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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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바뀌어가는 것들이 있다. 어렸을 때 '절대' 라고 느꼈던 것들이 나이들면서 사라져 간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 일이라는 것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도 없고 절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연륜이 쌓이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사고의 폭도 넓어지니 나이드는 것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닌 듯 하다. 

세상을 살다보니 모든 일을 일도양단하듯 명쾌하게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음에도 모든 
잣대가 내 기준이라 자신의 가치관이나 살아온 경험과 정보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탓에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확신에 대한 함정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흉악범에 대한 사형은 정당한가? 성범죄 근절을 위해 화학적 거세를 도입해야
하는가? 체벌은 학생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연쇄살인범에게도 관용이 필요한가?
성매매특별법은 사라져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첨예한 입장 차를 보일 수있는 논쟁거리다.
 
결코 판단이 쉽지 않은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할 것인가? 찬반이 대립하는 주장을  
품고 있는 이런 문제에도 분명 '답'은 있다. 다만 양면성과 딜레마가 존재하는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섣불리 내려지는 결정과 법적 결론의 위험성때문에 확신을 내리기 전에 모든 주장을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다양한 문제를
여러 가지 방향에서 바라보고 쓴 글"이라며 "우리는 어떤 문제의 답을 찾으려
할 때 아무리 그럴듯 해 보이는 결론이라도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판단을 위해 저자는 자신이 직접 다룬 사건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소설, 드라마 속 에피소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며 사형,성매매,체벌 등 법과 정의에 대한 난제를 지혜롭게 풀 수 있는 열쇠를 발견하게끔 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공상과학 소설부터 존 그리샴의 법정스릴러 소설, 로맹 가리의 자서전적 소설, 페터 회의 심리 스릴러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 내공을 자랑하듯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이야기로 끊임없이 독자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도와준다.

분명히 저자가 생각하는 정답이 있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도록 하거나 어떤 입장에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대신에 대립하는 양쪽 주장을 설명하며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다는 반론할 수 있는 의문을 모두 던져준다. 

그런 저자가 성매매나 체벌에 대해서는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을 드러내는데, 가만 보면 그건 저자가 갖고 있는 인권에 대한 소신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인세를 인권센터에 기부했다는 기사를 보니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률가로서의 기본 자세가 확고해 보인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깔려있다. 

그 중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시선은 특별해 보인다.
법이 규율하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들은 부당한 대접을 받아왔고 성폭력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성범죄 재판에서 성폭행이라는 실체적 진실과 관련 없는 여성의 ‘행실’을 따지는 것은 여성이기 떄문에 받는 불이익이다.  

저자가 예를 드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 <강간, 사랑 이야기>에 나오는 성폭행 피해자인 티나 맥과이어도 강간 범행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이 피해자인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다. 강간을 당하는 장면의 제목도 그래서 '그녀가 자초했다'이다.  

"한밤중에 어린 딸을 데리고 인적이드문 공원에 가다니 얼마나 무책임한가.",  "평소 옷차림이나 행실로 봐서 그녀가 남자들을 도발한 것이 아닐까?", "술에 취해서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 틀림없다."
이것이 피해자인 그녀에게 보인 반응들이다.  

이보다 더 어이없는 것은 필사적으로 반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했어도 무죄로 판결받는 경우이다. 얼마전에도 12살 어린 학생을 모텔로 데리고 가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20대도 무죄로 판결났다. 목숨걸고 저항하지 않으면 성폭행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이상한 판결은 정말 분노케 한다. 여성의 의사에 반하는 모든 성행위는 성폭행인 걸 정녕 모르는 지 궁금하다.
 
저자의 말처럼 "법이 여성에게 한 모든 일, 그리고 법이 여성들에게 해주지 못한 모든 일이 떠오르면서 솔직히 침을 뱉고 싶어진다." 답답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메세지인 "우리는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법을 집행하는 분들에게 꼭 기억하라고 외치고 싶다. 잘못된 선입견이 개입하면 누구라도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난 내자신이 꽤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고 저자가 제시하는 난제에도 분명하게 내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 판단이 옳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도 여러 관점에서 숙고하고 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며 더 많은 고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됬다.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얘기다.

  

ps)세상엔 읽어야할 매력적인 책들이 성질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친절하게도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이라며 조목조목 출판사까지 명기해 주었다.
야금야금 곶감 빼 먹듯이 하나씩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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