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을 고전이라고 한다는데,
<한비자>도 그런 고전중 하나다. 나에게는 학창시절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가
쓴 <한비자>라고 밑줄 치며 외우기만 했던, <논어>,<맹자>보다 중요도가 떨어졌던
책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사실 고전은 소설처럼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에 담긴 지혜를 얻고 싶지만 늘 선택하는 순위에서 밀렸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만화형식으로 되어있어 선뜻 발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첫 발을 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막연하게 법가 사상이라고 추상적으로 생각만 했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상과 내용을 담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고전이 주는 무게감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고전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췄다고나 할까.
한비가 살았던 시대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전국시대였다. 한비자가 보기에 세상은
공자나 맹자가 중요하게 여겼던 도덕이나 예의같은 이상적인 사상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한비자가 태어난 한나라는 전국7웅 가운데서도 가장 작고 약해
끊임없이 이웃나라들에게 침략을 당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날 왕들의 정치적 업적을 조사해서 '법'으로 통치이념을 삼고 군주가 신하를
조정하는 기법인 '술'을 강조해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한다고 글을 썼다. 그런 그의 글을
엮은 정치 사상서가 바로 <한비자> 인 것이다.
세부적으로 ‘고분편’ ,‘오두편’, ‘세난편’ ,‘설림편’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고분(孤憤)'
은 말그래도 한비 자신이 당시의 불합리한 정치상황을 직시하면서 혼자 외롭게 분노해
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글이며 '오두(五蠹)'는 다섯 마리 좀 벌레를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면서 당시에 나라를 좀먹던 학자, 유세가,협객,측근,상인과 직공이라는 다섯 종류의
좀 벌레를 지적하고 있다.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끼며 살았던 환경적 영향탓인지 한비자는
‘인간 불신’에 기반을 두었다.
'비내편'을 보면 임금은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한다.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속을 내
주어서는 안되며 그것이 여자일 경우 더욱 그렇다고 한다.정실이 됐든 측실이 됐든
가까이 하고 있는 여자들은 실은 임금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임금에게 경고한다.
"임금의 죽음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임금의 목숨은 위태롭다"
이러한 극도의 인간 불신을 탓하기엔 시공을 초월해 현재에서도 남편을 죽인 아내나
부모를 죽인 자식등의 인간관계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부인할 수는 없다.
이처럼 한비자는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는 인간 이해의 기본 전제 하에 모든
인간관계를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이해관계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서도 신하의 이익과 임금의 이익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금에게는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 이익이 되지만 신하로서는 능력이 없어도
일을 맡아 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이 검은 신하가 임금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일을 꾸미고 있거나, 자신의
출세와 사리사욕을 위해 대립된 세력과 방해자들을 없애려고 무슨 악랄한 수법을
쓰는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자들에게 속는 일이 없도록 대처하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한비자는 임금은 신하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신하들을
자기의 뜻대로 조종하고 길들이기 위해 권모술수를 적용해서라도 신하들을
휘어잡아야 한다는 신하 조종 방법인 '술(術)를 강조한다. '내저설 상편'을 보면 칠술
즉, 신하를 조정하는 일곱가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신하들이 하는 말을
사실과 맞추어 볼것', '속임수를 쓸 것', '모른 체 하며 상대방을 시험해 볼 것', '헛말과
거짓으로 상대방을 시험해 볼 것 ' 같은 술책을 보면 이래서 한비자를 권모술수의
사상가로 비난받는 이유를 알 것같다.
그런 면에서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와 많이 비슷한 듯 하다. 두 사람 모두 힘이
약한 나라에서 태어나 조국이 강성한 모습을 보고 싶어해서 강력한 군주를 원했으며
권모술수를 쓰더라도 왕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문에게, 한비자는 한나라 왕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둘다 통치자 위조의 사고방식이나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정치기술때문에
비난받기도 했지만 권력의 생리에 관한 한 이들처럼 제대로 꿰뚫어본 사상가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늘날 성공하는 리더들이 인용하면서 처세술로 추천받고
있는 책이 <한비자>가 아닌가!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비자>를 읽다보면 바람직한 리더십이 어떤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그가 주장했던 강력한 법치가 현 시대에도 필요하다는 의견에 법이 실종되가는 현실에
맞는 말인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면 인간 불신과 이해관계로만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통치자 중심의 이데올로기만 중요시여긴 한비자 생각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어려움 숙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