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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 외에는 별 특징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
여학생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체를 처음 발견한 네 소녀는 범인을
직접 봤음에도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한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3년이 흐르자 죽은 소녀의 어머니는 소녀들에게
자기딸 에미리가 죽은 것은 너희들 때문이라며 살인자라 부르며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거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게 속죄하라며 안하면
복수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을을 떠난다.
에미리의 사체를 지켜보았던 충격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생리도 하지 않은 사에,
항상 리더로서 살았던 자신이 혼자 도망가 숨었던 비겁함에 죄책감을 가진 마키,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에미리와 친해지고 싶다는 분수 넘치는 짓때문에
에미리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아키코,
항상 아픈 언니만 챙기는 가족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에 형부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 유카.
에미리의 살해사건과 에미리 엄마의 말은 저마다 다른 성장배경과 경험을 가진
소녀들을 따라다니며 다른 색깔의 아픔을 내뿜으며 몸과 마음 모두 과거의
기억에 얽매인 트라우마가 되어 결국 의도하지 않은 살인자들이 되게 한다.
미나토 카나에의 <고백>이 충격적 전개와 엄청난 고민을 안겨주었던 터라
<속죄>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그 때만큼의 가슴 아픔과 먹먹함은 조금 덜한
느낌이다.
독자에게 털어놓는 독백 형식의 문체가 같은 것도 그 이유이겠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과정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잔인함을 느낄 정도로 섬세한 심리묘사다. 가해자,
피해자,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메스를 들이댄 듯
날카롭고 예리하게 포착한다.
자신이 상처받았다고 남에게 똑같이 날을 세우고 상처주는 사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냉정하게 돌아서는 사람,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
미나토 카나에가 묘사한 인간군상들을 보면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내 안의 아픔과 어려움을 혼자서 감내하며 키워 나갈게 아니라 용기를 내어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해 보는 것, 그래서 타인과 같이
나누고 공유했더라면 트라우마가 되어 비극으로 치닫는 일은 없었을 텐데.
이번에도 역시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미나코 카나에.
10살짜리 아이들이 감내할 수 없는 비극에 상처받은 모습이 한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