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그래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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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말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주제가 뭘까?

꼼꼼하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에 남는 것도 없고 머리만 복잡하다.

 

역자인 권남희씨 말대로 이 책은 분명 미스터리물인데 '생과 사'를 주제로 한

철학책을 옮긴 것 같다고하니 쉽지 않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나의 무식함을 조금은 덜어보려는 작은 꼼수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뭔지 힌트를 얻을까해서 책 뒤에 붙은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지만 작가의 성의없음에 더욱 실망스럽다. 

'아사미'가 왜 죽었을까 라는 물음에 그건 독자 여러분들이 정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나 '죽으면 되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냐는 말에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한 것이나 질문한 사람이 민망할 정도다.

 

'죽지그래' 이 책은 제목에 단번에 끌렸듯이 처음 시작은 그럴듯 했다.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 것이 있겠다 싶었다. 사건이나 배경 설명을 하지않고

단박에 주변 인물들의 코멘트 중심으로 이야기가 짜여있어서 미스테리소설같은

긴장감에 기대도 컸다.

 

'아사미'라는 젊은 여자가 죽었다. 살해되었는지 자살을 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다.

아사미와 네번을 만났다는 와타라이 겐야하는 남자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와 관련된 주변 인물들을 한 명씩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녀와 불륜관계를 맺은 회사의 상사

그녀 옆집에 사는 29살의 시노미야 가오리

그녀를 빚 때문에 야쿠자에게 팔아버린 엄마

그녀와 내연관계였던 야쿠자 애인

그녀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

 

하지만 이들은 아사미가 죽어서 슬프다거나 애도보다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에 대한 신세타령만 늘어놓는다.

결국 겐야는 그들의 변명에


 

"그래.이봐, 그렇게 모든 것이 슬프고 힘들어서 미치겠다.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면 말이야, 정말로 어떻게도 할 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 따위도 없는 거 아냐?"

"그럼 죽지그래."

라고 말한다.
 

만남이 계속되고 대화가 쌓여가면서 이야기가 완성되가며 결국 아사미를 죽인 사람은

바로 겐야 하는 것이 밝혀진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 싶은 건 그들의 불행을 남탓만 하는 사람들에게 '죽지그래'라는

무시무시하고 극단적인 말을 함으로써 자기 반성을 하라는 이야기인것 같은데

그다지 공감가진 않는다.

 

그냥 슬프면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기분 나쁘면 기분나쁘다 하고, 속상하면

남탓도 하고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게 더 건강한 삶이 아닐까?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취업이 안되는 게 본인탓만 있는가? 사회적 책임도 있는 거다.

진급도 못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이 받으면서도 사표를 던지지 못하는 건 가장으로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면 울고 있는 사람을 보고 동정하고, 삐뚤어진 놈을 보면 한대 쳐버리고 싶은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건가?

그런것들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살기 싫다는 건가? 죽으라는 말을 무책임하게

던져도 되는 건가?

 

오히려 빚때문에 야쿠자에게 팔려는 엄마에게 한번도 저항을 안하고(도대체 중세도

아닌데 이게 말이 되는가? 게다가 돈도 있으면서) 강간을 당해도 경찰에 신고도

안하고 직장상사와 불륜을 해도 전혀 죄책감도 없는 아사미가 나는 더 이상하다.

이런 현실에도 불행하지 않고 슬프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다는 아사미가

더 낫다는 말인가? 누가봐도 불행한 삶인데 악 소리 하나 지르지 않고 행복했다는

아사미가 이상한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죽지그래'라는 비정한 말을 내뱉을 자격이 겐야에게

부여한 사람이 있는가? 다른사람을  단죄할 당위성이 있는가? 그 자신은 목표도 없고

사회적 책임감도 없이 살아가는 니트족이면서....더구나 사람을 죽였으면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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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사람 - 소믈리에 이준혁이 만난 15명의 명사들
이준혁 지음, 김문정.전재호 사진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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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와인의 시대다. 고급 기회식품에서 생활속으로 깊이 침투한 와인의 대중화는

와인 애호가들을 늘게 하고 와인 서적도 심심치않게 나오고 있다. 이러한 와인열풍에는

와인 만이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은 다른 것들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레드와인의 쌉쌀하면서도 텁텁한

맛은 기름진 스테이크와 만나면서 입안의 기름기를 닦아주며 더욱 입맛을 돋구고,

알리오올리오같은 파스타에는 깔끔한 화이트와인이 향취를 더한다.

거기에다 와인은 같이 마시는 상대방과의 추억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 책은 바로 책 제목과 같이 와인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기획하고 제작에 참여한 배우 배용준은 추천의 글을 통해 "수많은 와인을 접하고

나서야 와인을 즐기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됬다. 와인을 한 병

오픈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와인은 함께 마신

사람들과는 추억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된다." 고 말한다.

 

<와인과 사람>은 소믈리에 이준혁이 배우 배용준을 비롯해 임수정, 김현중, 최강희,

백윤식 등 연기자, 첼리스트 정명화, 영화감독 이준익, 발레리나 김주원, 사진작가 배병우,

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다다시 등 저명한 15인의 와인애호가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삶을 와인에 비유하고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속에 담긴 삶의 향기를 감칠맛나게

담았다.

 

일단 이 책을 읽기 위해 감미로운 커피향이 모락모락라는 커피잔( 와인을 마셔야 하는데

마실 와인이 없어서)을 앞에 두고 따스한 빛이 들어오는 베란다 창가에 있는 푹신한

소파에 반쯤 기대앉았다. 책을 읽다보니 와인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향에 취하고 색에

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보인다.

 

저자는 인터뷰이의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는 와인을 선택해 함께 마시며 그들의 일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예를 들어 가장 사랑스러운 배우인 최강희에게는 가장 달폼한 디저트 와인인 '에곤 뮐러

샤르초프레르거 리슬링 트로켄베렌아수스레제'를 매치하고, 한 마리 백조와 같이 청초한

발레리나 김주원에겐 순수하고 깨끗한 화이트 와인의 전설인 1996 '도멘 J.F. 코슈 뒤리

코르통 샤를마뉴'를 , '지상 최고의 와인'으로 불리는 '2005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로마네 콩티'는 우리나라를 넘어 아시아 대표 배우 배용준에게 가장 적합한 와인이라는

판단에서 선택한다.

 

또한 와인과 음식의 환상적인 마리아주를 위해 프랑스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흥선대원군 별장이었던 한정식 레스토랑 '석파랑', 세계적인 와인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

(Wine Spectator)가 수여하는 '베스트 오브 어워드 오브 엑셀런스(Best of Award of

Excellence)'에 포함된 유일한 한국 레스토랑인 '뱅가(Vinga)'와인바 등 최고급 와인에

걸맞은 최고급 레스토랑을 선보인다.

책을 읽다보니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몇몇 와인은 흥미가 생겨서 가격을

찾아봤더니 한 병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며 애호가사이에서는‘수천만원을 주고도 못 사는

와인’이라 불리는 로마네 콩티부터 시작하여 모두 고가 와인이었다. 자주 즐기기

부담스러운 고가 와인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의 와인들이라고 저자가 소개한 

와인들조차도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가격에 상관없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최고의 맛을 즐길 수 있을테니 고가 와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자위하면서 아쉬움을 사진에 나오는 레이블을 보면서

대리만족으로 달래야겠다.







< 2005 도멘 드 라 로마네 콩티 로마네 콩티>

 

혀 끝을 감도는 향에 그 많은 것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와인을 마시고 나서 느낌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다채롭다. 특히

'신의 물방울'의 저자인 아기 다다시 대답은 역시 작가라서 그런지 감미롭다든지

부드럽게 착 감긴다든지같은 다른 이들의 말과는 다르게 문학적은 표현이 남다르다.

 

『마치 리듬을 만끽하는 것처럼 길게 뽑히는 여운이 대단합니다. 정점에 이르렀다가

살짝 뒤집어지는 탐스러운 꽃봉오리 같습니다. 오페라 아리아가 절정에 이르면서

한층 높아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모든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지만 영화감독 이준익 감독님 말씀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저는 수평주의자입니다. 수직수의자를 싫어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고 할지라고

제자의 천성에서 우월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24시간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와인은 눈으로 컬러를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입술을 적시는 술입니다. 이렇게

감성적이니 여성들이 더욱 와인에 매료될 수밖에 없지요. 소주는 권투와 같고

와인은 골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와인은 상대방과 함께 마셔도 자신의 컨디션을

느끼는 술이지요. 소주가 사람을 충혈된 상태로 만든다면, 와인은 사람을 침착하게

만듭니다.』

수평주의자인 이준익 감독의 인간적인 매력과 함께 주옥같은 어록이 깨알처럼

쏟아진 인터뷰였다.

 

이 책은 인터뷰 에세이지만 와인 소개에 대해서도 등한시 하지는 않는다. 책 중간

중간에 팁 형식으로 와인을 보다 즐겁게 즐기는 노하우를 공개한다. 와인과 음식을

매칭시키는 기본적인 방법, 와인 마시는 순서, 디캔딩과 브리딩, 와인을 보관하는

방법 등 와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유용한 정보들이다.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은,

고기에는 레드 와인을 곁들여 마시라는 것은 선입관이며 와인을 선택할 때는 요리의

재료가 아닌 소스에 맞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이 책의 인세 전액은 유니세프 코리아와 환경운동연학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 의미까지 특별하다.

와인은 사랑과 같다고 할까? 누구에게나 운명의 와인이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을 단 한 병의 와인이 있다고 하니 나에게 어울리는, 내 취향에 맞는 와인과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일날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달콤한 디저트 와인을 곁들이면서

운치있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끽해야겠다.

흔히 술은 입으로 마시지만 와인은 분위기로 마신다고 하지 않는가?

 

가장 소중한 순간을 와인과 함께 추억을 쌓아가는 감정의 호사를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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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리 플래닛 - 당신은 오늘 얼마나 먹었나요
피터 멘젤.페이스 달뤼시오 지음, 김승진.홍은택 옮김 / 윌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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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한 장의 사진이 많은 것을 표현할 때가 있다.

진심이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순간 가장 진하게 드러나기도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렇다. 그냥 작가는 사진 속 무대로 독자를 데려가 그저 슬쩍 보여주고

돌아선다. 그러면 초대된 독자는 거기에 동참해 호흡하며 마음에 밑줄을 그을

깨달음을 얻는다.

  


<칼로리 플래닛>은 전 세계 30개국을 돌아다니며(아쉽게 한국은 빠져있다.) 80명의

개인이 어느 평범한 하루에 먹은 음식을 생동감있게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사람들은

집이나 일터에 자신의 하루치 음식물을 늘어놓고 사진기 앞에 섰다. 작가는 그들과 함께 

음식들을 먹으면서 그들의 삶을 듣고, 하루의 식사에 들어가는 음식 목록과 총

칼로리량이 계산된 식단표를 작성했다. 

그렇게 계산된 칼로리로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이 먹은 800칼로리부터 시작하여

영국의 30대 여성이 먹는 1만 2300칼로리까지 열량이 많아지는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나미비아의 목축인부터 중국의 익스트림 게이머, 인도의 탁발 고행승, 아일랜드의

대구잡이 어부, 일본의 자전거 택배원, 호주의 해상구조원, 이탈리아의 가톨릭 수도사 

등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먹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80인의 일상과 식습관을 어떤 주관적 판단도 어떤 편견도 없이 사진

한장으로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600장에 달하는 다채로운 이미지를 담은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전세계에 퍼져있는 빈곤문제, 환경문제, 비만문제 등에 

자연스럽게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하루 권장 칼로리인 2,000~2,500칼로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참할

만큼 적게 먹는 두 부류의 사람을 보여준다.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나미비아 힘바족 사람은 먹을 것이 없어서 옥수수죽과 우유로만

하루 1500칼로리를 섭취하며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반면에 체중 감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몸무게로 만들기 위해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 식단을 짜서 하루 1600칼로리를 먹는

미국인도 있다. 비슷한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지만 식단은 극과 극이다. 하지만 둘다

음식때문에 괴롭다. 한쪽은 먹을 것이 많지만 먹지 말아야 하고 다른 한쪽은 공급이

안되서 기아에 허덕여야 한다. 

이처럼 식량이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있는 세계 실상이 그대로 드러내며 음식으로

대표되는 지구 자원이 얼마나 편중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인지,

세계가 지금 얼마나 불평등한가를 저절로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케냐의 마사이족이 죽어가는 암소의 위장을 갈라 사인을 살펴본 결과 버려진

비닐종이가 위장속에 배배 꼬여 있는 것을 발견한 사진 한장은 전세계가 버려진 

폐기물이 마사이족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없다라도 환경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게 한다.

    

저자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지구를 위해 더 좋고 건강한 음식을 고르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결국 ‘당신은 오늘 얼마나 먹었나요?’란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무엇을 먹느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식생활이 인간과 지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책을 덮고나니 마치 세계 일주를 다녀 온 느낌이 든다.  전 세계 나라와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식습관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원하는 

대로 식단을 선택할 특권을 가진 내가 더 윤리적이고 책임감있게 식품을 선택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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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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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야가 중요한 정치적 공방으로 논쟁이 되는 주제는 대부분 진보가 내세우는 
가치들이다.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이를 두고 보수 진영은 포퓰리즘으로 비난하다가
요즘은 그들이 한술더떠 5세미만 아이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하니 정치
어젠다가 진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 하다.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 '강남좌파'라는 또다른 진보적 색채 띤 집단에 대한 관심도 최근
이슈거리다.
 

'강남좌파'는 흔히 생활수준은 강남사람 못잖으면서 생각은 좌파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노무현 정권 때 보수진영이 운동권 출신 정치 엘리트인 486세대 진보 인사들의
'몸과 마음의 괴리'를 비판하기 위해 꼬집던 부정적 의미로 시작했던 개념이 지금은 강남에
사는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했다.
강남좌파라는 용어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된것도 이러한 의미의 변화가 발생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 나 강남좌파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며 적극적으로 커밍아웃하는
강남좌파가 늘고 있으며  , 조국 서울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지려면 강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 며 강남좌파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강준만 교수가 쓴 '강남좌파'도 그런 흐름에 맞추어 출간된 책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강남좌파에 대해 새삼스레 관심을 쏟는 것인지
조금은 이상하다. 가진 것 많은 부자가 진보적이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면, 역대
선거에서 보여주었던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소득층이 이념적으로 더 보수적이라 한나라당과 같은 보수 정당을 더 많이 지지해 왔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는가?
오히려 부자라고 모두 우파이고 가난하면 모두 좌파라는 등식이 나에게는 더 낯설고
강남좌파라는 것이 마치 모순인 듯 새로운 이슈처럼 나오는 것이 더 이상하다. 보수와
진보는 소득면에서 보다는 오히려 출신 지역에 따라 뚜렷한 지지층이 나뉘지 않았는가?
 

어째든 강준만 교수가 책 속에서 소개하는 강남좌파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달리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라고 말한다.이건 어떤 논리인가?
좌우를 막론하고 리더쉽을 행사하는 정치 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학력이나 학벌, 생활수준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므로, 정치 영역에서 활동하는 모든 좌파는
강남 좌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파라도 서민을 상대로 포퓰리즘을 펼치는 게 
정치이므로 우파 정치인에게도 강남 좌파 요소가 농후한 게 현실이니 그리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된다.
 

강 교수는 강남좌파 문제를 이념보다는 엘리트 본질과 맞닿은 문제라 엘리트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강남좌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이 '엘리트의 위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선행되어야만
강남 좌파에 관한 논의가 생산적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존 엘리트 지배 체제를 당연시하면서 자꾸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대결로 몰고갈 것이 아니라
'엘리트 대 비(非)엘리트'구도에 초점을 맞춰 엘리트들의 승자 독식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내년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조국,박근혜,손학규,유시민,문재인,오세훈등 차기
대권주자들을 포함한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주요 정치인들을 조명하며  ‘강남 좌파’
개념을 적용해 인물비평을 하는데 이 부분이 꽤 흥미롭다.
 

강남 좌파의 표상임을 보여주는 조국 서울대 교수, 최근에  ‘강남 우파’ 정권에 대한 '분당 좌파'
의 반작용때문에 재기에 성공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 부정적인 강남 좌파 이미지를 벗고
노무현대통령 정신을 이어받자는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강남 좌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덕분에 중요한 사안에 침묵하고, 곤란한 질문에 똑같은 답을 되풀이하는 것조차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었다는 박근혜, 강남우파이면서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집요하게 구사하는 오세훈
서울 시장 등

 
촌철살인같은 따끔한 비판에 수긍못할 부분도 있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싶은 오류도 있지만
모든 정치인들에게 부족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부분에선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냉정한 비판을 받으며 뭇매를 맞는 것에 가슴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너무 노여워하지않고 새겨들으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보탬이 되는 조언을 줄 수
있는 역량과 시각을 갖게 되는 열린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을 마지막으로 쓰고 싶다.
신문을 읽다보면  유치해서 보는 내가 다 민망한 주장을 하는 글이 있다. 그 예 중 하나가
이 책에서도 나와있는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이 조국 교수를 비판을 하기 위해 쓴
글이다.
 
"하지만 자기 딸을 외국어고를 거쳐 이공계 대학에 진학시키고는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동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고 털어놓은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드는 현 교육 체제를 바꾸려면
일차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던 그의 글만 믿고 따라 한 학부모나
학교가 있었다면 완전 뒤통수 맞은 거다.  -김순덕 글중에서-
 
고작 저 정도 인터뷰 내용에 경악씩이나 하는 심약한 마음을 가진 김 필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강준만 교수가 위의 글에 대한 반박글을 꼭 읽으셨으면 한다.
 
『자기 딸을 외국어고를 거쳐 이공계 대학에 진학시킨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외국어고 비판하면 자기 자식은 외국어고에 보내면 안 되고, 서울대 비판하면 자기 자식은
서울대에 보내면 안 된다고 보는 시각 왜 그래야 하나?
외국어고 비판이나 서울대 비판은 제도 차원의 비판이 아닌가.그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일단 개인으로선 그 과정에서 불익익을 보지 않기 위해 제도를 따르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드는 현 교육 체제를 바꾸려면
일차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던 그의 글만 믿고 따라 한
학부모난 학교가 있었다면 완전 뒤통수 맞은 거다? 제도적으로 줄이자고 한 건데,
제도가 바뀌기 전 조국의 말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공부 시간을 줄인 학부모나 학교가
있다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그 학부모나 학교가 문제지 왜 조국 탓을 해야 하나?
그것 참 희한한 논법이 아닐 수 없다. 』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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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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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며칠을 1930년대 경성거리를 헤맸다. 판탈롱 바지와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부린 모던껄이 되어 양복을 걸쳐 입고 중절모를 쓰고 스틱을 든 모던뽀이들과

미시꼬시 백화점의 옥상정원 파라솔 아래에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여급에게

커피도 주문해 보기도 하고,

양인과 같이 창백한 얼굴과 봉두난발과 구레나룻에 양복을 걸치고 백구두를 신고

스틱을 휘휘 돌리는 이상과 땅에 질질 끌리는 망토 같은 인바네스 외투를 입고 높은

중산모를 쓴 구본웅이 걸어가는 모습도 바라보고,

화신상회 앞에서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있는 갓빠머리를 한 박태원도 만나고...

 

이처럼 <이상과 모던뽀이들>은 이상과 그의 벗들의 일상과 백화점,까페,전차 등

신문물이 급격하게 휩쓸기 시작한 회색조의 근대 경성 풍경을 선명하게 재현하여

경성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시대를 앞서간 전방위 예술가, 경성을 누비던 모던보이, 불행하게 요절한 천재 시인,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 작가....

이상을 수식하는 문구는 끝도 없다. 저자는 거기에다가 ‘지구에 너무 일찍 온 사나이’

'트렌드 리더'라고 덧붙인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건축가이며 화가였으며 작가였던 이상의 삶을 살펴보는 1부,

1930년대 근대 경성 풍경을 샅샅이 훝어보는 2부,

이상이 참여했던 구인회 멤버를 중심으로 그의 벗들을 소개하는 3부.

이상이 죽기전에 머물렀던 일본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4부

 

카프카에게 프라하가 있고, 제임스 조이스에게 더블린이 있고, 발터 벤야민에게

파리가 있고, 폴 오스터에게 뉴욕이 있다. 그리고 1930년대 모던보이들에게는

근대 경성이 있었다.

 

이상을 비롯한 경성의 산책자들은 “근대 도시의 기호를 해석하고 기록하며 ‘고고학자’로

거듭난다”. 그러나 새로운 서양 기술과 유행들이 밀려든 경성의 모습은 이상과 같이

시대를 훨씬 앞서는 근대의식을 가진 ‘모던뽀이’조차도 ‘졸도’할 듯한 위협과 현기증을

느낀다.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사구니에 끼여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이십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는 너무도 많은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이상은 독자들 항의에 연재를 그칠 정도로 난해한 연작시 ‘오감도’ 을 발표하는 시대를

앞선 문학를 추구하며 예술적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은 근대인이었으나, 정작 자신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 양자로  입양되는 봉건의 굴레를 쓰고

있었고, 맏아들로서 가난한 부모님께 생활비를 못 드리는 괴로움에 고통 받고, 아내의

정조가 의심스러워 괴로워하는,  자신속에 남아 있는 19세기적 자신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처럼 이상은 19세기와 20세기에 끼인 경계인으로 헤매이다 근대와 전근대, 조선과


일본, 혈통적 의무와 예술적 자유, 친부와 양부 사이에 끼어 있는 이중적 업압에

반발하며 '튕겨'나간다.

가족,사회가 부과하는 책임과 의무들, 인습적 사고방식, 당위적 강령들에 반발하고

일탈하고 분열하면서 그 당시로서는 수용할 없을 정도의 시대를 크게 앞지른

모더니즘 문학을 발표한다.

그는 소설을 시처럼, 수필을 시처럼, 시에 기하학적 도형을, 숫자판을 도입하고, 문법해체

등  도저한 형식 실험을 한다. 이상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모든 문학평론가에게

매력적인 이유가 아무리 분석해도, 아무리 껍질을 벗겨보아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양파같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한 가지로 정리하기 어려운 이상의 복잡다단한 문학을 저자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신경증 환자들의 가족 로망스' 이론을 가져와 양자입양으로 빚어진 트라우마를 

설명한다. 또한  발터 벤야민, 지그문트 바우만, 들뢰즈의 사유와 철학을 빌려와 1930년대

경성을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어 자칫하면 이론과 겉돌수 있는 현대비평이론을

가져와 자연스럽게 근대라는 키워드에 녹여내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그동안 요부라고

칭하던 금홍에 대해서도 이상 신화를 입체화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사악함과 애욕이

실제와 달리 과장되고 날조되었다는 해석을 펼친다.

김유진 감독의 ‘금홍아 금홍아’라는 영화로, 유상욱 감독의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로

학창시절에 배운 '날개'로 감히 그의 문학과 정신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의 작품은 지금

읽어도 새롭고 신기할 정도로 신선하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이

되어 각종 콘텐트로 재탄생하며 날로 진화하나 보다. 

 

그러나 이상을 복잡한 사생활로 인해 '퇴폐' 내지는 '광인'으로 각인된 이미지를

부각시켰던 이상에게 씌워진 잘못된 인식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을 제대로 안내할 길잡이인 이 책이 그 길을 도와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미샤 엘만의 연주를 좋아했던 이상.

100년도 더 지난 지금 나도 엘만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오감도 15호와 함께.

그리고 이상과 금홍이가 다녔던 대한문을 거쳐 중추원, 경성재판소, 이화학당,

경성방송국, 이화여전으로 이어지는 덕수궁과 서소문동을 잇는 정동길을 걷는

경성산책에 하릴없이 동참하고 있다.

우리는 왜 지금까지 이상을 이야기하는지,

혹은 이상(異常)한 인간 이상(李箱)이 그리 좇았던 이상(理想)을 알 수있을까 하는

미련한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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