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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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수스의 어머니 코르넬리아가 사망하고 카이피오까지 전장에서 죽고나자 드루스스와 카이피오의 아이들은 졸지에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드루수스와 카이피오가 남긴 막대한 유산 상속으로 적어도 경제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라 점이다. 드루수스의 동생 마메르쿠스가 아이들을 거두려고 했으나 아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포기하고 스카우루스에게 조언을 구한다. 스카우루스는 톨로사의 황금을 착복한 카이피오의 조카딸 세르빌리아 나이아 모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그들(딸 세르빌리아 나이아를 주양육자로 지정)에게 여섯 아이들의 양육자로 고용하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조건은 드루수스의 집에서 기거해야 하며 세르빌리아 나이아가 가장 어린 카토(세 살)가 무사히 성년이 될 때까지 미혼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 대신 그녀가 결혼할 나이가 늦어짐에 따라 지참금을 챙겨 주겠다는 것. 그리고 스카우루스는 본인의 나이를 감안해 정직한 마메르쿠스에게 자신이 죽고난 후 신탁 관리자 겸 유언 집행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 육십 대에 열일곱 살 아내를 맞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스카우루스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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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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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이토록 오랫동안 붙잡고 있기는 무척 오랜만이다. 1000여쪽에 가까운 분량 때문은 아니었다. 몇 년 전, 김숨 작가의 <한 명>을 읽을 때 도중에 책을 몇 번이나 덮었는지 모른다. <일광유년>을 읽으면서 그 무참함을 다시 한 번 느꼈더랬다.  








 
란 씨, 두 씨, 쓰마 씨의 세 성을 가진 주민들로만 구성된 마을 산싱촌은 바러우산맥의 깊은 주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언제인지 짐작할 수 없는 오래 전부터 산싱촌 사람들 대부분이 목구멍이 막히는 증상으로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삶보다는 죽음이 가까운 산싱촌 사람들에게 희망은 촌장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마흔 살이 된 촌장 쓰마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쓰마란이 태어나는 시점까지 3대에 걸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진행된다.산싱촌 사람들은 바깥세상과는 단절되다시피 자신들만의 시간에서, 그들의 땅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먹고 살며 목돈이 필요할 때면 교화원을 찾아가 피부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 작은 마을에서도 권력과 성애에 대한 욕망은 존재하며 연민과 질투에 의해 인생의 행로가 달라지기도 한다.   

 



 
산싱촌의 촌장들은 모두 주민들의 평균 수명 연장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최고의 사명이라고 믿는다. 쓰마샤오샤오는 유채밭에, 란바이수이는 흙에, 쓰마란은 링거수에 집착한다. 그들이 이것들에 집착하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일까? 여든 살 된 노인이 일평생 유채를 재료로 한 음식을 먹었다는 경험, 유채가 효과가 없자 유채를 심은 흙이 바뀌어야한다는 판단, 땅을 아무리 갈아 엎어도 소용이 없고 링거수 상류의 사람들이 장수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실 등이 그들을 생명 연장에 집착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란바이수이와 쓰마란은 마을과 다음 세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피부 매매, 매춘, 성상납 등을 직.간접적으로 강요할 뿐만 아니라 공사 도중 일어나는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러한 희생이 과연 공공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제된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희생과 불행을 제물삼아 키워진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  
 


이 세 사람ㅡ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 쓰마란ㅡ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권력욕이다. 바깥세상에서 보자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촌장이라는 지위를 탐하는데 거침이 없다. 결혼을 담보로 연인에게 거짓말을 시키며 매춘을 부탁하고, 동생에게 매춘을 집요하게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촌장의 자리를 앉은 즉시 독재적으로 변한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는 이 모든 행위가 마을을 우선한 대의이며, 전체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해야함을 강제한다. 이들의 주장에 진심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권력의 희열에 스스로 도취되었다고 보여지는 부분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예를 들면, 링인거 수로 공사 완공을 기념해 두바이가 쓴 '링인수가 생명을 더해주니, 쓰마란의 공덕이 끝이 없네'라는 문구가 말해준다. 어째서 란쓰스의 인육 장사로 수술을 받아 목숨을 부지하고 공사장에서 사지 멀쩡하게 살아돌아온 쓰마란의 공덕이란 말인가. 사망자, 부상자, 피부를 판 남자, 인육 장사를 한 여자들의 공덕은 다 어디에 있는가  
 


이 소설에서 애증이 얽혀있는 세 사람ㅡ란쓰스, 두주추이, 쓰마란ㅡ의 운명은 란쓰스가 강보에 싸여있을 때부터 시작됐다. 란쓰스가 쓰마란을 향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면 두주추이는 비록 늦게나마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쓰마란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두 여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매독으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란쓰스의 시신을 끌어안고 죽음을 맞이한 것은 그나마 마지막 양심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나는 이걸 도저히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소설은 거의 모든 내용이 참담하다. 기근이 계속되자 장애가 있는 자식을 고려장하듯 내다 버리고, 죽은 자식의 인육을 먹는다. 자식을 버리고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에 어미들은 정신줄을 놓고,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살아남은 어린 자식들은 누구에게 향해야할지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에 의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된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이미 인생의 절반을 산 그들을 기다리는 건 여지없는 가난의 대물림과 무지, 그리고 남자 아이들은 성년식을 치르듯 거쳐야 하는 피부 매매, 여자아이들은 마을에 급전이 필요할 때 강요당하는 인육 장사다. 
 


산싱촌 사람들의 목구멍 병에 대한 원인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유전적 요인인지 아니면 친족 결혼에 의한 돌연변이인지 알 수 없고, 원인을 모르니 당연히 치료법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외과적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에 대한 혜안은 소설의 종반부에 등장하는 촌장 두과이즈의 유언에 있다. 

 
881.
어려서부터 죽음을 알게 할 필요가 있어요. 죽으면 죽는 것이라는 걸, 볼이 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해야 해요. 평생 이 세상에 살면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마음 졸이는 일이 없게 해야 해요.

 



그들이 무게를 두어야했던 것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살아있는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 다음 세대에서는 적어도 피부를 팔지 않고 인육 장사를 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안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10년같이 보내야하는 삶의 충만함이어야했다. 두과이즈를 이은 다음 세대들의 촌장이 집착한 것은 삶이 아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목숨을 담보로 한 권력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 벽지의 산촌 마을을 통해 우리는 인간 세상을 볼 수 있다. 산싱촌의 무참함이 형태를 달리할 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하다. 소설의 마지막은 먹먹함을 더한다. 링인거 수로의 실패로 죽음을 택한 자들과 절망적인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이룬 과업에 만족하며 죽음을 맞이한 쓰마란과의 괴리, 그리고 대부분 가정에서 가장을 잃은 산싱촌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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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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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자본주의 시대의 결혼] 
 


 
아도르노에게 거짓말은 진실을 해치거나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보존하려 하는 위대하고 명예로운 인간의 능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이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 건너오면서 야만의 거짓말로 변화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약속을 하지만 이 약속이 언젠가는 취소되어 거짓말이 될 것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거짓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되었고, 수많은 거짓말들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오늘날 삶의 현상들이다. 거짓말을 하고 남은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는 거짓말의 부끄러움은 무력함에 대한 인식이면서 동시에 저항의 세포라고 얘기한다.  
 
​ ​ 
 

- 우리 사회에서 부끄러움조차 없어지면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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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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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차 
 
 


다른 사령관들보다 일찍 준비를 마친 폼페이우스 스트라보는 킹굴룸을 출발해 진격했고 전투 끝에 여전히 로마에 충성을 다하는 피케눔으로 후퇴해 장기 포위전에 대비했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폼페이우스 스트라보의 진격은 로마가 침략자라는 데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한편 술라의 예상대로 전장은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연이은 패배와 이탈리아 쪽으로 돌아서려는 부족들에 대한 소식이 전달되었다. 그런데 루푸스(동명이인)가 맡고 있는 로마 동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하면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처한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우유부단하다면 루틸리우스 루푸스는 무능했다. 심지어 보좌관으로 데려간 마리우스의 조언을 무시할 정도로 오만하기까지 했다. 그 오만함으로 본인의 목숨도 잃고 말았다. 루푸스가 무능했다면 카이피오는 탐욕스럽고 어리석었으며 그로인해 스스로 수명을 단축했다.
 
 
 
ㅡ 백전노장에 당시로서는 전투에 있어서 절대지존이라고 할 수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보좌관으로 대동하고도 어리석은 짓을 일삼는 루푸스. 어디에나 제 깜냥을 모르는 지휘관이 문제다. 제 무능으로 병사 4천 명이 단번에 목숨을 잃었는데 부관들 탓만 하고 있으니 그를 향한 마리우스의 비난이 부족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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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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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안트베르펜 항구를 다시 점령하면 연합군을 분산시키고 영국을 전쟁에서 불러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르덴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 독일의 장군들이 대부분 이 작전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지만 점점 기울어가는 전세를 회복시키기에 별다른 대안이 없기에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읽다보면 독일군 장교들은 끊임없이 이 작전을 철회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 가장 크고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아르덴 대공세, 벌지 전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벼랑 끝에서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을 안고 기습작전으로 시작한 독일군의 기세는 대단했으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젠하워의 빠른 대처와 고립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미군의 끈기는 히틀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르덴 대공세의 논란은 연합군이 이 공세를 눈치 챌 것인가 아니면 눈치 채지 못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독일군의 의도를 눈치 챌 만한 정보가 흩어져 있었는데도, 대개의 정보전 실패가 그렇듯이, 고급 장교들이 자신의 편견에 부합하지 않는 첩보들을 흘려들은 것이 문제였다.  결정적인 부분은 미 제1정보부의 딕슨 대령이 아이펠 지역으로 독일 병력이 집결 중이라는 사실과 독일의 항공부대가 동부 전선에서 서부 전선으로 이동했다는 점, 그리고 추가적인 정보를 얻어 보고했음에도 그의 상관은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를 묵살했다. 다 이긴 전쟁이라는 이른 승리감과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분별함이 화를 키웠다.  
 
 



이 전투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아이젠하워보다 팰튼이다. 다들 개인의 명성와 정치적 잇속을 계산하며 머뭇거리고 있을 때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전투를 이끌고 나갔던 팰튼이 없었다면 아이젠하워는 이 전투의 승부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군이 승리했어도 기간이 더 길어지고 그만큼 피해도 컸을 것이다(몽고메리는 사이사이 비호감).  


막강한 기갑 부대를 내세운 독일과 제공권을 장악한 미군. 전쟁 무기에는 문외한이 내가 읽기에도 독일군의 전차는 천하무적으로 느껴진다. 머릿속에서 미군이 바주카포를 들고다니는 동안 독일군이 최강의 전차를 목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다가 전투에 있어서 무기만 우월해서는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독일이 제공권을 놓친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이외에도 아르덴 대공세에서 사용된 세열수류탄, 백린수류탄 등의 무기를 살펴보면 어떻게 이런 무기를 사람이 사람한테 사용할 수 있는지, 인간이 일으킨 전쟁의 비인간적인 잔혹함이 참 무섭다.  


이 전투에서 군인들에게 가장 혹독했던 것은 사실 추위와 굶주림이다. 옷과 부속품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동사로 인한 괴사로 신체를 절단하고, 그것도 모자라 굶주린 채 얼어죽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이다. 고된 전투와 혹한의 날씨, 전우의 죽음은 군사들을 광기로 몰아넣었고, 포로와 민간인을 학살하는 데 이른다. 이는 독일군도 미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군인들은 추위와 죽음 중 어느 것이 더 두려웠을까.   
 


호랑이와 여우가 번갈아 가며 점령한 땅에서 죽어나가는 이는 민간인이다. 심지어 미군도 독일군도 벨기에인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여기저기에서 치이는 샌드백 꼴이다. 벨기에 민간인들은 군화 소리만으로도 미군과 독일군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독일과 프랑스의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나라의 아픔이다. 꽁꽁 얼어붙은 독일군 시신들을 모래주머니처럼 써먹고, 독일군 머리 위에서 포탄이 폭발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미군 병사. 전쟁과 폭력이 만들어낸 인간의 광기다.  
 


아르덴 대공세는 12월24일을 기점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독일의 구데리안 상급대장은 아르덴 대공세가 이미 실패했고 더 이상 작전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며 히틀러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렸다. 더구나 소련의 붉은 군대가 대대적인 동계 공세를 준비 중인 동부 전선이 가장 위험해지고 있었으나 히틀러가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요들 상급대장과 집단군 총사령관 힘러도 히틀러를 설득하기는 커녕 구데리안의 철수를 반대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그들은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아르덴 대공세의 결과로 벨기에에서 약 2500명의 민간인이, 룩셈부르크에서 500여명의 비전투 사망자가 발생했다. 농림과 삼림에 의존하던 아르덴의 경제는 치명타를 입었다. 5만 여 마리의 가축들은 모두 죽거나 독일군이 징발했고, 그나마 살아남은 가축들도 시신 썩은 물이나 백린탄에 의해 오염된 물을 먹고 폐사했다. 또한 독일이 북쪽 농촌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면서 룩셈부르크에도 기근이 닥쳤다. 가장 큰 문제는 연합군과 독일군이 묻은 10만개 이상의 지뢰였다. 해방기가 되면서 지뢰를 밟거나 폭발물을 가지고 놀다가 다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눈이 녹으면서 시신들이 빠르게 썩어들어가 악취가 진동했고, 전염병이 우려됐다.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샹블롱파멘의 서북쪽 숲의 나무에는 미군의 호된 포격으로 인해 지금까지 금속 파편이 박혀있어서 목재를 팔 수 없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굳이 상상이 필요없다. 
 


보네즈-말메디 교차로에서 사망한 시신에서는 이마, 관자놀이, 뒤통수 등 여러 곳에서 총상이 발견되었고,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시신도 있었다. 이것은 확인 사살을 했다는 흔적이다. 전쟁 범죄 재판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고,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냉전시대 초기에 다하우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은 모두 감형되어 1950년대에 석방되었다. 그들이 감옥에 머무른 기간은 고작 10여년이다. 저자는 아르덴 전투가 서부 전선에서 벌어진 어떤 전투보다 더 야만스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보니 이러한 평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전쟁 포로 살해와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은 인권말살로도 부족한 최악의 행태였다. 저자가 짚어낸 특징 중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군사령관들이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포격이나 폭격이, 더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백린탄은 무차별적인 살상 뿐만 아니라 전후 생태계 오염까지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 수뇌부가 아르덴 대공세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연합군 병사들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더 큰 실수는 독일군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인식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사를 이성적으로 읽지 못하는 것이 나의 전쟁사 읽기의 한계다. 읽는내내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 전투에서 죽어나가는 수많은 병사들과 민간인들의 목숨의 대가는 누가 보상할 것이며(보상이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무분별하고 참혹하게 가해진 만행에서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이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풍부한 사진과 이해하기 쉬운 간결하고 구체적인 지도다. 무엇보다 지역에 편성된 부대의 명칭을 기입해 독자가 읽으면서 지도와 함께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되었다(전쟁사 책을 나름 읽는다고 읽는데도 나는 여전히 군대 단위를 모르겠다. 다만 부대 명칭을 통해 짐작만 할 뿐).  


통사와는 다르게 사건을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저자가 글을 위트있게 써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그리고 전쟁 세대도 아닌 내가 벨기에인들의 입장에 이입하고, 독일군의 소년병들에게 마음이 쓰였던 까닭은 비록 책과 영상과 조부모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으로만 접한 역사이지만 우리 땅에서 전쟁을 겪은 나라의 시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냉정한 분석과는 거리가 먼 독서였지만 이렇게 다른 이들의 삶을 또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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