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은 왜 변기에 사인을 했을까? - 명화로 배우는 즐거운 역사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 지음, 안토니오 밍고테 그림, 김영주 옮김 / 풀빛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제목에 끌려 책을 고른 적이 많은데 이 책도 그런 이유로 선택된 책이다. 아무래도

평범한 제목보다는 톡톡 튀는 기발한 제목이나 이 책처럼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를 찾아보니 스페인어인' Pequena Historia De La Pintura.'

미술에 대한 짧은 역사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다소 밋밋했던 제목이다. 아무래도 바뀐

새 제목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보면 원 제목이 책 내용과 더 잘 부합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뒤샹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기 때문에 살짝 낚였다는 느낌도 받았다. 정작 뒤샹에 대한 이야기는 한페이지도

채 안 된다. 제목에 끌려 3분의 1쯤 읽고 나서 뒤샹은 극히 적은 분량으로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책의 모토가 '미술로 세상 읽기'라는 점이 끌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여기서 세상이란 미술사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 정치,

종교, 역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미술사를 쓴 사람의 이력으로는 특이하게 철학자라는 것이 아마 다른 미술사책과는

다른 관점에서 미술을 보게 하는 힘인 것 같다.  

철학자다운 인문학적 감상때문인지 의외의 미술감상법이 나온다. 그는 '이 그림 속에

살고 싶은가'가 그림을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림감상을 할 때 이 그림의 학파는 무엇이고 색채는 어떤지 어떤 사상을 담았는지

그런 것들은 생각하면서 보았지만 그 그림속에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나 벨라스케스

'시녀들',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거리'를 떠올리니 저자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를 그림을 보면

그 속에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이 화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살바도르 달리가

늘상 존경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매긴 화가들의 비교평가표에서 최고점을 준 화가여서

그 때부터 작품들을 주의깊게 감상하였는데 섬세한 표현이 정말 아름다웠다.아마 저자는

평온하고 아늑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미술사 전체를 훑어보는 책의 취지에 맞춰 선사시대부터 이집트,그리스,로마, 동양미술,

르네상스, 로코로, 인상주의, 표현주의, 현대미술들을 다룬다. 

시대마다 미술은 여러 목적을 위해 쓰였는데 선사시대의 동굴과 이집트 무덤에서는 마법

같은 요소였고 그리스에서는 집을 장식하는 데 쓰였으며 로마에서는 조상을 기리는 

수단이 되기도 했고 비잔티 제국에서는 정치적 선전을 위해 미술을 이용했다고 한다.

 

미술사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할머니의 옛날 얘기 보따리를 푸는 것 만큼이나 흥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현대 미술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토가 장난삼아 한 초상화 위에 모기를 그려 넣은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본 화가가 모기를 잡으려고 했다는 이야기는 마치 솔거가 그린 소나무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혀 떨어졌다는 일화가 생각났고, 늙은 파우누스(고대 로마의

목신)의 머리를 조각하고 있는 소년 미켈란젤로를 보고 로렌초가 "보통 나이가 들면

저렇게 온전한 이를 가지기 어렵단다."란 말에 완벽한 치아를 가지고 있던 조각상의

이 하나를 빼버려 더욱 실감 나는 작품을 완성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난다.

 

미술사를 살펴보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모두 여행하는 즐거운 경험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르네상스시대에 가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19세기

수련을 그리는 모네도 만났으며, 화가의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 시대의 역사까지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경탄을 금치 못했던 거장들의 그림들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거장들의 위대함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그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위해 창조하고 행동했던 그들의 열정과

가르침이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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