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소녀 미랑 푸른도서관 59
김자환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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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의 이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요괴, 비인간들과의 사랑 이야기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도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인간적'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와 사유가 절실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기, 우리가 처음 만나는 '여우 소녀'가 있다.

옛날옛적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던 구미호에게조차 '소녀'라는 이름이 주어지니 그것만으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예상했던 대로 이 소녀의 아픔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이 되고 싶은 열망에 있다.

그 염원의 원천은 가난하지만 '큰 인물'이 될 상을 지닌 늠름한 소년, 묘남이다.

허나, 그 '복' 에는 어려서 부모를 잃는다는 비극이 내포되어 있다.

아니, 어찌 보면 그 '액'이 '복'의 토양이다.

구미호에게 아버지를 잃고, 슬픔으로 어머니까지 아버지를 따르고, 그 슬픔으로 정신을 잃지 않았더라면

초인적인 힘과 생명력을 줄 산삼 또한 없었을 것이니 말이다.

언제나 운명은 인간의 생각과 의지 한참 위에서 제 갈 길을 간다.

감당하지 못한 슬픔과 고통을 견뎌내면, 그 뜻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묘남을 사랑해 애타게 인간이 되고 싶었던 미랑은

그 마음 때문에 묘남의 부모를 죽게 하고, 묘남을 아프게 하고, 자신 또한 어머니를 잃지만

결국은 그를 통해 수많은 목숨을 살리게 된다.

그러니, 그 누가 '사랑이 헛되다'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의 모든 인물들에게 사랑은 곧 목숨이다.

백성이 걸레스님의 목숨이고,

딸 미랑이 구미호의 목숨이었으며,

이 땅이 묘남의 목숨이었으니...

'삶'이라는 불꽃의 불씨였으니...

그리하여, 미랑은 마지막 순간을 환한 미소로 맞는다.

사랑하는 묘남을 지켰기에,

'죽어도 좋았다. ' (p.167)

그 옛적 '은애'라는 말이 참으로 새롭고 살갑게 와닿는다.

이 '恩愛'라는 단어는 '은혜로운 사랑'을 뜻한다.

이 '은혜'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베푸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나' 스스로 누리는 것이다.

그 사랑 자체가 은혜가 되니까.

나를 인간으로 살 수 있게 하니까.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살아갈까?

평생 인간이 되기를 열망했지만 그마저 기꺼이 버렸던 미랑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부끄럽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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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들 클래식 보물창고 16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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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들』이라는 제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센스 앤 센서빌리티', '오만과 편견', '인간과 초인' 등...다수의 'and'가 등장하는 제목들과는

피츠제럴드답게 사뭇 다르다.

알고 보니, 피츠제럴드가 습작을 하며 여러 출판사에 보내 출간을 의뢰했던 초기의 중요 작품들을 함께 묶은 첫번째 단편집이다.

말괄량이로 번역된 'Flapper'는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으며 도발적이었으며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위치를 고민하고 의문을 제기했던 그 시대의 '신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단편집의 첫번째 작품 <앞바다의 해적>에 나오는 '아디타'가 이 신여성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소개해 준다.

피츠제럴드의 뮤즈였던 '플래퍼'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는 데에는 단 몇 페이지면 충분하다.

자기 배를 탈취하고 자신을 납치한 해적 칼라일 앞에서도 거침없는

그녀의 모험심과 용기, 당당함에, 그 순수한 젊음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질투 섞인 한숨을 내쉬게 된다.

거기에, 피츠제럴드는 '그녀의 아름다움, 젊음과 더불어 변색되어 갈 용기(p.48)'를 언급하여

우리를 한 번 더 한숨짓게 하지만,

100년이 지난 현대의 인간들에게 이러한 '용기'는

젊을 때에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천연기념물'임을 예측하진 못했으리라.

세번째 단편 <머리와 어깨>에는 진정한 '말괄량이와 철학자'가 출연한다.

열세 살에 프린스턴대학에 입학한 비범한 천재 호레이스는

희극 뮤지컬에 출연하는 여배우 마샤를 만나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미국 철학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가 될 기회를 던져 버리고

한 회사의 사무원으로 근무하던 호레이스가

아내의 권유로 (건강을 위해!) 시작한 체조는 곡예 수준이 되고,

임신한 마샤 대신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나선 곡마장 공연에서 곡예사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그리고, 지루함에 지친 마샤가 쓴 책은 격렬한 찬사 속에 미국 문학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으며

이렇게 이 가정의 '머리와 어깨' 역할은 완전히 반전되는 것이다.


삶을 책임지기 위해 버려야 했던 자신의 꿈을, 아내에 대한 혼란스런 공감과 함께 기억해 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의 밤은

생활에 물들기 전엔 어느 면에선 '신동'이었고 '철학자'였던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되어

이 작품은 말할 수 없이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가슴 아픈 '희비극'이 된다.

일곱 번째 단편 <델리림플 잘못되다> 또한 전쟁 영웅으로 고향에 돌아와 대환영을 받지만,

2주일 만에 당장 일할 곳을 찾을 수 없어 겨우 식품 도매상의 창고에서 일하게 된다.

전쟁에선 그에게 수많은 훈장을 안겨 준 지성과 상황 파악 능력과 위기 대처 능력이

현실 생활에선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 델리림플.

서두르라....... 이것이 인생 규칙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였다. 어떻게 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p.280)

뭔가를 원할 때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선과 악'이라는 기준을 버리기로 결심한 델리림플은

밀린 하숙비 15달러를 해결하기 위해 강도짓을 하고,

'자신의 이성을 앞선 감상적인 것들에 맞서는 반항아(p.287)'를 자처하며 스스로를 망가뜨려간다.

여덟 편의 단편들 하나 하나가 다 빛이 난다.

현실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시선과

웃음과 슬픔 중 어느 하나가 더 무겁다고 할 수 없는 묘한 균형 감각이

서정적이며 예리한 필체와 아이러니하게 어우러져

여러 번 나를 놀라게 한 피츠제럴드.

물질적 풍요와 성공에 대한 야망, 잃어버린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실망과 환멸,

삶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낭만과 환상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

이 시간 이후, 나 또한 아디타처럼 다그치게 될 것 같다.

"달빛이 비치니 나에게 거짓말을 해 봐요. 거짓말처럼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줘요."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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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와 철학자들 클래식 보물창고 16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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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혜안과 필력에 찬사를! 현대의 어떤 작가들보다도 현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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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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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비극, 약한 자는 보호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전체에서 공격당할 수 밖에 없는 비정한 인간 사회의 잔혹함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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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니아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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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용기보다 곧은 마음이 가진 힘, 강하기만 한 자가 아니라 양심있는 영웅에 대한 찬가. 그런 영웅에 대한 한없는 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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