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기본도 모르고 할 뻔했다 - 주식 투자할 때 간과하기 쉬운 투자요령
박병창 지음 / 북오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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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를 그만둔지 10여년지 지났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읽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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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저널리스트 : 조지 오웰 ㅣ 더 저널리스트 2
조지 오웰 지음, 김영진 엮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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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지 오웰이 저널리스트로서 작성한 기사와 기고문, 칼럼들 중에서 일부를 엮은 문집이다. 평등, 진실, 전쟁, 미래, 삶, 표현의 자유 등 6개의 주제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주제에 대한 오웰의 관점이 아주 잘 드러난 글들이 실려있다.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쓰여있는 "이런 시대에 살면서 전체주의나 민주적 사회주의에 관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문장처럼 '오늘'을 써내려갔던 조지 오웰. 전체주의와 자본주의를 경계하고 자신이 지지했었던 사회주의와 자국 제국주의를 성찰함과 동시에 가장 낮은 곳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글을 썼던 오웰은 죽기 전까지 체념이란 없었다. 그는 사회의 어둡고 이기적이며 폭력적인 부분을 들춰내 비판하면서도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오웰은 애국주의와 국수주의를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소속 집단의 이익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했다. 그리고 제국국의 국민으로 살았음에도 식민지의 국민과 유색인종, 소외 계층의 고통을 잊지 않고 드러내며 힘있는 국가가 자국 국민의 이익을 명분으로 정의와 신념을 저버리는 행위를 성토했다. 또한 수면 아래에 있는 진실과 대중에게 보여지는 진실이 다르고, 소설 <1984>에 나타난 것처럼 역사가 진실을 기반해 쓰여지지 않는 것을 저항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을 우려했다.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인종차별과 난민 문제, 역사 왜곡 등을 떠올려 보면 오웰의 우려가 지금까지도 유효함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이어야만 할까? 혹은 정치를 가까이해야 할까? 오웰이라면 이러한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노동과 (사회)민주주의는 보통의 국민이 정치적 시선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 교육, 주택, 저출산, 고령화 등 평화로운 삶을 위한 사회적 혁명이 모두 정치를 통해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절대로 정치를 외면하면 안되는 이유다. 오웰은 2차 대전 이후 상시적 전쟁을 예측했다. 앞으로 두세 개의 '초국가'가 분열하고, 초국가들 사이에서 상시적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역사와 교육의 왜곡으로 사상의 자유는 억압받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2차 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 돌입함으로써 오웰의 예측은 상당수 일치했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신자유주의 시장인  현재를 들여다볼때, 총 대신 돈으로 상시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 오웰의 진단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오웰은 사회의 원동력은 노동자에 기반하고 있으며 평범한 노동자는 막대한 힘을 가진 중요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21세기를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경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이후 정규직 개념이 거의 사라진 현재, 노동의 제도화는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지구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신자유주의에 입각해 있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의 불안정은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외환 위기가 극복됐다고 한지 십수 년이 지났다. 그런데 대다수의 서민은 여전히 IMF 시대를 살고 있다. 오웰은 퇴출이 명백해진 자본주의의 빈자리를 과두제가 대신할지, 진정한 민주주의가 대신할지 질문한다. 그런데 오웰의 예측은 안타깝게도 틀렸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력해졌으며 각 국가 내, 그리고 각 국가별 빈부의 격차는 극단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대로 괜찮을까? 1946년에 던진 오웰의 질문을 지금이야말로 다시 물어야한다. 오웰은 진정한 악은 상대가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행위라고 썼다. '악'을 자처하는 자, 누구일까?

사회 부조리와 불평등을 몸소 겪었던 조지 오웰. 그의 시선은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고, 펜 끝은 억압하는 자들을 가리켰다. 그는 '언론 재벌'로 일컬어지는 대형 언론에만 국영화를 실시하고, 소규모 독립 언론은 그냥 남겨두라는 제안을 한다. 그런데 정경유착과 기업의 광고에 기생하는 언론이 거의 대부분인 한국에서 가능할지 의문이다. 오웰이 생각하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란 소수 의견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행위가 쉽게 이루어지고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다양하고 진정성 있는 저널리즘을 지향하는 소규모 언론이 생기기를 바라며, 거대 정당이 양분하지 않는 다수의 소수 정당이 국회에 자리하기를, 나 역시 바람한다.  
 
조지 오웰이란 사람의 글을 한 달 이상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그와 밀착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당분간은 오웰의 글에서 멀어지겠지만, 삶을 열망했던 그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받아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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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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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은 오로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눈이 먼다는 설정에서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아간다.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고 씻지도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용소에서 성행위를 하며 굶지 않기 위해 도덕성 따위는 던져버렸다. 또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총을 권력삼아 금품을 탈취하고 강간을 일삼는다. 결국 보통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살인자가 되고 방화범이 되고 만다.  
 
소설 전반에는 관용과 이타심, 그리고 도덕적 양심에 대해 묻는다. 
이타심으로 눈먼 사람을 집까지 데려다 준 남자는 그의 차를 훔치고 수용소에서 한 여성을 성추행한다. 그리고 처음에 눈이 먼 남자는 집까지 데려다 준 남자에게 고마워하다가 아내가 올 때까지 말벗이 되어주겠다는 남자의 호의를 의심한다. 안과 의사와 아내는 눈이 보인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하고, 정부는 수용소 내부에서 재소자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방치하며 심지어 민간인을 살상하고도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같은 처지인 재소자 깡패가 금품과 성 상납을 요구할 때에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깡패 두목을 살해한 사람을 찾아 범죄의 책임을 물어야한다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애초에 왜 실명이 된 것일까? 
 
187.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검은 색안경을 써던 여자가 말했다. 그거야말로 진리로군. 그것보다 더 참된 말은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 것이고. 
 
소설 초반에 나오는 이 대목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수용소의 문이 열리고 도시 전체가 눈이 멀자 안과 의사 부부와 검은 색안경 여자, 안대 노인, 첫 번째 눈이 먼 부부, 그리고 어린 소년은 공동체를 이루어 먹을 것을 구하고, 서로를 씻겨 주며, 옷을 나눠 입는다. 또한 검은 색안경 여자의 집에 머물고 있는 노파에게까지 많지 않은 음식을 나눠준다. 그들이 다시 눈을 뜨기 직전 회복하는 것은 인간성과 이타심, 그리고 관용이었다. 이처럼 마지막에 이르러 두려움이 실명의 원인이라는 대목은 힘을 받는다. 소설에서 도시를 배회하는 눈먼 사람들의 묘사는 흡사 좀비를 연상시킨다.

340-341.
비는 그쳤다. 이제 입을 벌리고 서 있는 눈먼 사람들은 없다. 뭘 하러 가는지 모르지만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들은 거리 이곳저곳을 배회하지만, 그리 오래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걷는 것이나 서 있는 것이나 차이가 없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을 찾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 이 실명 전염병이 한 사람도 피해가지 않았다는 것, 현미경의 렌즈를 들여다볼 사람이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는 것, 연구소들도 다 텅 비어 박테리아들도 살려면 서로 잡아먹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자, 사람들은 치료법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약자를 갈취하며 이를 무관심으로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도시를 배회하는 눈먼 자들과 다를 바 없을 지 모른다. 검은 색안경 여자가 자기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어린 소년을 보호한 것, 아내가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깡패 두목을 살해하고 눈이 먼 일행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까닭이 책임감 뿐이었을까? 그것은 그들의 처지에 이입하고 진심으로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자로 살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극심해져가는 인간성과 관용의 상실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소설의 후반, 검은 안대 노인의 등을 밀어주는 검은 색안경 여자의 손길, 발코니에서 비를 맞아가며 옷을 빨고 서로를 씻겨주먀 웃음을 되찾는 세 여인의 모습은 따뜻하기까지 하다.
 
우리가 인간인 이유는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과 죽음에 대한 애도다. 이것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미 눈먼 자들의 도시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일테다. 
 
 
420.
우리가 이뤄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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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리커버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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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 그의 통찰을 다시 느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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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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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먼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의 날카로운 풍자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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