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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평점 :

열두 시 정각에 우는 부엉이 영감의 소리를 듣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달팽이'는 어떨까?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새로 열 식당 이름은 '달팽이'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좋았어! 롤케이크처럼 이불을 둘둘 만 채 혼자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의 땅'이다. (75)
오가와 이토의 다른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달팽이 식당』 서평단 모집글에 관심이 갔고,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책이라 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링고, 남자친구가 살림살이를 싹 다 가져가 텅 비어있는 집. 믿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주한 링고는 실어증 증세를 보인다. 구석에 유일하게 남겨진 할머니의 마지막 겨된장 항아리와 함께 오래도록 가지 않았던 고향으로 내려간다. 돌아온 고향에서 달팽이 식당을 열며 다시 시작하는 링고와 달팽이 식당을 찾아오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손님들. 그렇게 달팽이 식당으로 들어가본다.
창고였던 공간을 하나씩 고쳐가며, 취향에 맞게 달팽이 식당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부터 '달팽이'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렇게 달팽이 식당이 완성되고, 달팽이호같은 달팽이만의 것이 하나씩 채워지는 과정이 느리지만 조용하게 마음 속에 안착된다.
시골의 풍경 속 달팽이호를 타며 스쳐 지나가는 링고의 모습이 보인다. 달팽이 식당의 주변 풍경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달팽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작고 아담한듯 편안한 분위기를 느껴진다. 자연의 소리와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섞인다. 맛있는 냄새가 전해져온다. 내 앞에 음식이 놓여진다. 달팽이 식당의 식탁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한다. 링고가 만들어주는 나만을 위한 음식, 그 음식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용기, 기운을 줄지 무척이나 설레며 기대가 된다.
요리의 세계로 이끌어 준 할머니, 그 추억의 맛과 그리움이 어느새 소박하고 따스한 분위기인 달팽이 식당에 녹아져 있다. 정성이 가득한 음식, 그 음식에 담겨있는 링고의 따뜻한 마음이 손님들에게 닿는다. 저마다의 사연들, 음식에 담긴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받고, 사랑이 시작된다. 그리고 오래도록 쌓아온 엄마와의 오해도 풀리며 링고 자신 또한 치유의 시간을 맞이한다.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초반 엘메스를 위해 음식을 연구하며 먹이는 모습에 조금은 감동 받았는데, 엘메스의 결말이 엉엉. 나의 환상을 조금 깨버렸다. 사람에게 전해져오는 마음도 좋았지만, 거식증 토끼 이야기가 나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상실감, 그리움, 추억. 위로와 용기, 사랑 그리고 화해.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달팽이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요리를 만든다. 단지 그 사실만으로, 내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황홀해하고 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한겨울 밤하늘에 대고 몇 번을 소리쳐도 부족할 정도였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목이 쉴 때까지 모두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아주 잠깐 눈이 그친 하늘에는 무수한 빛들이 모닥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169)
[알에이치코리아 서평단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