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애니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30
낸시 가든 지음, 이순미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커밍아웃'이라는 단어, '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동성애자는 서양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유머스러운 캐릭터들이었고,

우리나라에선 '심증은 있지만, 밝혀지지는 않은 존재들'이었다.

2000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연예인이 커밍아웃 선언을 한 후,

연쇄살인범보다 더 흉악한 존재로, 공공의 적이 되어 만인에게 손가락질받는 것을 보며

'내가 동성애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구나.'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무려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지 않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못난 민족성의 발로일까?

무엇 하나 나와 다르면 '나쁨'으로 낙인찍는 이 사회 속에서

아직도 많은 성소수자들이 눈물 흘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 역시, 내가 그렇다면 자신 없다.

침묵하며 숨길 것 같다.

 

 

<내 마음의 애니>는

자신이 동성연애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여고생 리자의 이야기이다.

사립 학교의 우등생이자 학생회장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온 리자는

우연히, 미술관 복도 창가에 앉아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소녀 애니를 만난다.

위험한 동네에서 가난하게 자란,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의 애니에게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끌림을 느끼는 리자.

 

 

또 하나의 나인 것처럼, 서로를 느끼는 리자와 애니.

우리 평생, 한번이라도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두 사람 사이의 일치감이 부러운 동시에 안타깝다.

 

 

리자의 마음 속에 새겨진 이름이 '애니'가 아닌, '로버트'나 '피터'였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저 영혼의 짝을 만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을 뿐이었을 텐데.

 

리자는 혼란스럽던 중에

자신이 존경하던 학교의 두 여선생님이 오랜 연인 관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몇 십 년 동안 숨겨온 그들의 진실을 아는 순간,

리자는 동성애자라는 이름이 지니는 무게와 어두움에 직면하게 되고,

그런 리자를 본 애니는 아파한다.

 

 

그 시간들이 지나고 리자는 애니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두 사람 뿐 아니라, 두 선생님의 관계까지 학교에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가장 친했던 친구...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자신이 감싸주었던 그 친구에게서

아주 일반적인 세상의 비난을 듣는다.

 

 

그리고,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 입을 뗄 수조차 없는 리자.

 

학교 청문회에 서게 되고, 두 선생님까지 곤경에 빠뜨리고, 모든 이들의 날 선 시선을 받으며

리자와 애니는 공포의 벽 안에 갇힌다.

 

하지만, 결국 학교를 떠나게 된 두 선생님들은 자신의 지난 생을 이야기해 주며

두 소녀를 다독인다.

 

 

 

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인 것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부정하든 인정하든 간에 상관없이 참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

샐리의 말대로라면 '끔찍하게 슬픈 단어'가 평생 가슴에 주홍 글씨로 박히고,

일반적인 사회의, 일반적인 가정의 행복조차 누릴 수 없는 이 사람들을

짐승 취급하는 '일반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것은 무엇일까?

 

 

 

 

두 선생님은 이것을 '무지'라 칭하지만, 이건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분야에서의, 근본에서의 무지다.

힘겨운 이들을 돌팔매질하는 잔인함,

'일반적'이라는 것만으로 스스로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은 치욕스런 오만함이

그 무지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애니는

"다른 사람인 척할 필요 없어."

라고 말한다.

리자를 울게 만든 말.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인 척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려 하기 전에

잘난 쪽, 비난받지 않는 쪽에 서기 위해 열심히 '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이다.

용감하게 커밍아웃하는 이들을 이렇듯 미친 듯이 증오하는 것은

어쩌면 그러지 못하고 산 자신에 대한 후회와, 못난 질투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죽을 때까지라도 

'내 마음의 무엇'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 자신으로 살 수 없을 테니까.

 

이것이 인간 전체를 묶는 단 하나의 '같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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