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사월의책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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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읽어보면 자연에서 시작해 교육, 사회, 인문 등 다각도에서 사유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잉 시대에 생산력이 아닌 분해력에 촛점을 맞춰야한다는 학자의 지적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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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8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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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악은 혈관 속에 날카로운 한 조각의 얼음을 남기고, 그것이 서서히 움직여 마침내 심장을 찌르는 것일까? 
 







지브릴이 천사의 눈으로 본 도시의 실체는, 주류자들의 지역은 두려움과 허영과 경멸의 집약체였고, 가난한 자들의 거처는 혼란과 물질적인 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썩은 영혼이 도사리고 있고, 도시는 온통 거짓 뿐이다.  


지브릴은 도시에 자리잡은 완강한 악의 힘을 실감하고 널리 선을 펼치겠다고 결심하며 부패한 도시를 차례대로 구원하리라 마음 먹지만, 그의 예상만큼 순조롭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모와 입성이 노숙자 몰골이 되어가는 지브릴. 악은 천사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브릴 앞에 나타난 사나이 바알은 지브릴을 마훈드라고 부르며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떤 존재인가?'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든 타협하고 거래하고 순응하며 살아남으려 하는가, 아니면 휘어지느니 부러지는 쪽을 택하겠는가. 지브릴은 이 질문 자체가 속임수라고, 신 이외의 신은 없으니 타협 따위는 없다고 단언하며 자신이 하나의 시험을 이겨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지브릴이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한 이들이 레카, 알리 등 여성이라는 점이고,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비행 능력을 되찾는다. 소설에서는 성적 욕망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하는데, 이것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ㅡ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쇠퇴한 자힐리아에서 절대적 군주이자 폭군으로 군림하는 힌드의 모습은 마치 가난한 백성의 삶에는 무관심하며 여성을 비롯한 약자를 억압하고, 왜곡시킨 '신의 이름'을 이용해 사람들을 세뇌시키며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을 겨냥한 듯 보인다. 힌드는 여성인데, 1권에서 이맘이 망명지에서도 혁명군이라 일컫는 반정부 세력을 주도하는 장면에서 특이한 점은 이맘의 고국을 통치하며 종교적.정치적 지도자인 그를 추방한 사람은 여왕 아예샤다. 이맘은 아예샤를 폭군이자 부도덕한 자로 단정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마훈드와 지브릴은 동일시된다. 마훈드는 율법에 집착하는데, 섭생과 용변, 가려워도 절대 긁으면 안 되는 신체 부위 등 인간의 일생 전반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규정이 따른다. 페르시아인 이민자이자 마훈드의 제자 살만은 도무지 이를 납득하지 못한다. 도대체 인간에게 평화를 안겨주어야 할 신이 요구와 조건이 이렇게 많다니, 그는 마훈드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 이 대목에서 결정적인 부분은 마훈드가 지브릴에게서 먼저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마훈드가 먼저 율법을 정해버렸고 천사는 나중에 나타나 이를 확인해 준다는 대목이다. 즉, 신성한 말씀은 신(대천사)의 계시가 아닌 마훈드 개인의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살만이 마훈드와 결별하게 된 이유는 여자 문제와 '악마의 시' 때문이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못마땅해 율법을 통해 여성들을 순종과 복종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훈드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내용도 한마디로 제 뜻대로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부유한 아내의 경제적 능력 덕을 톡톡히 본 예언자가 왜 여성을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시켰을까를 따져본다면 루슈디의 의문은 타당하지 않을까.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이러한 지적들은 이슬람교도들을 충분히 자극시킬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살만의 대사는 마치 작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 장章에서 바알을 통해 여성이 수동적으로 변해과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도 꽤 흥미롭다. 


"어째서 그가 자네를 죽일 거라고 확신하지?"
"그의 '말씀'이 옳으냐 내 말이 옳으냐하는 상황이니까." 


ㅡ 


어쩌면 살만 루슈디는 이슬람교와 코란이 아닌 이를 왜곡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그릇된 관습을 만들어간 사람들을 비판했던 건 아닐런지. 지브릴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신앙을 잃었다. 자신이 그동안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해서 죄책감도 없는 그는 자신이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죽을 뻔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신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신이 있음에도 인간은 끊임없이 대립과 반목하고, 그로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얘기한 건 아닌가싶기도 하고.  


지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부정하고 폄하하는 살라딘에게 처음부터 죽어있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충고한다. 소설은 수피안 가족을 통해 인종주의와 이민자의 상실감에 대해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이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살라딘의 선택과 같은 선상에 있다.  


ㅡ 


소설에서 뱀이 낙원에서 쫓겨난 이유는 '질문' 때문이다. 악은, 고통은, 죽음은 왜 있는지, 그럼으로써 신을 판단해서 쫓겨났다. 결국 천사든, 악마든 순종을 강요한다. 천사들조차 동료와 구원받아야할 영혼을 조롱하고 질투하고 비웃으며, 권력과 계급의 욕망에 의해 타락한다. 이 정도면 천사와 악마를 구분하는 경계는 무엇일까? 살라딘의 깨달음처럼 나쁜 짓을 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 자들이 악마일까? 


신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한다고 했지만, 인간들은 대천사의 존재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인간 이외의 생명체를 향해 온갖 폭력을 휘두르며 지상의 주인이 되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과연 인간 세계에서 신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루슈디는 살라딘을 통해 지브릴이 출연했던 영화와 그들이 경험했던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몽상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은 종교와 이념을 가리지 않고 악마가 판을 치는 지옥같은 세상임을 얘기한다. 타고난 계급으로 특정 신분을 억압하고,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을 겨냥해 학살을 일삼으며, 인종과 여성과 이민자를 차별하는 사회 등 점점 선과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잔혹성을 더해가는 세태를 신랄하게 파헤치며 겨냥한다.  


과연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마술 램프는 무엇일까? 진부하게도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죽음이 참혹한 비극이 아닌 다음 세대의 새로운 삶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이 긴 이야기를 통해 루슈디가 하고자했던 말이 아닐까. 


길고 긴 한 편의 익살극 같은 이 소설의 완벽한 반전은 제9부에서 드러난다. 읽다보면 다소 난해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일단 읽으시라. 완독하는 순간 그 난해함은 해결된다. 










144.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야. 그러니까 전문적인 거짓말쟁이는 돈을 잘 벌기 마련이지. 내가 쓴 연애편지나 업무용 통신문은 시내에서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는데, 그건 진실을 아주 조금만 왜곡시켜 멋진 거짓말을 꾸며내는 재간 덕분이지. 그래서 겨우 이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를 마련했어. 고향! 그리운 조국 땅! 내일 출발할 거야. 그동안 참 용케도 버텼지." 


177.
"악마는 왜 찾아, 인간이 곧 악마인데?"
"천사는 왜 찾아, 인간도 천사를 닮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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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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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의 모든 소설이 그러했듯 격동의 시대에 소시민 삶의 애환이 드러난다. 거기에 이 소설은 위화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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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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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이 지상에서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조지 오웰) 



오웰의 삶(가계를 포함한)의 궤적과 그의 문학 작품 및 비문학 글들을 관통하면서 동시에 전쟁, 정치, 이념, 사조, 자유, 산업, 환경, 오염, 기후, 노동, 여성, 인권, 예술, 문화, 생물, 과학, 농업, 식민주의 그리고 문학 등 근대를 지나 1900년대 초중반, '오웰의 시대'의 전반적인 사회 구조를 탐구한다. 스페인 내전을 비롯해 스탈린 독재에 대한 비판은 현재 스탈린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러시아의 권위주의적 지도자에게까지 이어지며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나는 전체주의와 여성 노동, 새롭게 대두되는 산업 식민까지 짚어내려간다.   










조지 오웰의 삶은 전쟁으로 점철되었다. 보어전쟁 직후에 태어나 사춘기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20대에는 러시아 혁명과 아일랜드 독립전쟁, 30대 이후에는 스페인내전에 참전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 동안 런던에 살았으며, 1945년에는 '냉전'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1950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삶은 세상에 존재하는 극악한 위협과 대립을 관통했다. 


오웰은 버마 주재 대영제국 경찰로 5년간 복무한 경험을 통해 하류 지향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소년 시절의 자신에 대해 "나는 속물이자 혁명가였다. 모든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 나는 막연히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노동계급도 인간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오웰의 고백은 소설 <엽란을 날려라>에 잘 드러난다.  


거의 평생동안 오웰을 괴롭혔던 호흡기 질환은 오히려 그에게 삶을 더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음을, 그리고 생각보다 죽음이 가까운 데에 있음을 상기했을 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갈까?  


ㅡ  


오웰은 '나무를 심는 것, 특히 오래가는 단단한 나무를 심는 것'은 큰 수고와 비용을 들이지 않고 후세에 해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자신의 에세이에 썼다. 그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으로써 당장의 사회 변화를 넘어 후대에 미칠 영향까지 확장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 솔닛은 씨앗이 인류를 비롯한 많은 다른 종들의 주된 먹이이자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를 발달 시켰음을 상기시키며, 조지 오웰이 장미를 심는 것으로 두 가지의 시간을 살았듯, 인간 대부분이 마찬가지임을 말한다. 정치적 행위자로서, 시민으로서, 개별적 정신의 소유자로서, 또한 동시에 생육하는 생물학적 독립체로서 필멸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솔닛은 이 책에서 오웰이 열정적인 자연애호가였음을 얘기하는데, 도시가 아닌 시골 생활을 하면서 나무와 꽃을 심고, 닭을 키우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평소 우리가 접했던 오웰을 떠올려볼때 상당히 의외의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솔닛의 지적을 따라가다보면 독자가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짚어낸다. 오웰에게 있어 일기에 써내려간 기록은 문학적 가치나 감정적.창조적 삶의 기록이 아닌 단지 노동과 작업 계획을 담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렇지만 글 쓰는 본업 외에 가장 좋아했다던 정원과 텃밭 가꾸기,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애정은 오롯이 전해진다. 



비정치적인 문학은 없으며, 모든 예술은 어느 정도 프로파간다라고 말한 것처럼 오웰은 인간 사회에서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지만, 예술이나 예술가가 특정 정당이나 국가의 의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의제에는 미학적 경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솔닛은 오웰이 글을 쓰는 것으로써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평등과 민주주의, 언어의 명확성과 의도의 정직성, 사생활과 그 모든 즐거움과 기쁨, 정치적 자유와 침범받지 않는 프라이버시, 즉각적 경험의 즐검움이라고 말한다. 그의 암울한 글에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문득 삶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든다.  


오웰의 시대에는 자연 세계가 사회적 및 정치적인 것과는 연관이 없거나 혹은 경우에 따라 하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오웰은 모든 예술이 프로파간다이듯 자연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을 증명하듯 현재 기후 위기는 그 자체로써 논의되기보다는 경제적 측면과 맞출린 정치적 싸움이라고 할수 있다. 더하여 이는 또 다른 식민주의의 양태를 보여준다.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미(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잠깐 벗어나서, 오웰의 가계를 되짚어 올라가 보면 그는 제국의 하수인이자 제국주의 사업에서 혜택을 누렸던 식민자의 후손이다. 자신의 집안 내력과 성을 혐오해 필명으로 바꾼 점이나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식민주의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 납득이 된다. 


ㅡ 


솔닛은 오웰이 어떠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칭송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극단의 절망적인 소설 <1984>에서 조차도 말이다. 어쩌면 오웰은 가장 냉철한 시선과 문장으로 글을 쓰지만 종단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정치든 예술이든 문화든 간에. 


솔닛의 시선에서 오웰이 장미를 심는 것은 자신의 사상에 뿌리를 내리는 것과 다름하지 않다. 이는 양날의 칼과도 같아서 관념과 자유에서 온전히 하나를 털어낼 수 없는 보편적 딜레마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솔닛은 형식은 기능과 분리되지 않으며, 아름다움 또는 추악함이란 그저 외관보다는 그 의미, 영향, 함의 등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만연한 전일성integrity의 결여를 짚는다. 


솔닛은 책을 마치면서 우리가 오웰이 이룩한 성과를 더욱 심오하게 만드는 길은 그가 소중히 여기고 욕망했던 것들이 전체주의의 국가의 영혼을 파괴하는 침식력에 반대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강조한다.   


ㅡ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장미는 인간의 존재와 욕구가 재화 및 여건 등의 물리적으로 환원되는 것에 그치지 않음을 상징한다. 속된 말로 인간은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욕망들을 내재하고 있는며 훨씬 더 심오하고 섬세한 존재라는 것. 나무와 장미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산업적 행위가 아닌)는 단순하지 않다. 이는 우리의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는 행위이면서 미래에 기여한다.  


이 책에 실린 오웰의 일기를 사이사이 읽다보면 그가 식물을 관찰하는 시선에서 섬세함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내 아일린의 무덤을 돌아보러 갔을 때 쓴 일기에서는 무덤의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잘 살아나기를 바람하는 그의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전체주의 혹은 강대국의 이기주의에 위협받는 인류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나무들은 인간의 영욕의 삶을 모두 지켜보며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살아남는다. 세대를 이어 함께 살아갈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맞이할지는 결국 우리 각각의 사람들이 할 일임을, 솔닛은 말하고 있다.   




※ 출판사 지원도서 _ 솔닛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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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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츨간 당시에는 금서 판정, 현재에는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니 그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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