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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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p214
그들은 어른의 삶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나는 내 삶에 의미가 있다는 희미한 분위기라도 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콜럼비아대학 순수예술 석사과정에 있는 대학원생 '나'는 문예창작 합평 수업에서 교수와 동료들에게 혹평을 받던 중 유일하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지지해주는 빌리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의 합평 제출작을 다시 꼼꼼히 읽어본 후 빌리의 재능을 동경한다. 이 일을 계기로 급속히 가까워진 두 사람. '나'는 바텐더로 일하며 바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빌리에게 자신의 집에서 동거를 제안하고, 거절하는 빌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이상적일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동거는 점점 '나'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을 띠어 가고 있었다. 









소설은 중년의 '나'가 1996년부터 97년에 이르기까지 채 2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폭풍처럼 지나온 성장통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인 소설 초반부에 나는 이미 이 소설에 훅 이입되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이입되어 있던 것이겠지만. 어느 집단 혹은 조직에 한 명 쯤은 있을듯한 인물 '나'는 그 시절 내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심지어 그가 회상하는 그 시기에 나와 주인공의 나이도 비슷하다). 상류층이라고 하기에는 경제 능력이 부족하고, 그러나 가난하다고 할 수 없는, 경제적 이점과 부모의 적당한 관심을 받고 자란, 한마디로 큰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부류에 속해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집단이든 제대로 속하지 않은 채 경계에 머무르는 불청객을 자처하고 남들에게 속내를 잘 내보이지 않으며 적당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나는 주인공 화자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가 그러한 모습의 스스로를 불편해 한다면, 나는 자발적이었다는 차이는 있지만.  





작가라면 인생에 있어 결핍과 고통이 따라와야 하고 그로인해 남다른 예술적 감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나'에게 빌리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작가 지망생이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중서부 소도시 출신으로서 바텐더로 일하며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고 심지어 남다른 재능까지 갖춘 빌리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모든 것을 양보하고 배려하면 영혼의 동반자 관계를 영원히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십 년이 넘는 성장 배경의 차이는 불과 몇 달 만에 두 사람의 사이를 벌려놓는다.  


비록 대고모의 아파트를 불법 전대로 사용하고 있으나 제법 큰 평수의 아파트에 기거하고 학비와 생활비는 아버지로부터 지원받아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나'는, 지적 수준과 예술적 교양을 갖추고 있고 민주당을 지지하며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스스로 생계와 학비를 모두 책임쳐야하고 '나'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 있었으나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사교성, 그리고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가진 빌리는 공화당을 지지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며 적당한 처세술을 갖춘, 마초적 성향이 강한 남성이다.    


자기에게 없는 작가적 요건을 두루 갖췄다고 여긴 빌리와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긋난다. 여러 면에서 비교할수록 커져가는 좌절감과 무엇보다 습작에서 오는 열패감은 '나'의 일탈을 부추기며 일상을 흔드는 지경에 이른다. 사과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던 작은 사건이 그 둘을 갈라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나'는 빌리가 왜 그토록 싸늘해졌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차하리만치 빌리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스스로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만다.  




이처럼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단지 작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이들의 성장통에 멈추지 않는다. 소도시의 가난한 출신으로서 상류층을 비난하면서도 보수당을 지지하며 사회적 약자층을 혐오하는 빌리의 모습은 우리나라 선거철에서도 볼 수 있다. 사회 기득권층이 주류를 이루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경제적 약자들이 다수를 이룬다. 진보당이라고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복지에 대해 언급하면 세금 인상과 포퓰리즘을 운운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계층 또한 이들이다. 부동산세나 가산세 등 자신들에게 전혀 해당 사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빌리가 강한 남성성을 과시하듯 내세우며 소수자들을 비하하고, 더불어 섬세하고 예민한 '나'를 조롱거리로 삼으며 냉소를 던지는 모습 역시 우리 사회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타고난 사교성과 외모와 재능으로 빌리 역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나'의 말은 어떤가? 심지어 '나'가 자신의 부족하지 않은 경제력에 대해 예술가로서 죄책감을 가졌다면, 빌리는 자신의 타고난 이점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맹점이기도 하다. 이렇듯 소설은 두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모순을 담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소설의 초반부였다. 스무 쪽이 넘어가도록 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여성이라고 단정했다(그래서 더 이입했었던 것이지도 모르고). 이 무슨 고정관념인가. 두 주인공이 남성인 소설에서 감정선을 이토록 섬세하고 면밀하게 다룬 작품을 그동안 만나본 적이 있었나싶다.  



그렇다면 소설의 결말은 어떨까. 스물네 살의 '나'는 자신들의 덧없는 청춘을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두 사람은 격동같았던 두 해의 청춘을 그리워할까? 책을 덮은 후 여운이 꽤 오랫동안 남아있었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책 표지를 보면 그 쓸쓸함이 잔물결처럼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한 치의 아쉬움이 없는 소설이었다. 






♤ 엘리서포터즈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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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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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독 당시 정서적으로 힘들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비교적 초기작에 해당하는 이 작품을 다시 읽음으로써 내가 기억하는 하루키를 만나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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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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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소멸과 기억의 상실이 당연한 세상(섬)에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라는 아이러니로 시작한다. 소멸하는 대상은 저절로 사라지거나 공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소멸의 순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스스로 소멸의 대상을 버린다. 그것이 신체의 일부일지라도. 기억 사냥을 하는 비밀 경찰은 혹시라도 남아있을 소멸의 흔적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도 사냥한다. 그들이 기억 사냥을 하는 이유는 지배층 입장에서 모든 것이 차례대로 사라지는 이 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불상사이자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소멸되는 즉시 기억도 사라진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소멸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페리 할아버지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무언가가 소멸되고 더불어 추억과 기억까지 사라지면서 마음의 밀도도 낮아졌기에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말에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소멸되지 않았으니 어머니는 기억할 수 있지만,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물건은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 서글픔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니... .


어딘가 석연치 않지만 소멸이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고 받아들이는 '나'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는 출판사 편집자 R의 고백이다. 어머니처럼 '소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인 R을 도와주기로 결심한 '나'는 아버지의 서고에 은신처를 마련해 주고, 이때 도움을 주었던 페리 할아버지를 포함한 세 사람은 끈끈한 연대를 갖게 된다.


사진을 소멸하려고 하는 '나'를 말리는 R. 그는 '나'에게 기억에 구멍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진을 태우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사진을 봐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립지도, 가슴이 욱신거리도 않다고 대답하면서 사진은 그냥 종이 한 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사진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다. 그런데 사진에 깃든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나'의 말처럼 사진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물의 소멸이 아닌 추억의 소멸을 더 두려워하는 것일 테고.


어느날 비밀 경찰이 거칠게 가택 수색을 마치고 아무 성과없이 돌아간 뒤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이 두려움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무슨 감정인지 본인도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 R은 마음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지진으로 인해 어머니가 남겨 놓은 물건들을 찾아낸 '나'. 이 물건들로 인해 소멸된 것들을 잠시 기억해내는 듯 하지만 그때 뿐이다. 자연스럽게 희미해지는 망각은 소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멸은 기억을 뿌리째 뽑아버린다면, 기억은 여운이 남고 설령 없어지더라도 마음이 당시의 감정을 간직한다. 페리 할아버지가 R이 선물한 오르골의 태엽을 감을 때 마다 기대한 새로운 발견이란, 이런 여운이 담긴 마음과 그 마음에 대한 기억의 끈이 아니었을까.





이 소설의 특이점 하나는 액자식 구성이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마치 '나'가 쓰는 소설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듯 두 주인공은 같은 선상에 위치해 있다. '나'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인 목소리를 잃어가는 타자수는 유일한 소통의 도구인 타자기가 망가진다. 타자 선생은 남은 타자기가 쌓여 있는 교회의 기계실로 그녀를 데려가면서, 메모지와 펜과 고장난 타자기는 무시한 채 그녀에게 새로운 타자기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타자수는 자신의 고장난 타자기가 내내 마음이 쓰이고, 타자기를 고쳐달라는 몸짓을 하지만, 남자는 그녀의 타자기가 고장난 게 아니라고, 네 목소리는 몽땅 이 타자기에 갇혀있으며 그 타자기는 역할을 다하고 봉인된 것이라고, 그래서 그곳은 목소리의 무덤이며 오늘로 네 목소리도 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진 무서운 그의 말. "너는 말할 필요도, 목소리를 낼 필요도 없으며 드디어 넌 나만의 것이 되었다."


'나'가 쓴 소설에서는 목소리가 있는 한 통제는 불가능함을 얘기한다. 목소리도, 타자기도 잃은 채 시계탑에 갇힌 타자수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해 깜짝 놀란다. 이후 타자 선생은 그녀를 제 마음대로 다루고, 타자수는 자신을 지배하는 타자 선생의 목소리만 인지할 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그녀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닌 타자 선생이다. 이는 존재의 퇴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어느날 갇혀 있는 기계실 문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안에 있는 타자수는 나가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갈등한다. 그러나 바깥 세상으로 나갈 용기가 없는 그녀는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돌아가기만을 바란다. 또다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뺏으려는 타자 선생이 시계탑으로 찾아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이에 타자수는 그의 외면을 두려워한다. 목소리를 잃는 다는 것은 복종과 같은 의미다. 작가가 정작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 액자 소설에 담겨있다.


'나'는 소설이 소멸된 후 자신이 쓴 주인공처럼 이직을 하게 되는데, 바로 타자수다. 그러나 소설이 소멸됨으로써 정작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이 타자수였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언어와 문자가 소멸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구심도 들기 전에 더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절망적 장치로 사용된 아이러니가 마지막에서는 희망으로 전환한다. 살아남은 '기억을 잃지 않는 자들'의 귀환,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다.





이 소설은 우선 기존의 다양한 문학 작품들과 역사적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그리고 유대인을 숨겨주거나 탈출을 도운 시민들을 학살했던 나치와 은신처에서 소멸된 기억과 오른손을 부여잡으며 원고를 쓰는 주인공을 통해 <안네의 일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섬'이라는 제한적 공간은 조지 오웰의 <1984>를, 도서관과 책을 불태우고 강압적으로 기억을 제어하는 지배층은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여타 디스토피아 소설들과 다른 이 소설의 강점은 서정성이다. 황폐하고 거칠어야할 것 같은 공간을 바다, 산, 강, 꽃, 눈 등 자연의 소소한 아름다움으로 채웠다. 그리고 기존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들이 짧게나마 디스토피아 이전의 시절을 그렸다면, 이 섬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래서 소멸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소멸이 새로운 희망이 된 걸까. 마치 태초에 생명체가 처음 생겨나듯. 소설의 마지막은 희망을 말하는데, 독자의 감정은 더없이 슬프다.
  


이 소설에서 은신처에 숨은 R과 '나'가 벽을 사이에 두고 눈이 오는 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부분과 페리 할아버지의 생일상에 앉아서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두 장면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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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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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갈수록 섬은 무겁고 탁한 공기에 감싸였고, 기억 사냥의 양상은 점점 과격해져 갔다. 이제는 미리 출두 명령조차 내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은신처를 제공한 사람들까지 잡아갔다. 멀든 가깝든 누군가가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는 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었다. 섬사람들은 뭔가를, 누군가를 잃는 것에 충분히 익숙하다. '나'는 자신의 소설을 출판해주는 편집자 'R'이 비밀 경찰에게 끌려갈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페리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한다. 두 사람은 집안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나'의 아버지의 서고를 은신처로 결정하고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비밀리에 공사를 마친 후 R을 집으로 데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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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소환 대상자라는 사실을 말하는 R, 그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나'. 그들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신뢰일까, 직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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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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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된 '나'에게는 참고문헌이나 취재 메모가 필요없다. 오로지 상상에 기대어 글을 쓴다. 십오 년 전, '나'의 어머니가 비밀경찰에게 끌려간 것을 시작으로 기억 사냥은 시작되었다. 어머니처럼 기억을 잃지 않는 특수한 존재, 즉 소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드러나면 비밀경찰은 그들을 모조리 연행하고, 그 방식은 점점 더 거칠고 강압적으로 변해갔다. 어느날 밤, '나'를 은밀하게 찾아온 이누이 교수와 그의 가족. 유전자 해독 연구소로부터 호출장을 받은 그들은 연구소 대신 은신처로 향할 계획이고, '나'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조각품 다섯 개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이누이 씨 가족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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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으로 드러나지 소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찰 당한다는 것인데, 참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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