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싸름한 첫사랑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5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하는 문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프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라고 읽었던 날이 있었다.
'내가 조금 컸나 봐.'하고 생각했었다.

'달콤쌉싸름한 첫사랑'의 원제는 'HARD LOVE'이다.
힘든 사랑......
무슨 일이든 처음이 제일 힘들다 하지만, 그 농도에 있어서 사랑 만한 게 있을까?


부모님의 이혼 이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감정과 관계들을 외면하고 살아온 존.
엄마의 우울증, 아빠의 방탕한 독신 생활,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 스스로의 삶을 정지시킨
이 '정상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공허한 영혼'은
1인 잡지에 실린 마리솔의 글을 읽는 순간, 자신의 삶을 사람들 앞에 거침없이 펼쳐 보이는 그녀에게 매료당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속을 내 속보다 훨씬 깊이 들여다보는 기분.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마리솔을 꼭 만나고 싶다.(p.18)'
 사람들하고 친해질 시간 따위 없다던 존은 알지도 못하지만 '내 속보다 훨씬 더 알 것 같은' 마리솔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1인 잡지를 가져다놓는 현장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린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작고 왜소한 모습 속에 자신이 상상했던 특별함이 깃든 이 소녀와 만나는 순간, 존은 '살아 있기' 시작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존'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이름을 '지오반니'라고 해버린 것.
 열일곱의 레즈비언 소녀가 거리를 둘까봐 자신이 아직 성정체성을 찾지 못했다고 해버린 것.
 거기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지오'라고 부르는 이 진실옹호자 소녀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버린 것.

그러나, 그 순간부터 존은 '마리솔이 내 어깨 뒤에서 지켜보며 내 거짓말을 엿듣는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그 맹세가 아이러니하게도 존을 '진실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분노를 인정하고 고민하게 된 것이다.
또, 그는 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모르게 된다.
그저 '슬프면서도 희망적인 뭔가가 슬그머니 내 안에 들어온 건 아닌지.(P.112)'하고 짐작할 뿐.

존에게 있어 '삶의 뮤즈'인 마리솔 또한 상처가 있다.
입양되어 양부모님께 지나치다 여겨질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매력만점에 모두가 인정하는 천재소녀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친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커밍아웃을 하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연인에게서 버림받은 기억으로
누구에게도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마리솔은 존의 '진실'을 알지 못하고 그와 가까워지지만, 그의 '진심'은 그녀의 마음을 연다.

두 사람이 함께 진실을 마주한 날,
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았던 존은 눈물과 함께 사랑을 고백하고 마리솔은 상처입고 떠나버린다.
아슬아슬한 만큼 간절했던 사랑이 끝난 것 같은 그 순간, 존은 '우습게도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명랑해질 지경이었다. 어리석은 소리 같지만, 몇 년 동안 나는 달리기를 싫어하는 척하며 길 옆에 묶인 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달려가는 모습을 지켜본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나는 풀려났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마음껏 뛰어들어 경기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P.195)'
그렇게도 두려웠던 진실은 너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존을 바꿔놓는다.
그리고, 존의 진심은 마리솔에게 자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용기를 준다.
스스로를 가둔 벽을 상징했던 존의 1인 잡지 <바나나 피시>의 열쇠는 '진실',
진짜 자신으로서 떠나기를 원했던 마리솔의 1인 잡지 <탈출 속도>의 열쇠는 '진심'이었던 셈이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사랑했어......
 넌 매일매일 내 인생을 바꿔 주었어.
 내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 줬어......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힘든 사랑이라고 해도......
 기적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은 것은 이것뿐.
 우리의 인생을 치료해 주는 사랑은 힘든 사랑이니까."

소설의 말미를 타고 흐르며 읽는 이의 마음에까지 들려오는 듯한 밥 프랑케의 노래 '힘든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답을 준다.
'이토록 끔찍한 고통 속에 던져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이 노래를 썼다.

누군가에게도 일어났던 일이다.(p.243)'
하고 깨닫는 존은 이미 우리가 처음 만났던 '존'이 아니다.
'진실이 될 수 없는 진심'은 여전히 그의 마음을 찢어놓지만,
그는 이제 둘 다를 찾기 시작했기에 삶을 기대하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사람은 '사랑'이 많아진다고 한다.
복잡하고 힘든 상황 무엇 하나 바뀐 것 없지만, 존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자기 삶의 '가해자'라고 여겼던 엄마의 괴로움을 들여다보고 위로하게 되는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그의 사랑이 진짜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존이 안쓰럽다가, 또 나 같았다가, 대견해졌다.
그리고, 내가 아직 '호되게 힘든 사랑'을 해 보지 못했구나 싶었다.
나 역시 달콤쌉싸름한 사랑들을 겪었고, 그 기적으로 이 순간까지 살아온 거겠지만
이 순간, 또 다음 순간에도 
힘든 사랑들을 기꺼이 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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