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x 키미앤일이 썸머 에디션)
김민철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4월
평점 :
품절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의 오롯한 진심을 고이 접어 고스란히 당신 손에 쥐여주고, 과거의 따스한 온기 아래 지금의 저를 데려다 놓고 싶었어요. 그곳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과 미소와 나무를 잊지 않도록. _13


편지글을 좋아한다. 편지에는 따스한 애정이 묻어나서.
이 편지에는 여행의 그리운 순간, 사랑하는 사람, 감사한 순간, 우연이 운명이 되는 시간들의 반짝임이 담겨져 있다.

지나온 여행 속 추억을 되새겨보는 시간.
그날의 기억, 그날의 날씨, 그날의 풍경, 그날의 음식, 그날의 음악, 그날의 순간의 조각들이 다시금 펼쳐진다.
그렇게 지나온 여행은, 다시 내게 여행이 된다. 



여행자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사람이죠. 잘못 본 지도, 놓쳐버린 버스, 착각한 시간, 하필 떨어지는 비. 여행엔 매 순간 우연이 개입하기에 그 우연을 불행으로 해석하고 있을 틈이 없더라고요. 재빨리 음악의 힘을, 커피의 힘을 혹은 술의 힘을 빌리거나, 작은 가게 속으로 피신해서 작고도 단단한 행복을 손에 쥐어보려 저는 애를 씁니다. 억지로 불행의 핸들의 꺾어 행복으로 향하는 거죠. 놀랍게도 그 순간 가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요. 의도하지 않은 삐걱임이 문득 완벽함으로 연결되는 거죠. 그럼 저는 기꺼이 그 우연을 운명이라 믿어버려요. 어떤 심오한 존재가 나를 위해 세밀하게 준비한 이벤트라 기꺼이 믿어버려요. 운명이 아니고서야 이토록 완벽할 리가 없잖아요. _25​


추웠던 그 날 내게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주던 귀여운 잔에 담긴 핫초코 한 잔의 기억부터 계획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순간들로 당황했던 그 날의 기억까지 나의 소중한 조각들을 펼쳐본다.
그 사소하고 소중하고 짜릿한 순간이 다시 내게 박혔으면.
또다시 또다른 어쩌면 같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
기다렸던 여행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여행자의 영혼을 담아 마법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기를.
그 아름다움에 무사히 갇히기를. 



근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이 드네. 정말 나는 혼자 여행하고 있는 걸까.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한 걸까. 그 누구도 혼자 여행하진 않아. 그런 건 없어. 정말 혼자인 사람도 금세 누군가와 함께가 되곤 하지. 독일 쾰른 대성당의 그 뾰족한 지붕 아래에서도, 모두가 사랑으로 흥성이는 밤늦은 프라하 다리 위에서도, 방금 친해진 한국 여행자들 틈에서도, 나는 문득문득 너와 함께 있었어. 네가 이 풍경을 봤다면, 여기 있었다면 또 얼마나 좋아했을까 상상했지. 웃는 너를 보며 나는 또 얼마나 웃었을까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어. 도저히 내 힘으로는 그 상상을 막을 수가 없었어. 
그 상상의 종착지는 언제나 너의 말이었어.

"같이 여행 갈래?" _226​


[미디어창비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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