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런웨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6
윤고은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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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애초에 2호 상자였거나 어쩌면 1호 상자로도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크기였는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오빠가 "그럼 옛날엔 과대 포장이었던 거네?"라고 했고, 언니는 "그렇지, 다른 상자에 담았어야 했던 걸 굳이 결혼 상자에 담은 거지. 자리가 남으니까."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들을 굳이 결혼이라는 상자 안에, 거기 남아도는 공간에 넣은 거란 얘기였다. _94​


AS안심결혼보험.
지속가능한 결혼을 위한 지침서(보험 약관집)
결혼과 보험의 생각지 못한 조합. 
고독 항목, 지구공감특약, 사은품으로 주는 로봇청소기의 녹음기능까지.
읽다보면 정말 이런 보험이 있는 것 혹은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내 취향의 책은 아닌데, 묘하게 계속 술술 넘어간다. 아니, 취향인건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을 사회적 문제와 결합하여 풀어내는 느낌인데, 부담스럽지 않게 끌고 가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문장들이 울림이 있고, 첫 장의 시작점과 마지막 장이 참 좋았다. 

작품 해설에 「도서관 런웨이」 뿐 아니라 윤고은 작가님의 여러 책들과 연계해 설명한 해설에 윤고은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나도 느껴보고 싶어진다. 어서 윤고은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그렇다면" 하고 안나는 말했다.
"나는 살아야겠네, 더 열심히."

어느 밤의 도로에서 정우가 해준 말 위를 이제 안나는 흘러간다. 그 말은 겨우 한 문장 정도였지만 자꾸 불어나고 불어나 안나를 든든하게 채운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 발 늦을 수 있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 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아. 잔열이, 그 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_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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