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11
0. 헨리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른이 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일종의 '촉'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 만나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어떤 예감이 찾아온다.

'좋은 사람이지만, 이 이상의 연은 없겠구나.' 또는,

'재미는 있는데, 나와는 잘 안 어울리겠다.',

아니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놓치고 싶지 않네.' 따위의

정확치는 않지만 아주 근거 없지는 않은 '방명록'이 만남 이후에 남는다고나 할까?


책도 똑같다.

사실, 판단은 더 빨리 선다.

미칠 듯이 재미있으면서도 '이 책은 다시는 안 읽겠구나.''책 덮고 한 달만 지나면, 자세한 내용은 생각도 안 나겠다.'하는

확신이 드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읽어서 내용도 거의 온전히 기억날 정도인데, 다시 출간되어 서점에 꽂혀 있으면

"아, 이 책이 또 나왔네."하면서 꼭 펼쳐보게 되는 책들도 있다.

삽화가 다르고, 디자인이 세련되어지면 이미 집에 있는데도 또 들여놓고 싶은...

결국엔, 같은 제목의 색색가지 '애장본'이 몇 권씩 나란히 나란히 늘어서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고야 한다.

여기 이 아저씨(헤밍웨이나 괴테는 '선생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지만, 이 아저씨는 아저씨다. 다정스럽고 정 많고 가끔은 버럭 화도 내실 듯한..^^:)의 이름도

내겐 그런 마성을 내뿜는다.

아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오 헨리'라는 활자를 그냥 지나쳐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차가운 겨울 바람과, 그보다 더 강하게 감싸는 온기와, 희망을 담은 눈빛들이 날 멈춰세울 테니까.

'흐느낌과 훌쩍거림과 미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인생('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오 헨리.....

그 스스로가 실로 불안정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세 살에 어머니를 잃고 아들은 낳자마자 죽었으며,

아내는 어린 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고, 새로 만난 여인에게는 버림받았다.
은행공금횡령죄로 복역, 교도소의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쓰고,

복역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오 헨리’란 필명을 써야 했던 것이다.

그의 글은 반전의 결말로 유명하지만, 그의 생에서 반전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그 자체가 '반전'이었음을.

이렇게도 외롭고 비참하게 살았던 그가 우리를 아직까지도 위로하고 있으니까.

자신을 몰아세웠던 세상과 운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얼마나 담담하고 따스한가?

그가 가진 최고의 재능은 이렇게 삶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마음'이었다.

오 헨리 아저씨가 그려낸 세상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악의가 없이 소박하고 순수하다.
일 년 동안 모은 급여를 '천국에서의 일주일'과 맞바꾸며('낙원에 들른 손님') 행복해 하고,

큰 야망도 욕망도 없었건만 어쩌다 초라한 범죄자가 되기도 하지만

절망적인 운명에 맞서 싸워 보고자 하는 의지로 새로운 내일을 결심('경찰관과 찬송가')하기도 하며,

사랑에 빠진 순간 자신이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기도 하고('개과천선')

미지의 운명과 맞서기 위해 목적과 계산 따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진정한 모험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녹색 문')

인생은 또 어떠한가?

순수한 영혼들을 찾는 '로맨스'나 '모험'이라는 쌍둥이 같은 전령('녹색의 문')이 도처를 활보하고,

영영 볼 수 없을 줄만 알았던 사람을 다시 데려다 놓으며('인생은 연극이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

엉뚱한 실수로 태어난 대문자 'W' 글자 하나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을 찾아주는('메뉴판에 찾아온 봄')

행복한 우연들이 난무한 인생.

그 우연들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마음 속 소망과 선의에 대한 응답이다.

베어먼은 오 헨리의 자화상이었을까?

그 자신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세상을 등진 늙은 광부'로 살지만,

"여기는 존시 양 같이 착한 아가씨가 아파서 누워 있을 곳이 못 되는데."하며 진심으로 화를 내는.

몰아치는 강풍과 세찬 빗줄기 속에서

세상 속 아파하는 착한 이들을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려냈던.

그가 그린 잎새가 아직 우리를 위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