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ㅣ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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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문헌을 재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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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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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페이지만 읽어봐도 만만치 않은 작가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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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 중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8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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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 벗은 이시스> 작업을 진행하면서 얻게 된 정보를 종합해 벨보는 자신의 상상을 보내어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카소봉은 벨보의 이야기에 맞춰 가설을 세운다.
 
1164년 세인트 버나드가 트루아에서 성전 기사단을 합법화시킬 공의회를 출범시킬 무렵 공의회의 조직을 맡은 사람은 세인트올본스 수도원장이었다. 세인트올번스는 브리튼 섬을 복음하시킨 영국 최초의 순교자이자 드루이드교도였고 생마르탱데샹 수도원장이었으며 후일 그 수도원은 프랑스 국립 공예원이 들어서는 곳이다. 베이컨의 영지인 생마르탱데샹 수도원이 성전 기사단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 베이컨이 영국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 히브리어가 모든 언어에 모체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쓰고 총체적인 평화의 계획 수립을 주창하면서 프랑스 국왕에게 이슬람교국의 국왕과도 손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며 아랍어를 공부한 기욤 포스텔은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에서 찬밥 신세가 된다. 카소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후 기욤 포스텔은 이단으로 몰려 온갖 비방을 다 듣게 되지만 1564년 포스텔은 이단적 신학관을 철회하고 은거하는데, 그곳이 생마르탱데샹 수도원이었고, 그가 기다린 것은 1584년의 회동이라는 데에 퍼즐이 맞춰진다. 즉 기욤 포스텔은 영국과의 회동 약속을 기다리는 프랑스 측 대표였다는 것. 그런데 문제는 회동을 3년 앞둔 1581년 포스텔의 사망으로 회동이 불발됐다. 요컨대 생마르탱수도원은 성전 기사단의 은거지였다는 것이다. 회동이 실패로 돌아간 그해, 베이컨은 스물세 살이었고, 1621년에 세인트올번스 자작이 된다. 카소봉은 베이컨이 자신의 영지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냈고 생마르탱수도원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한 그가 <계획>의 비밀을 캐내겠다고 작정했다는 것까지 카소봉의 추리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카소봉은 떠날 당시와는 사뭇 다른 조국의 모습에 씁쓸함을 안고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가라몬드 출판사에서 도판에 관련한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한다. 장삿속으로 시작한 가라몬드 사장의 프로젝트 제안이 카소봉을 포함한 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전 기사단 <계획>의 비밀에 더 깊게 발을 담글 줄은 그들도 그때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게부라] 편에서는 근거에 기반한 증명보다는 삼총사의 상상에 의한 가설들이 쏟아져 복잡하게 얽혀있었는데, [티페렛]에 들어서면서 하나씩 엉킨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한다.

소설은 성전 기사단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 뿐만 아니라 역사의 굴레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다. 파시즘이 장악한 벨보의 세대, 마르크스주의가 휩쓸고 간 카소봉의 세대, 두 세대 모두 포기한 이념과 이상. 그런데 벨보는 카소봉에게 자신의 세대가 포기를 부끄러워했다면, 카소봉 세대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진실을 오도하고 자본주의에 덩달아 널뛰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늘 기회를 붙잡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에 시달린 벨보의 회한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이사이 에코 선생의 유머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하일라이트인 마지막권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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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세트 (전3권) (반양장) - 전체주의의 기원 + 인간의 조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박미애.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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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주장한는 아이히만의 재판에 있어 짚어야 할 점은, 아우슈비츠의 실제의 공포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본질을 가지고 실제로 도달하지 못했다. 검찰측과 판사들은 유대인 역사의 가장 끔찍한 대량학살 이상의 것으로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학살은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심각정의 정도뿐만 아니라 본질에서도 다른 범죄였다. 대량학살은 인류의 다양성 자체를 말살하는 것으로써 '인류' 또는 '인간성'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인간적 지위'의 특징에 대한 공격이다. 따라서 희생자가 유대인인 한에서는 유대인의 법정이 재판하는 것이 옳고도 적절하겠으나 그 범죄가 인류에 대한 범죄인 이상, 그 범죄를 심판하는 데는 국제 재판소가 필요했다. 한나 아렌트는 카를 야스퍼스의 "유대인에 대한 범죄는 인류에 대한 범죄", "판결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법정에서만 내려질 수 있다"라는 진술이 가장 명백하고 적확하다고 판단했다. 예루살렘 재판의 실패는 승자 법정의 훼손된 정의의 문제, '인류에 대한 범죄'의 타당한 정의,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새로운 범죄자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재판이라고 요악할 수 있다. 법정은 피고를 위한 증인들을 허용하지 않았고, 인류에 대한 범죄를 '인간성 침해'라고 낮추어 표현했다. 또한 유대 민족이나 폴란드 민족 또는 집시들에 대한 범죄가 아닌 국제질서와 인류 전체가 심각하게 상처를 입고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스물여섯 살에 나치당에 가입해 친위대에 들어간 아이히만은 YMCA, 독일청년운동, 청년전사동맹 등 유년시절부터 지도자에게 지령을 받고 명령이나 지휘 하에 생활하는 게 아주 친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칼텐브루너가 친위대에 가입하는 것을 권유했을 당시 나치의 열렬한 추종자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당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나의 투쟁'은 읽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키워졌다.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하는 유대인을 차라리 살해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친위대 대원이나 유대인 학살을 '안락사'라고 표현하는 히틀러, 가스 살인은 의학적 문제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객관성'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세르바티우스 박사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어차피 인간이 만들어낸 '도덕성'에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이히만의 변호를 맡은 이유가 단지 '사업상'의 문제로만 여기고 옥중에서 쓴 비망록의 판권을 희망했다는 세르바티우스 박사의 모습은 우리가 최소한으로 지키며 살아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게 한다.

국가적 행위를 수행했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본인은 단지 희생양에 불과한, 현 정부가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 법정으로 내던져졌다고 주장하는 피고측 변호인의 말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까? 그는 결코 유대인 혐오자가 아니었고, 살인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죄라면 오로지 복종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라는 것을 아이히만은 몰랐고, 변호인도 인지하지 못했다. 말과 사고가 부재한 복종이 '죄'라는 것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보다는 자기가 유대인 소년을 때려죽인 적이 있었다는 증언에 더 동요하는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우리가 짚어내야 할 바는 무엇일까? 하지만 나는 그가 사고하지 않은 죄 이전에 이미 수단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본다. 단지 그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한나 아렌트는 자신이 쓴 가상의 판결문을 통해서 아이히만에게 말한다.
최종해결책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은 우연적인 것이었으며,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역할을 떠맡았을 것이고 잠재적으로는 거의 모든 독일인들이 유죄라는 것,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유죄인 곳에서는 아무도 유죄가 아니라는 의도를 가진 아이히만의 주장, 그러나 피고의 내적 삶과 비범죄적 본성, 피고 주의에 있는 사람들의 범죄적 가능성과는 무관하게 당신은 유죄다. 왜냐하면 우리(대다수의 사람들)는 이 지구를 유대인 및 수많은 다른 민족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원하지 않는 정책을 지지하고 수행하는, 인류 구성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피고와  이 지구를 공유하기를 바람다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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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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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이 꽤 되는 책을 한 권 읽고나면 나른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130쪽에 불과한 이 책을 읽고 기분좋은 나른함을 느낀다.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작가는 우리에게 왜 독서를 하는지, 그리고 독서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글을 시작한다. 학업과 복종에 의한 의무적인 독서에 즐거움과 기쁨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읽혀지기를 거부당한 책은 책장에 꽂혀 장식되어 있는, 가구와 다를 바 없다. 독서의 빈부격차. 한쪽에서는 지나치다 싶게 읽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하더라도 읽는 것에 급급해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다음 책을 들추기에 바빠 체화할 여유가 없다. 책을 덮고 잠깐, 책의 뿌리에 가닿는 독서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책을 읽을 시간도, 글을 쓸 시간도, 사랑을 할 시간도 없이 늘 바쁘고, 그래서 피로를 달고 산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력과 실력을 쌓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쌓아야할까? 목표는 있지만 목적이 없는 삶은 고단하다. 고단한 삶에 사랑을, 시를 위한 기다림은 없다. 살고자 이토록 애를 쓰는데, 정작 삶이 없다.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한다지만 입시 앞에서 부모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다그치고 아이는 납득이 되지 않는 폭력적인 학습량에 지쳐간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가는 길이 정작 지금의 행복에서 멀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미래를 담보한 오늘을, 하루하루 빗금을 쳐가며 버텨낸다.  

몸과 지식은 성장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혜안은 성장하지 못한 채 시간을 채워서 어른이 되어버렸다. 준비없이 어른이 되어 다음 세대 역시 준비없이 어른이 되도록 방치한다. 어른의 부재.  

시인은 학교와 감옥과 공장과 병원이 같다고 말한다.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하며 일방적 지시에 따라야 한다. 이러한 수직적 관계에서 공감이 형성되기란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가 비단 이곳뿐일까. 현대인에게 있어 손익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관계란 거의 없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감정소모를 불러온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한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이 없는 위선은 위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이러한 결핍을 자각하고, 이입하고, 공감해야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  
 
독서와 글쓰기에서 시작한 글은 혼란하고 고된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인지를 담담하게 써내려갔다(오히려 읽고 있는 내가 더 격해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쩌면 살면서 가장 어려울지 모르는, 중용을 바탕으로 하는 소박함이다. 진실한 내면과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삶의 방식은 사실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뿌리없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이 쓴 문장처럼 우리, 사랑하듯 책도 읽어보고 침묵 속으로 침잠해 보자. 그리고 자신을 좀... 해방시켜 주자.

그야말로 '어른'과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대화하듯 책을 읽었다. 가장 먼저 배워야할 것은 나 자신이라 것. 그래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깊게 들어왔다. 모든 이들의 삶이 다행스럽기를, 그래서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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