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노어 & 파크 - '2013년 보스턴 글로브 혼북 상' 수상작, '아마존' 2013년 최고의 책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31
레인보우 로웰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누군들 잊지 못할 하나의 이름이 있다면, 아마 그건 '첫사랑'일 것이다.

아직도, 아주 시시콜콜한- 부끄럽고, 유치하고, 시시하기까지 한 - 일화까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삶의 초반부에 뿌리박혀 있는 잔상들......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가 그 설렘 속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바로 그 때의 이야기......<엘리노어&파크>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두 사람의 이름만으로 이루어진 제목은

이 이야기 또한 '세기의 로맨스'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주인공은 베로나 최고 명문가의 그 도시 최고의 미남 미녀였던 로미오와 줄리엣관

사뭇 다르다.

작은 체구에 동양인 혼혈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기 십상인 파크와

첫등장부터 독자까지 뜨악하게 만드는 뚱뚱한 데다 이해불가능한 패션의 소유자인 엘리노어.

상상만으로도 정말 안쓰럽고 엄청나게 안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

 

 

그런 둘이, 통학버스 안에서 음악과 만화책을 통해 교감을 나누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저 어색함을 덜기 위한 것이었던 파크의 작은 배려가

어느 새 두 사람에게 '가장 즐겁고 설레는 일'이 되어간다.

 

 

 

 

엘리노어의 가정환경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다.

그 결과물인 그녀의 외모와 소극성 때문에, 엘리노어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파크만은 알아차린다.

엘리노어의 반짝이는 유머감각과 감성을.

그래서, 스스로 정말 정말 곤란하다 자각하면서도 엘리노어에게 빠져든다.

엘리노어 역시.

 

 

 

 

'이렇게 똑바로 쳐다보는 느낌이 어떨지 짐작은 했지만 역시나였다.
 누군가 자신의 가슴을 도려낸 다음 내장을 몽땅 다 낚시 바늘로 꿰어서 

 끌어내는 느낌이랄까.'


 '내 첫사랑의 심정도 이러했던가......'해 보게 하는 구절 구절.
 눈길 한 번에, 미소 한 번에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 같긴 했었던 것 같은 기억이......

 그래......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버스에서 엘리노어를 놀리던 학교 짱이자 어릴 적부터의 친구인 스티브를

태권도의 뛰어 돌려차기로 차서 이를 부러뜨리고, 그 대가로 피범벅이 되도록 맞은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파크는 엘리노어가 자기 여자친구라고 선언한다.

 

 

 

그 날을 계기로 엘리노어는 파크의 집을 드나들게 되고,

파크의 한국인 엄마는 엘리노어를 '이상한 백인 여자애'라며 싫어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마트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장을 보고 있는 엘리노어를 보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엘리노어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느꼈던 부분이다.)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느낀다.

답답했던, 눌려 있던 일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공기가 된다.

 

 

 

이 소설의 큰 재미는 두 사람의 서술이 엇갈리는 데에도 기반하고 있는데,

초반부엔 머뭇머뭇거리며 자기도 모르게 서로에게 다가서는 마음들에,

우리보다 뒤늦게 알아차리는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도 당황하는 모습에 웃음이 난다면,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하루를 버티자는 것이 좌우명이었던 왜소한 소년 파크가

학교 짱을 상대로 분노의 일격을 가하는 사건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실히 알고 나서는

그야말로 '핑크빛 무드'를 각자의 감성과 서술법으로 풀어내는 것에 

"아유, 귀여워라!!"하는 탄성을 절로 지르게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저 끝없이 사랑스러운 사랑은 

처음부터 엘리노어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의붓아버지 리치로 인해 단번에 

위기에 처하고 만다.

두려움에 떠는 엘리노어를 차에 태우고, 그녀의 외삼촌의 집이 있는 먼 곳으로 운전하는 파크.

그녀와의 작별이 그에겐 절대 끝이 아니건만,

엘리노어는 마음으로 그에게 영원한 안녕을 고한다.


 

 



그야말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판을 완성시키려는 것인지.

가장 찬란한 순간에 안타까운 이별로 '완전무결한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엘리노어.

그 바보 같으면서도 고집스러운 마음이, 똑같은 소망을 가졌었던 옛날을 떠오르게 한다.

그저 행복해야 할 시간에 참으로 뜬금없으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이제 헤어져야 하는 건가?'

하는 독백이 가슴속에서 흘러나온 날,

나 또한 이 찰나부터 시들어가고 빛을 잃어갈 사랑을 지켜봐야 할 것이 두려웠었다.



거의 1년......

파크의 편지와 선물은 엘리노어의 방안에 뜯기지도 않은 채 쌓여가고

엘리노어는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가슴을 누르는 기다림의 무게에 방황의 날들을 보내는 파크.


나 역시 조바심을 내며 '진짜,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거야? 그건 아니지, 엘리노어?'하던 찰나,

파크에게 엽서 한 장이 날아든다.


"삶이 우리에게 서로를 주었다가 이렇게 맥없이 다시 가져가 버릴 거라고는" 믿을 수 없었던

파크의 믿음이 엘리노어에게 가 닿은 것처럼.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너무 짧다.

빠져들어 읽으면서도, 읽어야 할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웠던 책이다.

작가에게 2탄을 내 달라고 시위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를 첫사랑의 추억으로(난 그저 바라만 보다 끝났었지만...), 그 설렘으로 데려다 준 이야기,

요즘의 아이들에게 진짜 사랑이 뭔지, 진짜 마음으로 서로의 '공기'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책이다.

제발 이런 사랑을 꿈꾸기를.


이제 엘리노어와 파크의 이야기에서 튕겨져 나온 난,

아직 이런 사랑을 할 기회를 가진 아이들에게 무한한 동경과 질투를 느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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