도 있었다.   사실 지금 까지중 제일 재미가 없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것이 엄청 재미있었기에 이것이 다른 것에 비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신립은 용맹한 장수였으나 성격이 사납고 거칠어 사람들이 잘 따르지 않았다.   왕은 그에게 보검을 주며, 조령에서 적을 막게 했다.   그런 한편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온 후, 왜가 침입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김성일이 잡혀 오는 동안 대신들의 만류로 싸워 공을 세우게 했다.   그래서 나라를위해 충성할 기회를 다시 얻었으나, 전염병으로 죽고 말았다.   신립은 조령의 지세를 보고난 후에 결국 좋은 곳에서 물러난 탓에 충주 달래강의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가 참패하고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신립의 패배 소식은 조정과 백성을 놀라게 했으니 왜병은 조령에 이르렀을 때 매우겁을 냈다 한다.    

옛날 중국 진나라 때 무릉 사는 어떤 어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어부가 계속 올라갔더니 웬 굴이 있었다.   들어가 보니 복숭아 꽃이 만발한데 그곳에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살고 있었다.   왜란 중 심각한 것은 식량 문제였는데, 왜병은 우리 나라에서 약탈로 현지 조달했으며 명나라 구원병 역시 조선에서 식량을 대 주니 일반 백성은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   덩달아 전염병도 창궐해 가는 곳마다 시체가 쌓였으며 그 비참함과 참혹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김덕령 장군은 전라도 광주 석저촌 사람으로, 실로 무서운 장사였다.   노하면 눈에서 불빛이 철철 넘쳐 1km 밖까지 뻗쳤다고 한다.   두 세 길 되는 높은 담도 쉽게 뛰어 넘었으며 맨손으로 두 마리의 범을 잡기도 했다.   말을 타는 솜씨도 뛰어났고 말을 탄 채 좁은 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뛰어나갔다했다.   하지만 그는 뼈가 부러진 채, 29세란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이해 못할 것은 다른 사람은 모두 무사했고 유독 그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먼 훗날 나라에선 그의 누명을 벗겨 주고 병조참의를 추증했으며, 정조 12년엔 좌찬성에 충장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능양군은 선조의 손자이고 광해군에게 조카가 된다.   능양군은 광해 시절 언제 죽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안하게 지냈다.   실제로 그의 동생인 능원근은 왕과가 있다는 요설로 광해가 죽였다.   형인 능양군이 왕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했지만 소용 없었다.   반정 무리와 능양군은 서로 손을 잡게 되었다.   원두표는 혈기 왕성한 젊은 이로 먼저 재령 군수인 부친을 찾아갔다.   반정군은 능양군을 모신 장단 부사의 병력과 합세해 성으로 달렸다.   창의문은 이기축의 도끼로 부서지고 반정군은 성내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재미있긴 헀으나 모르는 내용이 조금 많아서 이해가 안되는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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