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송기정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자크의 작품을 좋아하면서 미처 발자크의 삶을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발자크를 30년 동안 연구했다는 저자를 통해 발자크를 경험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 애런데일은 임신 중에 혹은 출생 직후에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태어난 마지막 세대다. 같은 세대의 자폐인들은 자신들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정상'인으로 살 수 있었을 것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자폐인 루의 시선에서 서술하는데, 그가 바라보는 정상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의 시선을 하나하나 좇다보면 독자는 어느새 그들에게서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일부분을 볼 수 있다.  



포넘 박사는 탁월한 지적 수준을 갖고 있는 루(자폐인)가 읽을 줄 안다(문해력)는 사실을 모르고, 그가 하는 말은 무의미하고 기계적이며 뜻도 모른 채 중얼거리는 입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루의 정신과 주치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루에게는 '생각'이 없다고 여기니까. 진 크렌쇼는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을 부정적인 직원들로 치부하고, 직원의 사고와 불행에 공감하지 못하며, 타인의 인생을 제물삼아 제 욕망만 채우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폐인에게 사랑도 성생활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돈은 마저리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도, 펜싱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심지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모두 루와 같은 자폐인 때문이라고 분노하며 테러를 감행한다. 사람은 처한  위치나 신분에 따라 다르게 불려진다. 그러나 '정상'인들의 눈에 자폐인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그냥 자폐인이다. 이들의 모습은 소수자에 대한 지원을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현재의 사람들과 같다.  



그렇다면 루의 편에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톰과 루시아와 마저리, 회사에서 자폐인의 입장을 대변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올드린은 어떨까? 루는 크렌쇼와 돈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어디를 향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정말 온전히 이타심에 입각해 불의와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분노인지를. 물론 그들에 대한 선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루에게 애정이 있음은 분명하다.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감정에 완벽하게 이입하기 힘들기도 하고. 어쩌면 루가 정상인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일지 모르겠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이입과 관용적 이치. 그렇지만 우리가 제3자를 향한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이타심인지를 들여다 볼 필요는 있다. 과연 그 분노가 피해자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잠재적 피해자 혹은 간접적 피해자인 자신을 위한 것인지.  
 



작가는 의도적으로 '정상'인이라는 용어와 루의 자문을 통해 독자에게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등장인물 들에 의해 자폐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따라가보니 이는 특정 대상이 아닌 살아 있는 모든 인간이 직면한 고민들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 생활의 연속, 소통과 공감과 이해와 상대에 대한 측은지심의 부재, 실패의 두려움에 의한 도피,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연애, 선택의 기로  등 우리 모두가 삶의 과정에서 겪는 문제이자 굴곡이다.  



루는 자신이,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듯, 돈이 비록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두뇌에 칩을 넣어 사회 복귀 훈련을 받은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돈이 공식적인 장애인은 아니지만, 그가 더 장애를 갖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정상화 수술'은 자폐인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루는 돈의 테러 사건을 겪으면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깨닫고, 처음으로 자신의 집에 직장 동료를 초대한다. 그리고 회사와의 협상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에서 스스로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이렇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성장하는 과정 역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닐까.



캐머런은 크렌쇼가 강요하는 수술을 받겠다고 말한다. 편견어린 시선과 정기적인 정신과 치료,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있는 자기자극적 행동이 자폐인에게만 있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는 고정관념, 익숙해서 서로를 잘 이해하지만 공감력이 부족한 자폐인 사회, 안정성 증명서 없이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정상인으로 살고 싶어서. 그것이 비록 나의 본질과 다른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정상화 수술'로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폐증은 자신의 일부라는 루의 말에서 과연 장애의 정체성에 대해 물을 수 밖에 없다.



수술의 결정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다만 '정상'인이든 아니든 어디에도 완벽한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에서 '정상'의 기준은 늘 다수의 기준이었으며 자폐인의 약점이듯 말하는 공감 능력은, '정상'인들 안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크렌쇼 씨를 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생각만큼 예측 가능하지 않은, 변수의 연속이지 않은가. 이 소설의 매력은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심리적 함정을 잘 간파하고 있다. 내가 어느 함정의 구덩이에 빠져있는지 각성하는 것도 읽는 묘미가 될 터다.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극단주의 집단이 어떻게 지지자를 동원하고 어떻게 취약한 개인을 본인들의 네트워크로 유인하는지, 그들의 비전은 무엇이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며, 그들이 가진 사회적 역동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진화하는지 알기 위해 스스로 고양이와 쥐가 되어 10여개의 극단주의 집단에 잠입, 합류했다. 그래서 극단주의 전략과 전술 등 애초에 알고자 했던 바 뿐만 아니라 극단주의자들의 인간적 면모와 저자 본인의 취약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극단주의 운동 집단끼리의 공통점은 별로 없지만 작동 방식은 비슷하다. 집단의 리더들은 안전한 사회적 보호막을 만들어 더 넓은 세계에서 반사회적 행동을 장려하고, 집단 구성원들은 반反세계화 이념을 세계화하며, 현대의 기술을 이용해 반현대적 비전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극단주의 운동이 갖은 숨겨진 근원에 대해 말한다.   







 




온라인 에코체임버의 등장은 극단주의 운동이 신입 회원을 세뇌시키고 집단 의존성과 집단 가치를 강화하고 내면화시키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메릴랜드대학교의 연구원들이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2016년 한 해 동안 발생한 모든 급진화 사례의 90퍼센트가 온라인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영향을 받았음을 발견했다. 소셜미디어는 극단주의자들의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급진화를 가속화했다.  


저자가 어느 집단에 가입하기 위한 심사는 예상보다 구체화, 조직화, 체계화 되어 있었다. 극단주의 커뮤니티는 내가 책을 읽기 전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극단주의자들에 대해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인정욕구와 자존감의 부재, 외로움과 불안이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다는 것. 그래서 음모론자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이러한 주장들이 정말 먹힌다고?' 싶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즉흥적인 변화에 가장 취약한 것은 사회기반시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정신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처음 의도는 좋았으나 종단에는 악의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우리가 신기술이라고 칭송하며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전쟁에서 파생됐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사이버 혁신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극단주의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극단주의자들은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네이티브를 급진화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협력하고 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하나가 되고 틈새 시장을 공략해 지지자들을 끌어모은다. 점점 더 진화된 방식으로 신입 회원을 모으고, 세뇌하고, 사회화시킨다. 그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사이버 세상 곳곳에 존재하며, 우리는 연령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들의 광고선전물을 실어나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딥페이크'에 대한 단어의 뜻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읽다보니 정말 우려되는 부분이 컸다. 이제는 활자화 된 거짓 기사를 넘어 화면을 바꾸고 연설을 수정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한 비정부기구는 자사의 텍스트 적용 딥페이크 기술을 오용을 염려해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극단주의의 파급은 충분히 커질 수 있으며 집단주의를 가속화한다. 저자는 근래의 사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를 든다. 우리는 여러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친구맺기를 하고 다름을 공유할 것 같지만, 실은 알고리즘 덕분(?)에 자신의 취향이나 정치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더 학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알면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온라인 컨텐츠에 대한 과잉 검열과 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등이라는 딜레마에 부딪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허점을 극단주의자들은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많은 사회기술적 문제가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높은 수준의 외로움과 중독, 집단주의는 신기술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화면 안에서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고, 연출된 셀카로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과 경쟁을 하고,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래같은 존재감과 자존감으로 만족하고, 어느 순간부터 화면 속과 현실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최첨단 기술과 소셜미디어 사용에 능한 극단주의 운동과 싸우려면 그 원인을 사회나 기술 중 하나에서 찾으면 안 된다고, 최근의 기술 혁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시대성과 약점, 욕망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사회와 기술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지해왔던 내용들이었지만 극단주의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이 책이 도움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그들은 의외로,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아르누보 예술을 이끈 선구자의 생애와 작품
로잘린드 오르미스턴 지음, 김경애 옮김 / 씨네21북스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체코 출신의 알폰스 무하는 오늘날 아르누보의 창시자이자 순수미술과 상업주의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체코 미술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역사화 연작 <슬라브 서사시>를 비롯해 상업 광고 포스터와 장식(상업)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한 예술가다. 1860년 체코 서부 보헤미안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나 20여년간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한 후 프라하에서숨을 거둔 무하의 삶은 그야말로 '무하 스타일'로 대변한다. 그리고 어린시절 고향 모라비아의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투쟁을 목격하면서 정서적으로 모라비아 전통문화와 슬라브 애국주의, 종교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성향은 후일 <슬라스 서사시>를 그리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기어다니면서부터 목에 연필을 걸고 다녔다는 무하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보이는 것은 캔버스요, 손에 잡히는 것이 그림 도구였으며, 할머니가 그의 선천적 재능을 지지했다고 하니 그는 화가가 될 운명이었던가 보다. 학교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해 학교를 떠난 무하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사무직 공무원으로 일하게 되었으나 열아홉 살에 지방법원을 그만두고, 우스티 나트 오를리치에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푼돈을 받았는데, 무하는 그 시기에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비록 한때일지언정 살면서 그러한 경험이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무하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운명을 믿었던 무하는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후원 덕분에 불족함 없이 미술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스물아홉 살 되는 해, 후원자는 배움에만 치중하고 있는 무하를 자극하기 위해 후원을 중단했고, 이로인해 그는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돈 걱정 없는 학생에서 가난한 예술가로 추락한 처지가 되었다. 삽화 의뢰로 기본적인 생활비를 해결한 무하는 친구들의 도움과 마담 샬롯과의 만남으로 인맥을 확장해갔고, 이는 그에게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1891년 3월, 아르맹 콜랭 출판사를 통해 무하의 삽화가 본격적으로 파리에 등장한다.  학계와 대중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로리외가 인쇄한 달력의 석판화 시리즈를 그리는데, 12개 별자리 삽화는 르네상스에 초점을 두고 풍부한 우화적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이 발간된 후 각계 및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는데, 이로써 무하는 삽화가로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됨과 동시에 '무하 스타일'을 각인시킨다. 이후 포스터 삽화를 시작으로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한 무하의 명성은 점점 높아졌고 '무하 스타일'은 그 자체로 브랜드명이 됐다.









1890년대는 색 재현의 발전으로 소비자 대상 출판물이 크게 증가했고, 아르누보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 덕분에 예술가들이 만든 석판 인쇄물이 대중적인 출판물 자주 등장했다. 다색 석판인쇄 분야가 발전하면서 포스터 재생산은 광고 등 대중매체의 주요 형태가 되었고, 이로인해 예술가에 대한 대중 인식의 폭을 넓힐수 있었다. 이 즈음에 무하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무하의 감각과 시대가 잘 맞아떨어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운도 따랐다는 생각이 든다.  



포스터를 비롯한 무하의 작품들을 보면 단순히 아름답다거나 화려하게 그려낸 것이 아니라 작품의 성격이나 용도에 따라, 인물에 대한 상징적인 것들, 그리고 그의 재치와 위트, 센스가 그림 안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1896년 <동백꽃 여인> 포스터의 경우 여주인공의 연약함, 슬픔, 아픔을 인물 뿐만이 아니라 포스터 상단에 가시로 뒤엉킨 두 개의 심장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이 포스터는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무척 아끼는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무하의 포스터를 보면 예술을 상업성에 제대로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무하가 추구하는 상징주의와 신비주의 등이 그의 그림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공연 포스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샴페인, 제과, 식품, 담배 등 상품 홍보 및 포장용 그림, 달력, 엽서 등 다양한 소모품들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안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한 빨간색, 금색, 갈색을 주로 사용하는 그의 그림은 화려함과 고풍스러움을 모두 보여주는데, 언뜻 그의 화려함은 클림트를 연상시키곤하지만 클림트의 그림보다는 명암이 짙고 친근함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사라 베르나르의 50세 생일에 그린 기념 포스터가 그렇다.  
 









저자는 무하가 운명을 믿었다고 했는데, 그의 생애를 따라가다보니 그가 믿은 건 자기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해냈고,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공산정권의 억압에서도 무하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이 투쟁했다는 사실과 현재에도 체코 곳곳에 '무하 스타일'이 존재하고 있음은 이런저런 논란과 관계없이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방증한다.  




이 책 최고의 장점은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작품 세계,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비하인드 스토리 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무하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1893년부터 1903년까지 한 작품 한 작품, 마치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그림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알폰스 무하를 애정하는 독자라면 더할나위 없는 책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를 떠나 힘겹게 터를 닦아 40년째 살아온 콜로니 3245.12를 떠나 이주하라고 통보를 받은 개척민들. 그들은 심스 컴퍼니의 피고용인으로서 사업권을 잃은 컴퍼니가 정착민들에게 떠나라고 하면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칠순의 오필리아가 늙어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이주비용을 대지 않겠다는 컴퍼니. 노령으로 공식적인 직업은 없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살림 정도, 더이상 출산을 할 수 었으니 노동력을 생산해 내지도 못하는 오필리아가 컴퍼니 입장에서는 무쓸모 존재다. 오필리아는 몰래 콜로니에 남기로 결심한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시대가 요구하는 젊음, 생산성, 효율성, 남성성이 강조된 강한 힘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인물로 사회 구성원으로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 늙은 여성이다. 이렇게 보잘 것 없다고 여겼던 인물이 자유와 고독을 향해 과감한 모험을 단행한다. 컴퍼니에 의해 콜로니 생존인력을 전부 소개疏開시킨 행성에 홀로 남은 오필리아. 일생을 통틀어 처음 혼자가 된 그녀는 자신이 만든 비즈와 망토만을 두른 채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비어 있는 집들과 센터, 창고 등을 탐색하며 혼자만의 즐거움을 느낀다. 일흔의 나이에 처음 가져 본 자유. 오필리아의 일탈이 없었다면 평생동안 알지 못했을 그 자유를, 또다른 행성으로 강제 이주당한 이주민들은 죽을 때까지 느껴보지 못할 것이다. 규정을 어기지 않는 한. 어쩌면 '자유'라는 단어조차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오필리아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성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해왔다. 개척민 1세대로서 경험을 나누고, 갈등을 중재하며, 교육과 돌봄의 역량을 발휘하지만 이를 가치있게 여기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러한 오필리아의 능력은 괴동물이라 불리는 외계생명체의 등장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또다른 이주민의 셔틀을 파괴하고 외모가 다른 괴동물의 출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오필리아는 그들을 적敵의 위치에 놓지 않고 일단 대화를 시도한다. 이는 소설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조사단(학자)들이 외계생명체를 연구 대상으로만 지정하는 것과도 다르다. 오필리아는 이후 괴동물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기술을 나누며, 출산과 갓 태어난 괴동물을 돌본다. 이러한 능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지지하는 존재는 인간이 아닌 외계생명체다. 
 


그리고 오필리아가 괴동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는 것처럼 괴동물 역시 오필리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교감을 통해 알아챈다. 이는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 조사단에게 이질감을 느끼면서, 인간이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괴동물보다도 하지 않는다고 씁쓸해 하는 오필리아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인간과 괴동물들 간에 발생한 갈등의 원인을 찾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를 중재하는 역할은 깊은 혜안과 연륜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노령의 오필리아다. 현재에도 고령화 시대를 걱정하며 노인들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노령 세대의 역할에 관심을 두는 정책은 거의 전무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우주선도 만들 수 있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무한 경쟁, 연애와 위로도 SNS로 가능한 세상에서 정서적 돌봄이나 연륜에 의지한 혜안이 폄하된지는 이미 오래다. 
 



자연의 순리대로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을 하며 살생을 하는 괴동물과 금전적 손익을 따지며 개척민의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인간들. 일차원적인 비교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돌이켜보면 경제적 식민 시대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 세계의 상황과 크게 다르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조사단 사람들이 괴동물의 사회 조직에서의 연대나 관계보다는 어떤 계급 구조를 가졌는지에 관심을 갖고, 지적 수준이 낮은 자생종의 둥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여기며, 파괴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술을 괴동물과 나누지 않겠다는 지구인, 그리고 오필리아가 어린시절 자신의 배움의 열의와 배우는 속도가 빠르자 화를 냈던 부모님을 떠올리면서 괴동물에게 어린 자신을, 지금의 자신에게 괴동물을 대입시키는 모습은, 같은 선상에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괴동물들 사회에서 둥지수호자는 새끼들이 모든 것에 관해 최대한 많이 배우기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기를 바란다. 나쁜 둥지수호자는 새끼들이 계속 같은 것에 만족하게 만들어 그들이 안온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필리아는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부모들이 나쁜 둥지수호자였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열의를 복종이라는 틀에 가둬놓고 관습에 맞춰진 삶을 살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다. 대다수의 인간은 나쁜 둥지수호자인 셈이다.  
 



필요와 불필요, 쓸모와 무쓸모, 자격과 무자격,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무능과 유능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정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각종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정말 괜찮은 것인가? 이해와 존중이 결핍된 사회에서 우리가 이루려는 것, 그리고 가야할 방향을 '늙은 여자' 오필리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 출판사 지원도서,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