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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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고 춥고 힘들었던 유배 시절도 옛일,

조용한 고을 현감으로 늦은 봄날의 햇살을 즐기고 있던 '나', 김려의 일상을 뒤흔드는

낯선 청년.

그의 입에서 터져나온 벗 이옥의 문장에 김려는 현깃증을 느낀다.

무례하고 거친 그 청년은 바로 이옥의 아들.

그가 던져놓고 간 벗의 글들을 뒤적이며,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를 기억하는 려.

 

그 누구보다 글을 사랑하였고 뛰어난 문장가로, 둘도 없는 벗이었던 두 사람.

그러나, 고문의 신봉자로 패관소품의 해악이 요상한 학문의 해악보다 더 심하다 믿었던 정조의 견책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불운은 서로의 연을 끊어놓는다.

어색하고 거리감만 가득하였던 몇 년 만의 해후를 끝으로

이옥은 죽었으며, 그 소식을 전해들은 김려는 오히려 마음속 깊이 안도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밤....

그의 글들과 함께 젊은 날 함께했던 모습 그대로, 소리없는 웃음을 대동하고 이옥이 나타난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려를 지나온 시간 속으로 이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하나도 잊지를 못했던 오랜 고통들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글을 잃고, 벗을 잃었다고 생각한 날들,

수치심과 허망함에 떨었던 그 날들도 삶이었음을

책장 깊숙이 보관해두었던 그 때 자신의 글들을 읽어나가며 깨닫는다.

또, 아버지의 뒤를 따라 글을 쓰고 전해온 그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옥이 평생동안 자신을 마음깊이 문우로 간직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의 삶, 참으로 기구하다.

그토록 재주가 있었던 두 젊음이, 글쓰기가 전부였던 두 사람이 글로 인해 유린당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삶을 글에 담았다.

결국 그들의 삶은 그들의 재료가 되었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거야."

라는 이옥의 글은

천상병시인의 <귀천>과 그대로 겹쳐진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그렇지.

슬퍼도, 아파도, 이 순간들은 다 멋지다.

아름답다.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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