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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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이자 자연주의자인 저자가 새를 중심으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야생동물, 곤충, 균류, 일식 등의 자연현상 들을 관찰하거나 혹은 일상에서의 대면을 통한 사유를 담은 에세이다. 그는 서문에서 문학과 과학의 역할과 그에 대한 바람과 기대를 언급한다.  

 
저자는 과학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은 역사와 문화와 사회의 영향을 받아왔고, 우리 인간은 항상 자연 세계를 인간의 거울로 봐왔음을, 또한 이 지구가 인간만이 관련된 세상이 아니며 유일한 구성원이 아님을 당부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집이란 단순히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내면에 품은 공간이다 (p17)'. 이 말은 새의 둥지를 보면서 저자가 한 말인데, 읽어놓고 보니 인간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house를 소유하기 위해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이며 살고 있지만, home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짝 고민해봤다(무겁게 읽을 내용은 아니므로 살짝). 내 명의의 house를 사기 위해 home이 망가지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책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내용들이 있었다.  
 


하나, 1948년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건강의 정의는 '단순히 질병이나 병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의 상태'다. 그런데 '완전한 안녕'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저자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주의에 더 가까운 표현 방식이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 이와 같은 완벽함은 인간의 본질이 될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가 정의한 건강은 그야말로 '바람' 혹은 '지향'이 아닐까.  

 
둘, 저자가 버섯(균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지렁이 관련한 책들이 떠올랐다. 균류가 수분과 영양분, 미네랄을 순환하지 않는다면 숲은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에서 지렁이와 아주 닮았다.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 진부한 얘기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 할 일을 하는 존재들을 우리는 자주, 그것도 아주 자주 잊는다. 작년 겨울, 예기치 않은 폭설이 새벽에 쏟아졌는데, 새벽 서너시쯤 윙~ 소리가 들렸다(원래 그 시각에는 더 잘 들린다). 경비 아저씨와 관리실 당직 직원이 눈을 치우는 소리. 날이 밝아 출근하는 이들은 이걸 당연하게 여기겠지...하는 마음이 들었더랬다. 누군가의 노고가 나의 평안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셋, 저자가 묵었던 인도 호텔방에 비둘기 한 쌍의 둥지가 있었단다. 호텔은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객실 관리인은 비둘기가 만들어 놓은 상태를 매일 정리하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 이상은 하지 않았다는데, 저자는 비둘기 둥지를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았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몇 년 전에 말레이시아 섬의 리조트에서 묵을 때 욕실의 벽을 타고 기어다니는 도마뱀을 보고 얼음! 원래 그런거냐고 직원한테 물었더니, 원래 그렇다고. ㅎㅎ 일주일, "잘 지내보세"했다만 들어갈 때마다 두리번 거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저자였다면 방을 바꿔달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넷, 저자는 어떤 동물이 어디에 산다는 것을 다 알고 볼 수 있는 것보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 자체가 더 좋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관찰하고 알아야 하는 인간의 호기심 덕분에 인류는 발전을 거듭했다지만, 우리는 왜 다 알려고 할까. 저자가 위큰 습지를 답사하면서 이를 더 절감했다는데, 이 대목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얘기는 뒤에 나오는 '위성추적장치 꼬리표'와 이어진다. 저자는 현재 동물들이 점차 과학 연구자에 필요한 대리자일 뿐만 아니라 과학 연구 장비 자체로 간주되기도 한다면서, 드론에 비유한다. 인류는 마치 지구의 절대자인 양, 위력을 과시하며 지구 전체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간섭한다고 일갈한다.   
  
 


저자가 열 살 무렵에 쓴 에세이에서 반려동물로 수달을 키우고 싶다고 썼는데, 전제 조건이 '그 수달이 행복하다면'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수달이 행복한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는 의견에 어린 저자가 몹시 화를 냈다는 경험을 읽다가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피터 싱어가 제레미 벤담의 말을 빌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유무'에 따라 평등한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는지를 핵심으로 꼽은 사실이 떠올랐다. 저자의 유년 시절 선생과 제레미 벤덤의 말을 곰곰 생각해 보면 고통이든 행복이든 그것 역시 인간의 기준에 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동.식물의 존재 여부와 행복을 인간 기준에서 재단하는 것부터 이미 평등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우리는 나무가 절대 불변이라 여기지만 숲은 변화의 공간이다. 아마 가끔이라도 산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콕콕 짚어 찾아낼 수 없지만, 산은 갈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숨을 쉬고 있음을 증명한다. 동물에게 삶이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다. 어차피 인간은 동물이 될 수 없으므로. 다만 상상을 통한 이입의 과정은 중요하다. 상상은 관심을 불러오고, 관심은 깊이 있는 사유를 불러온다. 
 


저자는 고층 건물 및 인공 조명으로 인해 죽음을 담보하는 통행료를 지불하는 명금류,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길을 내어 발생하는 로드킬, 숲이 사라져 도시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야생 동물들의 피해를 언급하며, 동물을 인간이 의도하는 특정 의미로 담보하는 행위에서 벗어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로 기술하고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 인간에게 인간 자체의 한계를 재고하게 만드는 존재가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와 숙고, 그리고 새들의 이동을 통해 사회 현상을 고찰함과 동시에 자연을 통해 스스로의 삶의 방식을 반추하고 성찰한다
  


한밤중에도 작정하면 대낮처럼 밝은 빛의 세상 속으로 뛰어들 수 있지만, 반딧불이의 작디 작은 자연 빛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굳이 '멸종'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피터 싱어가 극단적이기는 하다만, 그의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건, 행동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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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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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공작, 자넨 유로지브와 다를 바 없군, 하느님은 자네 같은 사람을 사랑하시지!" 

 
 
시작부터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로고진과 므이쉬킨의 등장. 도스토옙스키의 직진 방식의 서술은 정말 거침이 없다. 초독자라할지라도 이미 소설의 결말이 연상될 만큼 시작부터 등장인물의 색깔이 분명하고 강렬한 <백치>.  벌써부터 소설의 마지막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다. 
 

가독성은 최고, 잘 쓰긴 정말 잘 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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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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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보벵의 시선과 감성, 목차만으로도 작은 햇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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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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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뱅에게 기쁨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영원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미 그리움 한도 초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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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기 베인
더글러스 스튜어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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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이 먹먹함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읽는동안 멀쩡하게 읽은 시간보다 눈물이 고여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읽어 중간에 책을 덮을 때는 입 언저리가 얼얼하기도 했다. 결국 두 군데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펑펑 울고 말았고, 읽는 내내 눈이 뻑뻑해져 인공 눈물을 끼고 읽었더랬다. 정말 오랜만에,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들어가 명치가 아프도록 속상하고 애가 닳도록, 슬펐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대처리즘 시대에 글래고스를 배경으로 애그리스를 중심으로한 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은 3인칭으로 서술되지만 등장인물의 관점을 바꿔가며 진행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노동자 계급은 설 자리를 잃고, 주요 배경인
탄광촌 핏헤드에서처럼 실직 후 대체 일자리를 얻지 못한 가장들은 소액의 수당을 받으며 술과 놀음, 여색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여성들이 양육과 살림을 도맡아 가정을 지키며 빈곤한 생계를 겨우 이어갔다. 또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 카톨릭 교도인 애그니스와 개신교 신자인 셕의 결혼이 상징하듯 종교적 대립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남성성을 강요받는 시대에서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폭력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이러한 시대적 혹은 사회적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었던, 그릇된 사랑을 좇다 스스로를 망가뜨린 여성,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련을 놓을 수 없었던 한 소년의 애정을 그린, 그야말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67.
이 진창에서 우리를 구할 건 운밖에 없으니까.


불같은 끌림이 사랑이라 믿었던 셕과 애그니스는 각자의 가정을 깨뜨리고 재혼했다. 셕은 울며 매달리는 아내와 네 아이들을, 애그니스는 남편에게 가볍게 이혼을 통보한 후  두 아이 캐서린과 릭을 데리고 나왔고 무일푼인 남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향한 곳은 애그니스의 친정이었다. 불꽃이 꺼지는 건 한 순간이다. 직업이 택시 기사인 셕은 양다리도 모자라 문어발식 바람을 피웠고, 애그니스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셕의 외도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책장마다 안타까운 장면이 많아 독자가 끊임없이 가정을 하게 만든다. 애그니스가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지지 않아다면, 엄마 리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유진의 시험을 더 강하게 거부했다면, 핏헤드를 벗어나는 순간의 다짐을 지켰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라고 말이다.  


엄마에게 희망이 없다고 여긴 큰딸 캐서린은 어린 나이임에도 집(과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련없이 결혼을 선택했다. 비록 결혼 상대자가 그토록 증오하는 의붓 아버지의 조카라고 하더라도. 릭이 순수미술 학부의 우수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편지를 받은 날, 셕은 식구들을 핏헤드에 던져 놓은 채 애그니스를 떠났고, 엄마 애그니스는 오븐에 머리를 넣고 죽으려 했으며, 캐서린과 셔기는 겁에 질려있었다. 이제 가장과 다를 바 없는 자기가 어떻게 이들을 두고 떠나겠는가. 릭은 입학통지서를 2년이 넘도록 간직했다. 그의 희망은 하루라도 빨리 집을 나가 미술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으나 인생은,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처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엄마를 통해서. 셔기는 기억이 시작되는 가장 어린나이를 돌이켜 떠올려봐도 엄마가 온전한 정신이었던 날이 거의 없다. 소년은 자신이 살아온 대부분의 기억 안에서 엄마는 항상 취해 있었다. 딱 1년, 엄마가 술을 끊었던 그 기간에 셔기는 행복했다.  


416.
난 슬퍼지려고 술을 마신 게 아니야.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마신 거지. 




예상컨대 대부분의 독자들은 셕과 애그니스의 부모로서 무책임함에 분노할 것이다(셕은 구제불능이고). 그런데 애그니스라는 인물을 좀 깊게 들여다보면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참 안타깝고 애잔하다. 사람은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열망이 다르다. 애그니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고, 자신의 사랑에 충실했다. 셕에게, 유진에게, 자신에게. 어린 자식들에게 모진 말과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삶에 지쳐 죽을 결심을 한 순간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에 아파했다. 술과 남자에 흔들리면서도 자식들은 지키고 싶었던 애그니스. 애그니스가 지키고 싶어했던 것이 과연 자식인지, 자신의 자존심인지, 그것도 아니면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대한 방어인지 잘 모르겠다. 애그니스는 충분히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 좋은 사람일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은 것은 본인 자신이지만. 그리고 그녀는 릭이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셔기가 학교에서 자신이 강요한 단정한 옷차림과 말투 때문에 '호모 새끼'라고 놀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알아야하는 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  


나이답지 않은 세련되고 예의바른 말투, 여리여리한 외모 때문에 '호모 새끼'라고 학교폭력을 당하는 셔기의 인생 목표는 오직 '엄마 지킴이'다. 다섯 살이 지나면서 셔기는 자신이 잘 하면 엄마가 술도 끊고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조금만 더 잘 하면'. 그래서 엄마가 알콜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남자들에게 버림받는 것도, 다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살지 못하고, 도망갈 곳 없이 고립되어 서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애그니스와 셔기는 무척 닮아있다. 또한 캐서린과 릭이 벗어난 핏헤드에서 떠나지 못했던 애그니스와 셔기가 핏헤드 자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그니스는 여러 의미에서 고립무원이었던 핏헤드를 왜 떠나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셕에 대한 미련이었지만 이후에는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침내 그곳을 떠나는 순간, 나는 셔기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더랬었다. 그저 희망에 그쳤지만.





술에 취한 엄마라도, 막말을 내뱉는 엄마라도,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엄마라도 곁에 있어 좋은 리앤. 셔기는 애그니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질문을 리앤의 엄마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두 사람의 결별 무렵, 애그니스가 셕에게 물었다. "나 하나로 만족할 수 없어?"
애그니스에게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셔기가 혼잣말로 애그니스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닮아있는 건지...


사랑의 방식이 어떻든 셔기는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빛났으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잘 알았기에 홀로 설 준비가 된 셔기. 시종일관 절망에 가까웠던 소설은 마지막에서 작은 희망의 빛을 놓아둔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셕과 애그니스의 무책임함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그제보다는 더 어른이 된 나는 삶의 모양이 사람마다 제각각임을 납득하는 넓이가 그 하루만큼 아주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매일이 쌓여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말로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애그니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페이지마다 크고 작은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마음을 콕콕 찌른다. 한동안은 이 뭉근한 느낌이 가슴에서 떨어져나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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