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 유럽 편 -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이해하는 가장 솔직한 안내서 효기심의 권력으로 읽는 세계사
효기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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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아는 역사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쓰여지고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하기쉽상이다.왜?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까..
하지만 그 이면에 진짜 진실이 있다.
고고하게만 여겨지는 서양문명의 뿌리 로마의 기독교 국교화도 내막을파헤쳐보면 그리 성스럽지않다.왜나면 종교를 통일하여 황제독재를 강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였으니 알고 보면 종교의 권위로 황제의 위상을 강화한 국교가 생기게된다.
신성로마제국의 성립도 카롤루스 1세가 교황 레오 3세으로부터 (서)로마 황제 대관을 받은 것이며 이는 정치적타협의 산물이었다 .훗날 이 제국이 황제권력이 약화되어도 명맥을 유지할수 있었던 것도 고만고만한 제후들과 타협과 정치적 배분의 결과이었다.당시 독일제후들은 상당수가 자유도시에서 바치는 무역에대한 세금으로 부를 축적했지만 권력은 누구도 압도적인 이가 없었다 .한사람의 권력독점에 반발하여 제후연합인 신성로마제국이 유지되었다는게 정설이다.. .
이제 영국을 보면 의회가 왜 국민을 호구로 만들었나를 알수있다.국왕이 좋아서 자신의 힘을 견제할 의회를 선택했을까?최고의 잔머리로 세금을 승인해주는 도구로 의회를 만들어 역사에 이름남긴 것이다.영국역사를 보면 민주주의의 효시라지만 글쎄?그들이 남긴 행적은 계산적인 치밀한 행정가라고 봐야 맞다.마그나카르타를 보면 제후들이 왕의 소질이 없는 존왕을 강요하여 서명하게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세금 때문이었다.중세의 제후들도 충신도 아니었다.아마 엘리자베스같이 역량이 넉넉한 왕이면 시녀의회를 조정할수있었겠지만 찰스2세같이 무능하면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었다.

유럽인들이 유태인 싫어하는 건 뿌리깊은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역병에 미움을 받은 이유가 유대인은 페스트에 잘 안 걸려서인데 문제는 유럽인들이 너무나 더러워서였다.잘난 척하는 콧대높은 유럽인들이 향수가 필수인만큼 유럽인들이 더러워서였다.그러고도 유색인종을 경멸한다니?자기들도 잘난척할거없는데 아직까지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걸보면 우습다.왕들은 희생양으로 유대인들을 선택한건지도....
이러한 상황은 훗날도 반복된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등장하여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부흥을 이끌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힘든 건 유대인 때문이니 탐욕스런 유대인들을 청소하여 태평성대를 이루겠다는 공약을 하니 독일 국민들이 많은 지지를 보내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민족주의, 유대인 혐오, 국가가 국민들을 책임지겠다는 공약까지, 이 모든 것들은 대공황으로 온갖 재난으로 삶이 팍팍했던 독일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유혹적인 말들이 아니었을까?
왜 신교가 생겼을까?
평민들뿐만 아니라 왕과 귀족, 영주와 같은 권력자들까지 왜 마르틴 루터의 주장을 지지했을까?1302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황제와 왕과 같은 군주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로마 교황의 직접적인 권위 아래 있으며, 현 세상의 모든 권력과 영적 권력 모두 교황에게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모든 권력과 돈이 로마 가톨릭교회로 몰려갔으며, 왕과 귀족보다 ‘교황’과 ‘성직자’라는 존재의 권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졌다. 당연히 유럽의 민중들에겐 자신이 사는 국가의 왕보다 교황의 말이 더욱 중요했다. 신의 대리자였던 교황의 말은 곧 신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단이자 사이비였다. 교황의 한 마디에 특정 국가의 왕이 이단이 되고, 그 왕을 몰아내기 위한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756년부터는 교황이 직접 관리하고 통치할 수 있는 교황령이란 영토 개념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교황에게 재산을 갖다 바치며 교황에게 인정받고 천국에 들어가고자 했다.경제적 착취도 따르는 것이 당연지사..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단순히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교황에 대한 귀족, 제후, 왕들의 반항이었던 것이다.
키예프 루스에서 형제간의 왕위 분쟁이 일어나면서, 980년경 블라디미르가 다른 형제들을 모두 정리하고 키예프 루스의 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블라디미르가 키예프 루스의 권력의 정점에 서기는 했으나, 내란의 여파로 나라 안은 아직 혼란스러웠고, 나라 밖에서는 이민족들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블라디미르는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정교회가 탄생했다.당연히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다.
요즘 우크라이나사태를보면 우리나라 6.25전쟁때 저모양이 아니었을까싶다.무능한 정치인과 분열된 국민의 국론,외세의 간섭으로 엉망이된 나라에 미래가 있을지...히틀러와 스탈린 그리고 푸틴까지 닮은 점이 전쟁을 원치않는다고하면서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는것이다.히틀러가 뮌헨협정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안심하게만들고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것같이 지금 푸틴이 하는 짓이 비슷하다.평화는 힘으로 지키는 것이지 구걸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처칠의 말처럼 세계가 신냉전으로 다시 전환하는 시대에 우크라이나처럼 비극을 겪지않으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할지 역사를 보고 교훈을 얻어야한다..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유화정책에 말려들었다가 지금 처참한 꼴이 된걸보면 북핵때문에 대화하자는 누구말이 얼마나 위선인지 알게된다.즉 후회할 때는 늦었으니 그전에 정신차려야하는데 우크라이나처럼 비참하게 당하지않으려면 우리도 각성해야한다는거다.지금와서 미국과 유럽이 처절하게 저항하는 우크라이나를 돕는다지만 승산은 별로 없어보이며 이긴다해도 엄청난 댓가가 따른다.대한민국이 6.25동란을 전혀 예상못하고 당했던 것과 달리 일년남짓 러시아의 군사적인 시위에 우크라이나는 대응했어야했다.
근래 정치인들이 검은 정치자금에 이용당하며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를 우습게 여기고 국가의 국시를 혼탁하게 했는데 심히 경계해야할 문제다.자유도 민주주의도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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