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시집 클래식 보물창고 34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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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 중 80년대에 출판되어 정말 누렇게 된 책들인데 정리하지 못하는 책들이 
헤르만 헤세의 책들이다.
크눌프, 지와 사랑, 이 고독한 밤을 위하여...... 
그 이름만으로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을 주는 작가가 헤세 아닌가 싶다.


90년대에 십대를 지나왔던 이들이라면 '데미안'의 마력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지 않으실런지...
정확히 말하면 '데미안'이 아니라, '싱클레어'의 마력이지만.
'새'와 '알'과 '아프락싸스', 당최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 비유들이 - 어쩌면 그 때였기에 더 아무런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고 -
가슴을 퍽 치고 들어왔던 충격은 아직도 서늘하게 남아 있다.

그런 그의 시집은 참으로 의아하게도...처음 만나본다.
모든 글이 '시' 같은 그가 '삼류시인'으로 혹평을 받았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헤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2000편이 넘는 시가 노래로 작곡되었고, 
20세기 독일 시인들 중 가장 많은 시가 노래로 작곡되었다고 하니
전문가들에겐 혹평을 받았을지언정 대중들에게선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 틀림없다.

왠지 숙연한 마음으로, 일찍 일어난 어느 아침 시집을 펴 본다.


보물창고에서 '이옥용'님의 번역으로 펴낸 이 책의 특징은
'화가' 헤세의 그림들로 삽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 그림까지 잘 그리시다니... 정말 질투나게 하는 양반이시다... ㅜㅜ

잔잔한 음악이, 플룻이나 오보에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참 고우신 분'이다.


가장 짧은 시들 중 하나다.
지극히 소박한 행복을, 안온한 마음이 전해온다.
'시선 낮추고 느끼렴.'은
어쩌면 그 분이 평생 동안 자신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얘기하고자 하셨던 것 아닐까?


<플루트 연주>라는 시 속의 연주자는 바로 헤세 아닌가?
'세계의 비밀스런 의미'를 비밀인 채 그대로, 아직은 알 수 없는 선과 지혜의 선물이라고
온화하게 속삭이며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만드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 나를 살짝 웃게 만들었던 시가 한 편 있다.



'그 어디에도 고향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탕자'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등잔에게 시를 읊는 시인의 슬픔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쓴다.'는 자포자기 속에서 나온 듯한 솔직함(아니면, 치기?)이 
평생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꿈을 놓지 못하는 무명의 예술가들을 그려보게 한다. 
아니, 나아가... 때론 힘에 부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모든 평범한 이들, 잊혀진 이들을 
위로하는 듯하다.


흰 구름을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자매요 천사들'이라고 했던 헤세. 
그 분이야말로, 잠 못 들 만큼 외롭고 슬픈 사람들의 천사가 아닐까?

마음이 어두어질 때, 빛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한번씩 꺼내어 읽어보고 싶은 따뜻하면서도 힘있는 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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