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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의 발견 - 내 안에 잠재된 기질.성격.재능에 관한 비밀
제롬 케이건 지음, 김병화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평점 :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통과의례처럼 묻는 질문이 있다.
"근데 혈액형이 어떻게 되나요?"
언제부터인가 이런 질문이 자연스러운 인사가 되었고 우연히 같은 혈액형을
만나기라고 하면 마치 오랜 친구이냥 반가워하며 친밀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방송에서도 혈액형별 다이어트, 교육법, 배우자선택 등을 운운하며
마치 혈액형에 따른 분류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띠며 나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단지 네가지로 구분되어 있는 혈액형으로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차치하고도 혈액형을 통한 성격 판단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않고 다른 사람을 예단하려는 어이없는 발상이며 차별주의다.
그러나 혈액형과 성격이 관계없다는 설명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성격이 우리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성격이 유전으로 결정되는 것인지, 환경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세기를 주름 잡았던 학설은 인간은 빈 서판, 즉 백지 상태로 태어나며
인간의 지능과 재능이 학습에 의해 발달하므로 양육과 환경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는 스키너를 비롯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성격이 유전적 본성과 환경적 양육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달한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롬 케이건도 성격 형성에 있어 타고난 유전적 기질에 무게를 두고
있으면서도 성장하면서 겪는 후천적 환경의 영향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는 잠재된 기질의 차이가 성장 과정에서 환경에 따라 어떤 성격을 형성하고
변화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실험을 했다.
기질적 편향을 연구하기 위해 많은 아기를 관찰하여 그들의 성장 과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아기 때 낯선 침입자들에게 보인 반응이 그 이후 생애에서 그들이 보이는
성격을 확실하게 예견하게 해주는지 살펴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1989년에 마저리와 리사를 비롯해 450명 이상의 생후 16주아기들을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1991년까지 생후 16주, 두살, 네살, 일곱살, 열한 살,
열 다섯살, 열여섯살 때마다 이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했다.
생후 16주된 리사와 마저리에게 밝은 색이 칠해진 모빌이나 동물 봉재완구를
얼굴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사람은 없는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고,
희석된 알코올을 면봉에 묻혀 아이들의 코앞에서 희미한 냄새를 풍기는 등 아기들
앞에 일련의 낯선 광경을 보여주는 자극을 가했다.
이러한 자극에 리사는 이따금식 옹알거리거나 웃기는 했지만 팔다리를 흔들어
대거나 자리에서 몸을 비틀거나 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와 반대로 마저리는
팔다리를 야단스럽게 흔들고 짜증내거나 울고, 등을 들썩거리는 행동을 되풀이했다.
아기때 낯선 환경을 접하게 될 때 많고 적게 흥분하는 성향이 지속성이 있는 기질적
편향이라면, 아이들이 자라난 뒤에도 이런 자질은 낯선 사람, 낯선 방, 처음 보는
물건에 대한 반응에서 어떤 형태로든 표현된다.
16살 고등학생이 된 마저리는 소심하고 불안해하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고, 리사는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성격으로 발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아기 때부터 사람별로 다양한 기질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예기치 않은 사건, 특히 낯선 사건일 경우 그것이 아기때 마저리같은
고반응성이던 아동과 사춘기 청소년들에게서 이미 잘 흥분하는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낯선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쉽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런 특징은 인종간에도 나타나는데 아시아인과 코카서스인의 기질 편향 간의
차이를 암시하는 행동은 생후 몇 주 이내에 일찌감치 나타났다. 아시아계 신생아들은
코카서스계 신생아들에 비해 조용하고, 얼굴에 이불 등이 덮이더라고 덜 버둥거리며,
울더라도 금방 그친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미소를 짓고 소리 내어 웃고
옹알거리는 빈도가 낮았다.
코카서스계 아이들은 중국인 아이들에 비해 더 불안정하고 더 쉽게 흥분하는 것으로
보였다.예상치 못했거나 낯선 경험앞에서 쉽게 흥분하는 형태의 차이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그대로 유지되었다. 중국인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활동성과 충동성이
적고 통제하기가 더 쉽다고 묘사했다. 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활력이 부족한
점을 걱정했지만 코카서스계 부모들은 아이들의 공격성과 행동 과잉 때문에
걱정했다.
아시아인과 코카서스인은 구조적 유전자의 표현을 통제하는 촉진자 구역에 자리 잡은
유전자 가운데 1/4가량이 다르며 이런 유전적 차이가 행동과 신념, 그리고 감정에
영향을 준것이다. 그러나 유전자뿐만 아니라 개인이 발전 과정에서 문화와 사회
계급, 그리고 사회적 경험이 합쳐져 이들 각각의 인종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결국 성인이 된 사람들의 성격은 흰색과 검은 색 실이 섞여 회색 태피스트리를
짜내는 것처럼 타고난 기질의 양식과 그 개인의 가족, 문화, 역사적 시간 속에서
겪은 경험의 융합물이다.
그러므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 있더라고 아이의 기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아이의 특성에 맞도록 환경이나 양육방식을 달리한다면 얼마든지 건강하고
긍적적인 면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타고난 유전자를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기질은 이미 결정되어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는 막힌 생각보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이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야만 내 아이의 가능성에 불을 붙일 수 있고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아이를 독려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창의력 뛰어난 아이의 기질을 살려 멋진
인생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력자로써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