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세상에 음악이 없었다면 삶의 즐거움이 절반쯤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봐도 내 인생의 80%는 음악과 함께한 세월인 듯하다.

샹송, 팝, 재즈, 뉴웨이브, 클래식. 먹성좋은 사람처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며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음악의 즐거움을 최초로 가르켜준 클래식은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남들은 가요에 심취했던 10대시절에 클래식에 빠져 용돈을 받으면 음반가게로

뛰어가던 날, 아빠를 졸라 고가의 오디오의 주인이 된 날 모두 기억속에 남아있는

행복한 추억이다.
지금은 그 음반들이 내 나이만큼 많아 직직거리는 잡음이 섞여 있고 바늘이 튀는

골동품인지라 턴테이블옆에 딱붙어 판돌이해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 LP의 묵직한 음색이 매끄럽고 가벼운 CD보다 더 마음에 끌린다.

 

이 책의 저자인 홍승찬교수도 클래식 음악을 듣는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보면 볼수록 ,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나 아름다고 좋아서 혼자만 알고 즐기기는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을 전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느낌을 나누려는 마음입니다. 안다고 뽐내는 말이

아니라 좋으니 함께하자는 뜻입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한가로이 마실을 나서는

기분으로 한 걸음씩 다가서면 좋겠습니다."

 

이쯤되면 저자의 음악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 동참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리라.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게 그들만의 언어로 쓰인 

클래식 평론이 아니다.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사연, 우리가 몰랐던 음악가들의

뒷담화, 그 속에 묻어나는 인생이야기을 따뜻한 어조로 말하는 음악에세이다.

 

내가 좋아하는 쇼스타코비치가 나오는 첫시작부터 저자가 나를 계속 붙잡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만큼 저자의 시선은 음악에 대한

열정못지않게 잊고 있었던 삶의 가치를 떠올리게 하고 앞서 달려가려고 하는 분주한

마음을 잡아 준다. 예술적 감성이 깊어서인지 삶의 주는 관록인지 몰라고 짤막한 문장

안에서도 사색과 성찰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피아노에 관한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쇼팽과 리스트를 서로 숙명적 라이벌

이라는 점에만 주목해온 그동안의 시선에서 벗어나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관계로 이해한다. 그래서 모두가 힘겹게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혼자보다 둘이 되어 삶을 더 풍성하게 보내라고 권한다.

 

또한 1분에 1000달러 이상 버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지하철역에서

거리의 악사로 변장해 시민 앞에서 연주했으나, 45분동안 행인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입은 총 32달러였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조슈아 벨의 해프닝을 소개한 기사는

'온통 근심 걱정 때문에 서서 구경할 시간조차 없다면 도대체 이걸 산다고 할 수 있는가'

라며 끝을 맺고 있는데 저자도 묻는다.

여러분의 삶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앞만 보며 너무 열심히 사느라 정작 진정한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냐고...

 

사실 클래식음악은 그 시대의 전후맥락을 감안하고 들어야 감동이 커진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슬픈 음악인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를 들을때는 동성애로

비난받고 죽음으로까지 내몰린 그의 삶이나 그가 살았던 조국 러시아의 암담한

현실를 떠올리면 가슴이 텅 빈 듯 멍하고 휑한 여운을 더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처럼 음악가들의 소소하고 사사로운 사생활도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미움과 상처가 없고 갈등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듣게되고, 단순한 고양이 이야기가 아닌

용서와 화해,배려와 존중이라는 영원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뮤지컬 '캐츠'가 새롭게

들리기 시작한다. 또한 음악교과서에서조차 하이든의 대표작으로 소개한 장난감

교향곡이 사실 하이든작품이 아니라는 뜻밖의 사실을 아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음악마다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게 된다.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읽고나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또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켜 준다는 거다. 읽는 동안은 클래식

음악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면 다 읽고 나서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각과

감성을 일깨워준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지하철역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약사를 발견하면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리는 여유를 부릴 것이다. 나처럼.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우선해야 할 것이다.

향긋한 커피 한잔과 푹신한 소파 그리고 삶의 여유 한 조각이다.

삶의 여유를 준비못했다면 속상해 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을 읽고나면 여유 한 조각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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