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다른 그위친족 무리 중에 있는 소녀 주툰바. 딸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는 어머니 나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툰바는 아버지와 세 오빠들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아버지 조흐는 아들 뿐만 아니라 딸에게도 무기를 쓰도록 훈련시켰다. 통상적으로 여자아이들에게는 요리와 양육, 바느질, 식용 식물과 약초를 채취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툰바는 사냥꾼들이 높게 평가하는 기교인 새소리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법을 터득했다. 가족들은 주툰바를 '새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세월이 흘러 주툰바는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다. 노련한 사냥꾼이 되었고,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으며, 물살이 몹시 빠른 강에서도 헤엄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야영지의 청년들과 경주를 하고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딸을 자랑스러워했으나 무리 사람들은 그녀를 탐탁해 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의 일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부족 내 관습에서 여자 아이의 남성성을 격려하며 교육시키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각 무리에서 비호감으로 전락한 다구와 주툰바의 앞날이 평탄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은 이미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마디로 단정해 표현할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아주 면밀한 감정을 묘사하는데 독보적인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이다. 단편소설의 대가들도 많고 감정 묘사에 우월한 작가들도 많지만, 단편 소설로써 이토록 탁월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싶다. 만나는 작품마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늘 작지만 긴 파동을 남기는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 열 두 편이 실렸다.  







 

인생은 항상 논리적일 수 없고, 이해 가능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예측 불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회 규범이나 도덕적인 잣대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작은 교감에도 사랑은 싹틀 수 있고, 이별의 원인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하다.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욕정일 수 있고, 살아온 긴 세월이 행복하지 않았음에도 사랑의 잔재는 남는다. 사랑이 변하고 더 이상 사랑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느끼는 슬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운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니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가족에게 짐이 된다 여겨 자괴감과 죄책감에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돈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우리를 시험대 위에 올려 놓는다. 비밀을 지켜도, 비밀을 고백해도 어느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사람들. 인생의 절정에서 내려와 아무도 보아주지 않은 노년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들. 이렇듯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하기까지 하다. 윌리엄 트레버는 이 모든 것들을 비관적이지 않게 보듬으며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하듯이 독자를 위무한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고인 곁에 앉다] [큰돈] [밀회] 였다.
[고인 곁에 앉다]는 오랜 결혼 생활 끝에 남은 부부의 애증을 더할나위 없이 느낄 수 있었고, [큰돈]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결심한 젊은이의 모습을 미국적 시각이 아닌 미국에 가지 못한 아일랜드인의 시각에서 그려진 소설이라는 점에서 짧지만 흥미로웠다. [밀회]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은 내 전부야. 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결국 이별을 택한다. 부서지지 않은 사랑을 간직한 채로 늘 이 순간을 준비한 여자. 사랑이 끝나도 살아간다. 사랑에 있어 용기를 내는 자는 늘, 여자다. 



모든 작품이 아름다웠다. 왠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을 읽으면 나도 그럭저럭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의 이야기는 희망이 아닌 곳에서 시작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올해에만 윌리엄 트레버 책 3권을 읽었다. 어김없이 좋았다.





♤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쓴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그위친족의 소년 다구. 다구라는 이름은 뇌조를 뜻하는데, 소년은 이름대로 날렵하고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어른들로부터 들은, 일 년 내내 태양이 비치는 남쪽의 따뜻한 나라 '해의 땅'. 다구는 부족의 어르신으로부터 '해의 땅'으로 가는 옛 지도에 대해 들었고, 어르신은 지도 하나를 그려주었다. 다구는 어머니에게 받은 무스 가죽 조각에 그 지도를 베껴 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전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작부터 방랑기가 가득해 보이는 다구. 인간만의 특성이라는 호기심은 독이라 했던가. 다구의 끝없는 호기심이 아슬아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퓰리처 글쓰기 수업 -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잭 하트 지음, 정세라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토리는 모두 똑같은 것 같지만 저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눈송이를 닮았다.
(존 프랭클린)




내가 동네 도서관 사서샘(자주 들락거려서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이나 주변 지인들한테 종종 듣는 질문이, "작가 지망생이세요?"다. 뭐... 당연히(?) 아니다. 사실 읽는 양에 비해서 쓰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인 어린시절의 소위 인생책이 <백과사전>과 <작은 아씨들>이었다. 책 좀 읽는다하는 여자아이들한테 선망의 대상이었던  '조'는 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조'를 따라 미래의 꿈이 '작가 지망생'(작가도 아니고)일 때도 있었으나, 그걸로 끝. 이후로 고등학생 당시 학교 문예지에 서너번 글이 실린 것(그것도 강제로)과 어른이 된 후 어느 잡지사에 글이 두어번 실린 것, 그리고 일기를 매일 쓰는 것 외에는 글쓰기와는 직업적으로나, 취미생활로나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간혹 글을 써야 할 때가 생겼는데, 무엇보다 나를 당황시킨 건 '설득하는 글'을 써야할 때였다. 국어과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읽는다고 읽었는데, 내가 이렇게 어휘력이 부족했나 싶을 때가 자주 발생하고, 근거를 제시하는 것 등 객관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좀더 타당성을 기반으로 설득해야하는 부분에서 간혹 막히곤 한다. 그래서 읽어보자 싶었다. 





 




이 책은 표지에서 보이듯 논픽션 스토리텔링 글쓰기에 대해 서술한다. 스토리, 구조, 시점, 캐릭터, 스타일 등 구성 요소 뿐만 아니라 취재, 인터뷰, 기사와 실질적인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을 준다. 사실 이 책에 쓰여진 내용들을 구구절절 읊는 것은 조악한 내용 정리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꼴이 되기에 일일이 설명은 생략한다.  
 


이 책의 장점은 수많은 예시를 통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설명이다. 고전 문학을 비롯해 보도자료 정리와 기사부터 영화 스토리텔링까지 실제로 쓰였던 혹은 저자가 직접 제시하는 엄청난 양의 글쓰기 예시와 도표들을 첨부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들이 저자가 서술하는 내용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이해하기가 아주 수월했다.  

 
저자가 제일 마지막으로 언급한 점은 '윤리 의식'이다. 아마 이 부분을 마지막에 배치한 것은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기본으로 지켜져야함에도 간과하는 이들이 많기에 잊지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정한 글쓰기의 기본 윤리원칙은 솔직, 정확, 투명, 명확이다. 물론 다양한 이유로 내러티브의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 어떤 작가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가 작가에게 갖는 신뢰를 생각한다면 잊어서는 안되는 소양임을 저자는 당부한다. 특히 저널리즘 텍스트의 정확성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적용해야함은 물론이고 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보탠다.  
 


글쓰기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경험을 듣고 보고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좀더 탄탄하게 갖추어진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곁에 놓고 글을 쓰다가 사이사이 참고서처럼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치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위스에서 뇌전증 치료를 받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로고진과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되는 스물여섯 살 청년 공작 므이쉬킨. 로고진의 입에서 불거져나온 나스타시야라는 이름은 이후 두사람을 애증의 관계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스타시야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로고진은 그녀를 돈으로라도 얻겠다는,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하겠다는 일념 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나스타시야의 지참금을 노리고 결혼을 결심한 가브릴라가 있다. 도대체 나스타시야는 어떤 인물인가? 
 


나스타시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거부 토츠키의 호의로 그의 피후견인이 되었다. 성장하면서 남다른 외모를 눈여겨 본 토츠키는 나스타시야를 정부로 들어앉혔고 이를 모르는 이는 페테르부르크에 아무도 없다. 그런데 쉰다섯 살이 된 토츠키가 예판친 장군의 딸(이 시대 결혼 적령기를 따져보면 손녀 뻘)에게 청혼을 하기에 이르고, 걸림돌이 된 나스타시야를 예판친 장군의 비서인 가브릴라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쥐어 결혼시키려는 수작이었다. 성장 배경만 놓고 보면 이후 드러나는 나스타시야의 히스테릭한 성격을 납득할만 하다.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지 못했고, 가슴 속에는 심장 대신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으며, 감정은 메말라 영원히 죽어버린 듯'했다는 표현은 그녀의 상처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나스타시야 입장에서 로고진의 집착은 토츠키와 크게 다르지 않을 터다. 자신의 외모에만 이끌려 내면을 보려하지 않고, 진심을 보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지난한 노력보다는 돈으로 쉽게 사랑을 얻으려 한다는 점에서 로고진, 토츠키, 가브릴라, 아니 어쩌면 그녀가 알고 있는 남자들은 모두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첫눈에 그녀의 애수를 간파한 므이쉬킨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할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과 우정의 작대기를 그려보면, 위에 썼듯 로고진은 나스타시야를 사랑한다. 나스타시야는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준 므이쉬킨에게 매료되지만 그의 앞날을 위해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접는다. 가브릴라는 아글라야를 좋아하지만 거액의 지참금을 포기할 수 없어 나스타시야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아글라야는 아직까지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사이사이 므이쉬킨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스타시야의 마음을 아는 로고진에게 있어 므이쉬킨은 질투의 대상이자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친구다. 가브릴라 역시 연적이자 자신과는 너무 다른 므이쉬킨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선의와 이타심, 그리고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존경한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로고진과 결혼하려는 마음과 두려움이 교차해 변덕을 부리는 나스타시야. 로고진에 의하면 그 두려움이란 므이쉬킨을 향한 사랑이다. 로고진은 증오와 정복욕이 뒤섞인 감정이 사랑이라고 여기며 나스타시야에게 집착하는데, 어쩌면 그 집착은 나스타시야가 비록 잠시나마 로고진의 집에서 진정성 있게 그의 내면을 바라봐준, 그 순간의 위로를 잊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로고진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본인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이 위로라고 한다면, 그는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그야말로 '바보'가 아닐까.




 
므이쉬킨은 인간이 갖을 수 있는 순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모든 것에 지나치다 싶을만큼 정직하고, 입에 발린 말은 고사하고 선의의 거짓말조차 하지 못한다. 므이쉬킨에게 있어 연민과 사랑은 동격이며, 이는 남녀노소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다. 어떤 형태이든 므이쉬킨에게 있어 사랑은 인류애다. 므이쉬킨이 타인에게 갖는 측은지심은 가히 성인聖人의 수준에 이른다. 인류애적인 사랑과 순수함은 어린 아이나 가능하다는 고정관념, 즉 어른이 되지 못하는 '백치'라는 사고에서 본다면 므이쉬킨은 그야말로 스스로가 인정하듯 '백치'다. 불의가 다수가 되면 일반화되듯이, 정직과 순수는 더 이상 어른의 세계에서는 존재하면 안되는 덕목이다. 그래서 이러한 덕목을 우선하는 이는 바보로 치부된다.  


소설 속 마리의 이야기는 므이쉬킨의 관점을 통해, 한 인간 자체의 불행보다 '도덕'이라 믿는 관습을 더 우선하는 인간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더 무서운 것은 그릇된 집단주의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학습되어진다는 사실이라는 것을 작가는 꿰둟고 있다. 즉 어린 아이에게 순수성을 잃도록 어른이 가르치는 셈이며, 이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무한궤도가 돌 듯 반복되어진다는 것이다.  


므이쉬킨은 어떤 대상을 보는 법을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그는 남들이 놀랄만큼 심리관찰에 뛰어나다. 사람을 외면이 아닌 내면으로써, 허영보다는 진정성에 무게를 두고 타인을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일명 '파블리셰프 아들'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과정에서 므이쉬킨은 브르돕스키와 단 둘이 있는 자리가 아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실을 밝혀 그를 모욕했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그 정도의 소양이 안 되는 자신을 스스로 백치라고 부르며 한탄한다.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부터 찾는 것은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이다. 이 사람은 그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는 방법을 안다. 


뇌전증을 앓으며 시골의 대자연에 살면서 소박한 삶에 대한 가치를 일찌감치 깨우친 므이쉬킨이 행복을 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건강을 느끼며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아는 것. 소설은 사이사이 비극적 결말을 암시한다. 이 남자의 소박한 바람이 지켜지지 못할 것을 알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따끔따끔하다. 





  
 이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사이사이 알료샤(므이쉬킨), 드미트리(로고진), 그루셴카(나스타시야), 표도르(토츠키) 등의 인물들이 연상된며, 사건의 단면 역시 겹쳐지는 느낌이 있다. 소설 초반 총살형 판결을 받고 죽음 직전에 감형된 사람의 이야기는 작가 본인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놓은 듯 한데, 그 사건이 도스토옙스키에게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된다. 이 분 작품의 가독성은 아는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책장이 휙휙 넘어간다. 두 번째 권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