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클래식 보물창고 4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현주 옮김 / 보물창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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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하고도 작은 꽃들이 가득한 표지에서

바람 끝에 희미하고도 달콤한 향기가 아련히 매달려 오는 듯하다.

'아, 이 향기가 뭐였더라? 분명히 아는 건데...'

자꾸 되뇌이게 하는, 그러면서 잡히지는 않는... 안타깝고 답답한...

그래, 그런 '마음'이다.

우리 가슴 속에 어쩌면 가장 깊은 곳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것은

한없이 알고 싶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알려주고 싶으면서도 알려주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과 차마 나누지 못했던 '마음'의 흔적들일지도 모른다.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하며 책을 덮고 나니, 꽃들 속 '마음'이 다른 음조로 읽힌다. 


여름 피서지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에게 끌리어 그의 삶 속으로 들어선 순수하고 젊은 나,

그런 그를 아끼는 듯 곁을 주었다가도 다음 순간 어느새 뒤로 물러서는 선생님...

늘 그늘 속에 머물러 있는 듯한,

분명히 따뜻한 성정을 지녔음에도 혼자여야 한다고 스스로 끝없이 되뇌이는 듯한 선생님.


"천벌이니까." (p.29)


자신의 삶을 '천벌'로 스스로에게 선고한 선생님이

삶을 끝내기 직전 유서로 그 '천벌 받을 죄'를 고백한다.


'나는 수천만 일본인 중에서 오직 자네에게만 내 과거를 말하고 싶네.

 자네는 진실한 사람이니까.' (p.154)


선생님은 이미 세상에 없다.

'나'와 함께 선생님을 왠지 좋아하게 되어버린 나는 이미 늦어버린 슬픔과 상실감을 안은 채

유서를 읽는다.

그가 털어놓는 삶의 자취 하나하나가 다 죽음으로 향한 행로로 읽혀 안타까울 뿐이다.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도덕적이며 지적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한 사람이,

스스로의 어둠을 마주하고 무너져내리고 만다.


'나는 인간의 죄라는 것을 깊이 느꼈네......

 스스로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네. ' (p.275)


세상엔 '죄'라는 것을 도대체 느끼지 못하는 자들로 넘쳐나는데,

자신에 대한 신념이 파괴당한 이는 아무도 묻지 않는 그 죄에 잠식당하고 만다.

간절히 바라는 것 앞에서, 곧 내 것이 될 거라 믿었던 것 앞에서 양심을 조금 제쳐 놓았던 순간들이

우리 삶엔 얼마나 많은가?

그 결과가 '죽음'이라는 극악의 사태를 빚어내진 않았기에, 잘 잊고 살아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욕심이 낸 상처가 타인에게 어떤 정도였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아니, 알아도 모른 척 할 수 있었기에.


오직 진실하고 싶었던 선생님의 절망적이고도 열정적인 질문이, 믿음을 구하는 눈빛이

한참 동안 내게 남을 것 같다.


"자네는 진정으로 진심인가?" (p.87)


이것은 또한, 우리가 삶의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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