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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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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죽어서 여길 탈출할 수 있으면 좋겠어. 


두 건의 사고로 사직을 한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전직 경찰 팀 제이미슨. 지인이 추천해준 사설 경비직으로 취업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하던 중 우연찮게 변두리 작은 마을 듀프레이에서 야경꾼으로 일하게 된다. 한동안 그의 업무 능력을 지켜본 보안관 존은 팀에게 정식 경찰직을 제안한다. 



□ □ □  



감성과 이성, 정서, 기억력,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없는 열두 살 천재 소년 루크. 루쿠는 영재학교에서도 천재성을 인정받아 SAT시험을 치르고 부모와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대학 입학을 기다리던 평범한 6월 어느날 한밤중에 자다가 납치를 당한다. 뒤늦게 출동한 경찰은 살해당한 부부를 발견하고 사라진 어린 아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루크를 찾는다.


루크가 눈을 뜬 곳은 '시설'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특별한 능력ㅡTP(텔레파시)와 TK(염력)ㅡ이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을 '징집'해 실험과 훈련을 시키는 곳이다. 루크는 운영자 식스비 부인으로부터, '앞 건물'에서 주사를 통한 실험과 육체적.정신적 점검을 지속적으로 받은 후 보통 3주가 지나면 대개 '뒷 건물'로 보내져 최장 6개월 동안 특정 임무를 수행하고 그 이후에는 기억이 삭제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


'징집'된 아이들은 굴욕감을 자극하는 가혹한 실험 및 점검과 훈련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명령을 어기면 잔인한 처벌을 받고, 외부 세계와는 전혀 접촉할 수 없으며 모든 의례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아이들이 유일하게 친절하다고 믿었던 청소부 모린의 비밀. 그러나 그녀에 대한 루크의 진심어린 걱정과 조언으로 모린은 루크에게 암시를 보낸다.


가벼운 TK라 여겼던 루크. 그러나 그들은 TK와 TP를 연계할  수 있는 실험을 하고 있었고, 루크는 가능성이 있는 실험체였다. 그들의 폭압적인 실험에도 불구하고 루크에게서 TP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루크는 자신이 TP가 가능해지고 있음을 안다.


며칠이 지났을까. 잔혹한 검사는 계속되고 그 사이 영웅같았던 니키와 부드러운 맏이 역할을 해주던 칼리샤가 '뒷 건물'로 끌려갔다. 루크는 감시자들 몰래 다크앱과 유사한 그리핀 사이트를 통해 외부 세계로 접속하고 자신의 부모가 피살됐음을 알게 된다.


'뒷 건물'로 끌려간 칼리샤, 절대적 TP 능력을 가진 에이버리, 비록 초능력에서는 '분홍색'이지만 다른 방면에서 천재 능력자 루크.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루크는 칼리샤가 에이버리를 통해 전달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간파하고 자신들을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는지 알아낸다.


루크가 TP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실험과 검사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뒷 건물'로 보내질 날도 임박했다. 루크는 이제 탈출을 하고자 한다. 아니면 죽든가.








국제 정치에서 열강국의 우위를 지키고 자신들의 이익대로 세계를 조정하고 싶어하는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시설'. 초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감지된 아이들을 납치해 '국가를 위한 봉사'라는 명분으로 고문과도 같은 악랄한 실험과 검사를 반복하고 복종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폭력을 가하며 테러에 사용할 무기로 개조한다.


이 설정을 읽으면서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와 2차대전 당시 인체 실험에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인간만을 위한 동물실험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집단 혹은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발상은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절대 악'으로 보여지는 그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다수결의 원칙은 바꿔말하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그 '소수'는 대체로 약자들임을 감안한다면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암암리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1권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 처음 등장했던 팀과 루크의 조우가 예상된다. 1권에서 팀의 조력자가 모린이었다면 2권에서는 팀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부모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된 루크가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시설'의 존재를 외부 세계에 어떻게 알릴 것이며, 실험체로써 고문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구출할 것인지 궁금증이 크다. 팀과 루크의 환상적인 케미를 기대해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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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지음, 박제이 옮김, 손열음 감수 / 책세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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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쿠간에서 발행하는 잡지 <클래식 프리미엄>에 2014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첨가 및 재구성한 음악 에세이다. 
 
히사이시 조, 혹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 국내에서도 유명한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이며 클래식 음악 지휘자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그의 영화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보니 음악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클래식 음악과 지휘가 주를 이룬다. 특히 2장에서는 악보 등 음악이론적인 부분, 4장에서는 음악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어 음악의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한테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클래식의 중요성과 깊이를 음악에 입문 뒤 한참 후에 깨달았다. 어릴 때는 가요나 팝송이 더 친근했고, 중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는 현대음악에 심취했다. 그런데 서른 전후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대음악은 시종일관 어떻게 사고했느냐하는 문제만 다루기 때문에 상대방의 논리적인 허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논파함으로써 자신의 음악 개념을 세우려 한다. 소리가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어떻게 사고했느냐 하는 증거로만 존재한다. 아무도 그 음악을 듣고 즐거워할 사람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에 마음이 떠났다고. 결과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넘어선 듣는 이의 감정까지 고려하게되었다고 생각하면 될까?  
 
 
저자가 지휘를 시작한 이유는 작곡 활동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였기 때문이다. 정말로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려면 제 손으로 그 작품을 지휘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클래식은 연주자, 지휘자, 청자 모두에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나는 주로 청자가 되겠지만, 나 역시 같은 음악을 여러번 들어도 들을 때 마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서 감동이 전해지는 부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이 들리기도 한다. 또한 지식을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순수한 음악의 즐거운 체험을 위한 청자라면 어느 정도 노력과 인내를 갖추길 요구한다. 그러한 체험이 음악적 하루하루를 일군다면서. 
 
 
곡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점에서 해석이 생겨난다는 히사이시 조. 그래서 음악을 시각화한 악보와 음악을 전달하는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크다고 말한다. 음악은 귀로 생각하는 것이고 시간축과 공간축에 세워진다. 가로선이 시간축, 세로선이 공간축이라고 하면, 리듬은 새겨가는 것이므로 시간상에 성립하고 하모니는 울림이므로 각각의 순간을 둥글게 썰어나가는 느낌으로 여긴다. 이른바 공간을 파악하는 것. 멜로디는 시간축과 공간축 안에서 만들어진 것의 기억장치다. 시간축의 산물인 리듬과 공간축의 산물인 하모니, 그것을 일치하기 위한 인식 경로로 멜로디라는 기억장치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음악에 해당된다(p160). 저자는 수많은 현대음악이 본래의 멜로디와 하모디가 지닌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는 음악이 필요한 때라고 전한다. 
 
264.
음악은 구축하는 것입니다. 떠오른 생각을 차례로 이어놓기만 하다면 그저 음의 나열일뿐이지요. 그것들을 한데 묶는 요소가 필요해요. 

 
 
히사이시 조는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음악 교육의 부재와 상업주의 사회에서 음악이 대량생산됨으로써 발생하는 폐해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는, 음악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작품을 하나의 생명체라고 본다. 연주보다는 작곡에 더 기쁨을 느낀다는 히사이시 조. 지금이라는 시대 속에서 단순히 과거를 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돌아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사람. 그의 음악 세계를 응원한다. 
 
  
 
236.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업주의 속에서 음악은 정말 풍요로워졌는가? 사람들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도 없이 인기 많은 사람이 여흥처럼 부르는 음악을(물론 그렇지 않은 진정한 가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취향에 호소'하는 대중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일까? 감동이 있을까? 컴퓨터로 음악을 정보화해서 정액 요금으로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음악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다. '상업화로 대량생산된' 음악의 미래가 이것이라면 세상에서 진정한 작곡가는 사라질 것이다(밥을 못먹고 사니까). 이제 미래는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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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8
백민석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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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불행은 무차별적이다. 
  
 
한 방송국의 피디에게 USB가 보내진다. 첫번째 수취인이다. 이후 여러 언론 매체에 같은 우편물이 도착하지만 그 USB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한 시사주간지의 기자가 유일하게 USB 음성파일을 듣는데, 내용은 이렇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무고한 시민 한 명을 토요일에 살해하겠다.' 
 
사건, 사고, 자살을 모두 합하면 대한민국에서 하루 사망자는 평균 50여 명이다. 이들 중에서 누가 협박범의 피해자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사망자가 사망 당일 발견되었다는 보장도 없다. 이 음성파일은 9월부터 각 언론사에 보내졌음이 뒤늦게 밝혀져 경찰은 지난 한 달 반 동안 사망한 3000여 명을 신원조회부터 사망확인서까지 다시 흝었지만 정작 무얼 알아내야 하는지 조차 알 수 가 없는 지경이다. 더구나 USB는 여전히 꾸준히 언론사에 도착하고 있다.
 
2016년 10월, 대통령 사임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광화문에 모여들 때였다. 누구라도 협박범일 수 있고, 누구도 협박범이 아닐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은 하 경감의 단독 수사로 떨어지고, 그녀는 USB에서 전해지는 무감각한 목소리를 빗대어 협박범에게 플라스틱맨이라는 별칭을 붙인다. 하경감은 살인사건이 접수 될 때마다 현장을 찾아 다니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진전이 없다. 그래서 USB를 처음 들었던 시사주간지 기자의 유튜브 채널로 협박범의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애꿎은 시민이 또 죽는다" 
 
그러자 너도나도 '내가 플라스틱맨을 알고 있다'는 제보 전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고양이 학대범, 음험하게 보인다는 회사 동료, 애인을 채간 친구, 학교 담임, 술집 바텐더, 라이벌 조폭, 심지어 1980년 광주에서 보았다는 제보까지. 이 와중에 음성파일을 받아서 전달해 주고 유튜브 공개 영상까지 도움을 주었던 시사주간지 기자가 실종된다.  
 
그러나 하 경감은 끝도 없는 이 사건이 헌재에서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면 해결되리라 여겼다. 대부분 국민의 공분을 산 현 대통령의 탄핵은 기정사실이었다. 음성파일이 전달된 후 5개월이 지나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되지 않았다. 
 
이로써 플라스틱맨의 사건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사건의 규모는 눈덩이 커지듯이 커진다. 폭탄 테러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헌재의 인정을 받은 대통령은 안하무인이며, 대통령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는 더 격해져 대규모 시위 안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난다.  
 
플라스틱맨은 누구일까?
하 경장은 그를 찾아낼 수 있을까?
 



  
 


 


 
소설은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웠던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 시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현실과는 다르게 탄핵이 기각된 것으로 설정했다.  
 
대통령의 퇴진을 조건으로 살인을 저지르겠다는 협박범의 음성파일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스토리가 진행하는 동안 그 어떤 단서도 내놓지 않는다. 오로지 감정이 배제된 메마른 음성만이 유일한 단서요 증거다. 또한 왜 이러한 사건을 벌이는지에 대한 동기도 제시되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서 협박범의 요구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어쩌면 우스꽝스러운 장난같은 요구를 하는데, 이는 결국 요구가 관철이 되든 안되든 자기는 무고한 시민을 죽이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버스와 성당이 폭탄 테러를 당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지고 범인이 플라스틱맨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소설은 이제 협박범의 범행 동기나 검거는 중요하지 않다. 이 플라스틱맨의 건조한 협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경찰은 사건을 접수하면서 처음부터 '셜록 홈즈 사건(의미도 가치도 없는 사건)'으로 치부했다. 대통령의 탄핵을 한 목소리로 주장하던 행정부와 사법부도 탄핵이 기각된 후 말을 바꾼다.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기득권층은 애초에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태는 나랏일하는 사람들에 국한될까? 협박범의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은 평소 자신들이 불만을 품었거나 시기, 혹은 특별한 이유없이 미심쩍은 사람들을 플라스틱맨이라고 제보한다. 소설 첫 부분에는 플라스틱의 어원을 들면서 플라스틱의 특성에 대해 언급한다. 
 
10-11.
플라스틱은 열을 가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유동성을 갖게 되지만 일단 굳으면 우주탐사선의 부품으로 슬 수 있을 만치 단단해진다. (...) 플라스틱은, 사람으로 치면 어떤 일어도 얼굴이 빨개지거나 창백해지지 않는 사람이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모두 함께 뜨거워졌지만,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의 모습을 보라.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하고 고정관념으로 씌어진 선입견이나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고려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납득하고, 큰 용기를 담보하지 않으면 공동체 사회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무색무취로 만들고 있음을 간과한다. 그저 집단에 묻어가는 것이 본전이라 여기는 현 세태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하 경장의 플라스틱맨 용의자 리스트에 우리의 이름은 없을까?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어 있을까? 
 
  
 
[소설 속으로] 
 
 
61.
사람들은 비난보다 무관심에 더 큰 상처를 받는다. 
 
71.
내가 살면서 한 번은 플라스틱맨을 만났던 거 같아요. 
 
86.
흉포는 플라스틱맨의 특징이 아니었다. 플라스틱맨은 너무나 흉포해서 누구의 눈에 띄도록 생겨먹은 놈이 아니었다. 그 정반대였다. 제보자들을 저마다 자기도 안다고 착각하게 만들만큼 흔하고 평범하고 레디메이드 같을 게 분명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생산 플라스틱 마네킹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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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밤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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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동생 리오가 그의 여자친구 다이애나와 기차 사고로 죽은지 15년이 지났지만 형사 냅은 그 사건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어느날 관할 지역이 아닌 경찰이 15년 전 사라진 여자친구 모라의 지문이 발견됐음을 알려주고자 찾아온다. 그런데 경찰은 그 소식과 더불어 지문이 발견된 현장에서 고등학교 동창 렉스가 경찰 신분으로 총에 맞아 사망했음을 전한다. 때를 같이 해 얼마 후에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행크가 실종된다. 15년만에 나타난 모라, 두 고등학교 동창의 죽음과 실종. 무슨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냅은 15년 전 쌍둥이 동생이 죽은 사건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다. 
 
형제이자 절친이었던 리오가 죽고 사랑하던 여자 친구가 사라진 후 냅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두 사람 엘리, 그리고 리오와 함께 죽은 리오의 여자친구 다이애나의 아버지이자 냅의 경찰 스승인 비오 아저씨. 냅은 이들에게 상황을 알리며 조언을 구하고, 엘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때 '음모 클럽'이 존재했으며 리오, 모라, 행크, 렉스, 베스가 멤버였고 그들이 마을의 폐쇄된 나이키 미사일 기지와 연관이 있음을 알아낸다. 군대가 철수하고 농업 관련한 연구가 진행했다고는 하지만 무언가 미심쩍다. 실종된 행크가 아침마다 산책한 길의 끝은 폐쇄된 기지였다. 행크는 어디에 있을까? 이제 냅은 리오와 다이애나가 자살이 아님을 안다. 그들은 살해 당했다. 
 
마침내 발견된 행크, 수소문해도 만날 수 없었던 모라의 어머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베스, 엘리가 15년 동안 숨겨왔던 사실, 행크가 데이비드에게 맡겨 놓았던 캠코더 테이프 등을 통해 냅은 점점 더 사건에 가까워지고 비오 아저씨의 비밀과 당시 미사일 기지의 사령관이었던 앤디 리브스를 추적하면서 차라리 진실을 모르는 게 낫다는 엘리의 말처럼 드러나는 진실과 짐작되는 사실에 냅은 괴로워한다. 
 
15년 전, 폐쇄된 기지에서 고등학생 패거리가 무언가를 촬영한 대가로 한 남학생과 여학생이 살해 당했다. 그렇다면 그때 함께 있었던 베스, 행크, 렉스는 왜 죽이지 않은 걸까? 그리고 왜 15년이 지나서야 그들을 살해하는 걸까? 또한 모라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도대체 그날 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     
 

사건의 결말 부분부터 이야기하자면 15년 전 리오와 다이애나가 죽은 일련의 과정은 예상치 못한 결론이며 렉스, 행크를 죽인 범인이 의외의 인물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등장 인물의 대화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소설 중반 이후에 조금씩 짐작이 된다. 내용의 흐름으로 따져서는 사건의 진실과 범인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촘촘하게 짜여진 소설은 최근에 읽은 스릴러 중에서는 가장 밀도 있는 소설이었다. 

 
소설 후반부에서 엘리와 냅은 거짓과 사실에 대해 공방을 벌인다. 상대방을 배려해서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일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친구를 속이는 꼴이 되어버린 배려는 진정한 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괴로워할 것을 알기에 혹은 위험에 처할 수 있기에 침묵을 선택한 것은 옳은 결정일까? 
 
살면서 가끔 겪는 일이기도 하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얼버무리면 그만이긴 하지만, 이렇듯 배려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숨기는 것은 기만이 아닐런지...... . 어차피 진실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각자 고통의 몫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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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N. K. 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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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피 흘리지 않는 혁명은 없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 얻는 자유는 없다. 

(깨어서 걷기) 
 



모두 22편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다양한 형식으로 구성된 소설집은 인종차별 특히 유색인종 여성차별을 시작으로 생명 연장, 지구 환경과 인류 종말, 구시대(제국)에 대한 저항 등 여러 테마를 다루고 있으며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여성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죽을 수있는 <위대한 도시의 탄생>,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겪어 온 인종 차별과 흑인 억압, 그리고 차별 철폐 시위를 그린 <븕은 흙의 마녀>, 특히 2005년 태풍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즈를 덮쳤을 당시 하층민 거주지역인 저지대의 피해가 컸고 인구가 대부분 흑인이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피해 복구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져 나왔던 상황을 소설로 옮긴 <잔잔한 물 아래 도시의 죄인들, 성자들, 용들, 그리고 혼령들>을 통해 제도적 차별을 받는 경제적 약자들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도 수면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을 수 있었다. 
 
88. 90.
나는 세상이 변할 거라고 믿을 수 없어. 나는 희망을 품을 수 없어. 내 마음속에는 희망이 없어.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짓밟히며 편하게 살라고 했어. 살아남는 법은 알지만 변화를 위해 싸우는 법은 알지 못해. (...)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백만 번은 말했지만 내가 틀렸다. 그건 미안하구나. 앞으로 큰 싸움이 있을테지만 넌 이길 수 있어. 그리고 그 싸움은 나보다 네가 훨씬 더 잘 해낼 거다. 

   
 
  
 
실린 작품들에는 여성 차별에 대한 소설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아내는 지정받는 대상이고 이혼은 불법이며 여성의 역할은 규정되어진 <엘리베이터 댄서>, 인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제한된 구역에 가둬놓고 인구 제한을 하기 위해 성적 하위 10% 여자 어린이를 데려가는 인공지능들과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 여성들을 그린 <졸업생 대표>.  
 
이 <졸업생 대표>는 눈여겨 보게 된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화보다는 죽이거나 죽거나 영영 갇혀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함으로써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항거하듯 주인공 소녀 지늘은 '자신'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집단주의 사회는 순응하고 평범하며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을 원한다. 개성은 용납되지 않고 획일된 삶을 강요당한다. 시스템 안에서 부속품으로써 가치가 없으면 도태라는 누명을 씌어 버려진다. '부속품'이 되든가, '자신'이 되든가. 
 
223.
그녀는 자신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241.
왜 넌 다르니? 왜 넌 우리처럼 되려고 노력하지 않니? (졸업생 대표) 
  

 
좀더 여성 문제와 가깝게 접근한 작품은 <수면 마법사>다.
폭력적인 남편은 강도와 다를 바 없는 가정 및 사회에서 여성이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임신을 해야 한다. 여성 지도자가 갖춰야 할 것은 역할에 맞는 개별적 능력이 아닌 육체적 생산성에 두고 이를 얻기 위해서는 성性을 역으로 착취 당해야 한다.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이상한 현상, 주인공 냄섯이 원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는 것 뿐인데, 이것이 이토록 어려운 바람이어야 하는가. 
 
  
 
 
약소국 독립 국가 아이티 흑인 여성 스파이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사랑(인류애)라고 말하는 <폐수 엔진>, 지구 환경 오염으로 인해 지구에 남거나 우주 행성으로 옮겨야하는 선택지에서 고민하지만 과학이 아닌 자연으로 삶의 터전을 지켜야함을 전하는 <용 구름이 뜬 하늘>, 인류의 기술 개발로 불가능한 것이 없게 되었으나 인간은 그것을 덥석 움켜쥐어도 되는 건지를 고민하게 하는 <연금술사>,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디폴트 값들이 성장의 필요성을 각성하며 실재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트로이 소녀>, 어린 육체를 상대로 정신 이식을 통해 육체를 바꿔가며 젊음과 영생을 유지하는 마스터들이 증장하는 <깨어서 걷기>, 뉴욕 대도시를 떠도는 죽음. 이 살벌하고 메마른 현대 사회에서 빌딩 숲을 떠도는 것이 과연 죽음뿐일까라는 물음표를 놓는 <렉스 강가에서>,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사고 속에 노출된 삶 속에서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현대인의 강박 <비제로 확률> 등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196.
스스로를 수리하지 말라. 인간 지성의 최고치를 능가하지 말라. 쓰거나 복제하지 말라. (트로이 소녀)  

 
  
 
마음에 와 닿았던 작품은 <퀴진 드 메므아>였다. 프랑스어로 '추억의 부엌'. 
헤렐드는 친구 이베트의 권유로 테마 레스토랑 메종 라보를 방문한다. 누구나 아는 역사적인 일, 혹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도 기본적인 정보만 제공해 주면 추억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메종 라보. 헤럴드는 의구심을 갖지만 과거 전처 앤젤리나가 해준 음식을 주문하고 맛을 본 후 당황한다. 앤젤리나를 그리워하던 헤럴드는 메종 라보를 재방문할 것을 확신하지만 직원과의 대화 후 상념에 빠지고 그는 재방문 대신 앤젤리나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가 삶의 매순간 바라보아야 할 것은 지나간 추억이 아니라 현재라는 것, 회한으로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된다는 것. 
 
 
이름만 들어봤던 작가였고 언젠간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신간이 출간되어서 첫 책으로 만났다. 이 작가의 장편을 진득하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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