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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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시리즈를 이제야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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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꾼들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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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중.단편 소설집이다.
작품들을 읽다보면 언뜻 필립 로스가 떠오르는데, 작가는 미국 시민 개개인의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위기를 동시대에 고려해봐야할 사회적 문제들과 연관지어 풀어놨다. 노인 부양, 비혼모, 경제적 위기, 성 정체성과 그에 대한 관습 및 고정관념, 학업과 직업의 괴리, 고용 불안정 등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은 보편적 문제들에 대해 풍자적이면서도 담담하게 썼다.  
 




 


눈치 없는 두 남녀를 등장시킨 한 편의 코미디같은 [변화무쌍한 뜰]에서는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한 집 혹은 한 식탁에서 생활하고 공간을 공유하지만 정작 마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을 꼬집고 있다. 그 연장선에 있어서, 사랑과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것을 소모적이라고 여기며 자식을 오로지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베이스터]의 토마시나, 그리고 사랑과 결혼을 통해 자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토마시나와 크게 다르지 않는 윌리 마스를 통해 감정이 결여된 인간 관계를 말한다. 



[항공우편]에서는 명상을 통해 마음을 통제하는동양의 종교에 매료되어 순회 여행을 하고 있는 미첼에게 내면의 자아를 뒤로 밀어놓은 채 경쟁과 성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는 현대인을 투영한다. 미첼이 그웬돌린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신비한 힘이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팜베이 리조트]에는 도시 유목민을 볼 수 있는데 몸은 점점 노후되고 질병도 찾아오지만 여전히 삶은 녹록치 않다. 어디에도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곳은 없다.  



우리는 언제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사회적 관습이나 잣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신탁의 음부]는 양성 인간으로 태어난 펠리시티 케닝턴과 인도네시아 동쪽 끝에 있는 이리안자야의 다왓족을 통해 신체적 및 정신적 성性 정체성은 문화와 관련된 사회적 개념임을 말하면서 어떤 기준에서든 성 정체성은 대체로 선천적이거나 혹은 영아 시기에 결정됨으로써 개인의 선택이 아님을 말한다.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성소수자들을 억압하고 학대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따지고 보면 성의 구분 역시 인류가 탄생하면서 다수의 무리가 세워놓은 잣대에 불과하지 않은가. 소아성애와 강간같은 강력범죄만 아니라면 어떤 성의식에도 개방적이라고 자부하는 루스 박사도 정글의 소수 부족의 성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현대인들 또한 다수의 무리가 속해 있는 성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성 정체성까지 강제한다. 이는 [신속한 고소]에서 스스로 성범죄 피해자가 되게 만드는 여성차별까지 아우른다. 



[고음악]과 [불평꾼들]에서는 사회에서 무용지물로 전락한 계층이 등장한다. 음학학 석사 학위까지 취득한 부부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음악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면서, 이는 일시적인 임시방편일 뿐이며 그럭저럭 괜찮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시키지만 음악학 전문가로서 음악을 하지 않는 자신들이 사회에서 미미한 존재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포기 하고 생계 전선에서 더  많이 벌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현실은 베이비시터 고용 비용이 부부의 수입보다 더 크다.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있을 거라고 자조하는 레베카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인생에 막연한 기대를 걸며 살고 있다.



격동의 시대에 경제 고성장을 거치며 살아온 세대들은 경제적 성과를 이룬 것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노년이 되어서 자식들에게 비용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불평꾼들]에서 델라의 아들들은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늙은 어머니를 좋은 시설로 옮길 수는 있지만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캐시가 델라를 양로원에서 데리고 나와 델라의 집으로 데려다 주고 함께 사는 이유가  젊은 시절, 가족과 제대로 친밀감을 쌓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인디언들은 삶의 지혜와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전수하는 노파들을 남겨두고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늙은 부모를 남겨두고 떠나는 원인은 늙은 그들의 인과응보일까, 아니면 삶이 팍팍해지는 사회적 현상일까?



[위대한 실험]의 주인공 켄들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정직하게 6년간 근무하면서 고용주 지미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의료보험가입이었다. 그러나 지미는 실직을 무기로 일언지하에 거질한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 정부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후기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면서 극심하게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불평등을 지적한다. 민주주의 안에서 평등을 말하건만 현실은 봉건세습제와 다를 바 없는 경제구조. 세계의 모토는 부자되세요지만, 사람들은 부모 세대 즉 이전 세대만큼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갈수록 먹고사니즘에 매달려야 하고 노력만으로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도시 재생을 명분으로 낡은 집들을 헐고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주거 공간을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원한다고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회 불균등 상황에서 횡령과 회계 부정을 막기 위해 도덕성과 정직만을 강요한다고 해결될 일일까? 결국 복권이든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인생의 강력한 한 방을 꿈꾸며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심지어 정부는 법 테두리 안에서 도박을 부추기기까지 한다(국가에서 일확천금을 부추기다니!). 소설에서 약자에 속하는 켄들은 부정조차 저지르기 어렵다. 작가는 금권정치 국가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사랑이란 돈도, 자식도, 비슷한 인생관도 아닌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살펴 주는 것, 서로에게 소소한 친절을 베푸는 것이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손을 잡아 주는 것,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안부를 물어주는 것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은 따뜻한 마음과 위로만으로 살아남기에는 너무나 거칠고 폭력적이다. 더 큰 이해와 예의가 필요하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예의, 공정과 평등을 지킬 줄 아는 예의, 양심을 지킬 줄 아는 예의 말이다. 


필립 로스에게 낭만이 있다면, 제프리 유제니디스에게는 번득이는 날카로움이 있다. 격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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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을유세계문학전집 112
요시야 노부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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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소녀시대다.

1936년에 집필한 이 소설은 여성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와 차별, 그리고 십대 소녀들이 경험하고 느낄만한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여중고에 재학했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서로에게 특별히 친밀한 교우관계를 맺고 싶은 대상, 동경의 대상이 되는 학생, 어떤 형식으로든 형성된 파벌,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미치는 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계급 의식 등 학교는 축소된 사회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900년대까지 팽배했던 남성우월주의와 남아선호사상이 마키코의 아버지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마키코의 아버지만큼은 아니었지만 우리 할아버지도 남동생과 나를 차별했었다. 덕분에 부모님은 나를 지키기(?) 위해 역차별 아닌 역차별을 했지만 남동생은 그 나름대로 차별이라고 한때 주장했었다. 아무튼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이제는 납득한다. 여중고를 졸업한 나는 세 명의 주인공이 느꼈을 법한 감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무슨 '데이'라는 이름이 붙은 날 혹은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면 그날의 주인공들은 교내에서 키 크고 체육을 잘하는 보이시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공부 잘하고 예쁘고 똘똘해서 말도 잘하고 선생님한테 사랑받는 동급생에 대한 질투는 그 형태가 동경이든 미움이든 보이지 않게 늘 존재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유게 씨의 변화가 현실을 반영한 결과인지 아니면 작가의 바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21세기까지도 여성 차별이 여전한 것을 보면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뿌리내려왔는지 짐작할만 하다. 그럼에도 내가 통과했던 한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생각이 컸기에 이 책을 무겁게 읽지는 않았다.

책에 첨부되어 있는 작가의 연보를 읽어보면 남성 중심 사회를 깨부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30대 후반에 쓴 <남편의 정절>이라는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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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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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작 <나를 보내지 마>에서 복제인간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AF(Artificial Friend)가 바라보는 인간성 상실과 존재의 의미를 사랑과 위로, 이해와 공감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인간의 사소한 몸짓과 표정, 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 알아차리는 클라라는 기존의 모델들 뿐만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모델들 중에서도 특별한 AF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조시는 클라라를 한눈에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간다. 소설 초반에서 새로운 모델로 바뀌어 폐기처분될 것을 우려하는 AF들의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는 더 나은 삶과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향상'을 선택한 조시와 '향상'을 포기한 릭을 통해서 과학기술의 힘으로 인간의 고유성을 잃어가는 인간 사회의 모습과 일치시킨다.  

조시의 건강이 악화되는 이유가 쿠팅스 머신이 분출하는 공해에 있다고 판단한 클라라는 기계를 파괴하겠다고 작정하지만 인간의 편리함과 AF를 생산해 내는 힘도 기술 및 기계 발달에 있다. 크리시는 샐과 조시에게 최고의 삶을 주고 싶어 딸들을 향상시켰지만 생명을 담보로 했다. 기술의 발달을 추종하는 부류들과 다르게 한쪽에는 노동력과 인간이 누려야할 권리를 빼앗는 AF를 비난하는 무리들이 있지만 이것 역시 인간이 창조한 결과물이다. AF의 능력에 서서히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들과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인간들 사이에 반목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처럼 작가는 모순에 빠진 인간 사회를 지적하고 있다. 이중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타난다.     
 
 




폴은 클라라에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냐고 묻는다. 클라라는 인간의 마음이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기에 배울 수 있다고 대답하지만, 헬렌과 밴스의 만남에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애증과 이후 미래를 향해 전진해가는 조시와 릭을 목격하면서 폴이 이야기했던 복잡한 인간의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의 마음에 한계가 있다면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카팔디의 주장도 생각해봐야 할 터다. 인간의 고유성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무지로 인한 일종의 미신에 불과한 것일까? 카팔디는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 즉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사랑, 희생처럼 숭고한 정신을 발휘하는 인간의 정신력은 그저 환각이나 도취에 불과한 것일까?

방안에서 블라인드로 태양을 가리고 피해다녔던 조시. 그러나 클라라는 조시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해의 특별한 자양분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조시는 태양에 노출됨으로써 기력을 회복했다. AF 클라라의 에너지원 역시 태양이다. 이는 자연과의 공존을 의미한다.

폴은 증명 가능한 과학이 지배하는 현재의 세상을 엉망진창이라고 표현한다. 과학기술의 최고 결정체인 AF가 과학의 결과물인 향상 인간의 구원을 태양에게 호소하는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클라라가 태양에게 호소하며 내놓은 타당성은 사랑과 희생이다. 인간 개개인이 갖는 특별한 무언가는 당사자가 아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즉 주고받는 감정, 상호작용에 있다는 것.

더 나은 유전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개별성를 인정하고, 사랑과 존중으로써 유한한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모든 생명체의 공존을 지향하는 세상. 클라라가 인간 세상에게 던지는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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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3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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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1부 주인공은 단연코 마리우스다. 마리우스 아래에서 야망을 숨기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는 술라 역시 남다른 면모를 나타내지만 마리우스에게 대적할 인물은 적어도 이 시기에는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참패해 로마로 보내진 유구르타의 말에 의하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열정, 담력, 두뇌, 불멸, 심지어 행운까지 갖춰 반듯하고 전쟁의 전체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술라는 전형적인 계급의 산물로서 속도와 순발력이 빠르고 전투적 능력이 뛰어나지만 면밀함과 인내심이 떨어지고 진정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대단한 권력욕이라고 할 수 있겠고, 술라에게는 있지만 마리우스에게 없는 것은 정치적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사회에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 계급과 파벌이다. 스스로 원로원이 로마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구성됐고, 평민들은 하찮고 로마를 통치할 자격이 없으며 시민을 대표하는 호민관의 진정한 의무는 평민들에게 종속적인 역할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원로원 의원들. 자칭 로마의 가장 위대한 집단에 속해있다는 자들이 고작 의제랍시고 내놓은 안건은 국가와 시민의 안녕이 아닌, 원로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평민(과 평민 출신 귀족)들을 폄훼하고, 정치적 성향이 다른 동료를 비난하며 고작 품위와 에티켓 따위를 들어 원로원을 절대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연설이나 하고 있다. 또한 동료의 부정부패를 알면서도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쁜 기득권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마리우스가 제시한 아프리카 도서지역의 토지법이다. 글라우키아의 말처럼 국가 소유의 땅을 마리우스의 생색내기와 그곳에 정착한 하층민이 자연스럽게 마리우스의 피호민이 되어 세력을 넓히는 구실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하층민을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정착시키는 마리우스의 방안을 개인의 사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렵다. 그러한 욕심이 마리우스의 야망에 기반한다 하더라도 수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가의 재물을 횡령해 은닉한 카이피오에 비할까. 카이피오는 아라우시오 전투에서 전멸을 당하고 현장에서 이탈한 죄가 아닌 횡령죄로 기소당했다. 로마는 사실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패전한 장수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로마인에게 더 큰 죄는 전쟁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도덕성의 결함이라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3권에서는 공병과 보병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로마군의 로마의 가도 건설과 전투시 작전 수행 능력, 로마군이 사용하는 투창을 비롯한 무기의 외형과 용도, 그리고 로마에게 있어서 최대의 난적이었던 게르만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간혹 우리나라 사극에서도 등장하는데, 로마군은 대규모 전투에 나가기 전에 총사령관의 연설을 듣는다. 이는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뿐만 아니라 일개 병사에게까지 승전 전략을 알림으로써 병사 개개인이 수행해야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큰 혼란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생각해 전투에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컸다. 로마군이 그동한 숱한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마리우스와 술라 뿐만 아니라 야망을 이루려고 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사투르니누스는 전쟁이 아닌 정치로서 로마의 일인자를 꿈꾸는 자다. 사실 그와 글라우키아가 제안한 법들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공명심이 부재한 욕망떄문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루푸스의 주장이다. 그는 세상을 바뀌기 위해 정치에 몸담는 자들, 능력과 이타주의를 내세우는 자들이야말로 진짜 해를 끼치는 자들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면서. 

 
아우렐리아를 통해 로마의 하층민의 주거지역인 수부라와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직업군, 부동산의 매매 및 임대 방식, 인술라의 구조와 건물에 부과된 세금, 그리고 악덕업자들로 인한 영세상인의 피해 등 일반 서민들 역시 현대사회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부분들이다. 사족으로 시오노 나나미에 의하면 카이사르가 수부라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인술라가 아닌 단독주택이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마 이 소설에서 아우렐리아가 인술라 내에서도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을 리뉴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는 아우렐리아가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을 단독주택처럼 개조한 것으로 본 것이 아닐까하는 내 나름의 추측을 해본다.


아우렐리아가 나왔으니 3권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도 이야기해보자면  그토록 남편의 사랑을 갈구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동성애를 목격하고 자살을 선택한 율릴라, 약혼자가 전사하자 예비 시아버지였던 50대 최고의원 스카우루스와 결혼한 17세 달마티카를 보자면 여성 독자인 나는 또다시 푸념을 늘어놓게 된다. 그나마 (문학이라 더욱) 현명하고 긍정적이며 강인하게 그려진 아우렐리아 덕분에 조금은 위안을 얻었다고 해야하나... . 
 

노년의 마리우스는 중.장년 때보다 권력의 맛에 더 빠져든다. 여섯번의 집정관과 독재관을 지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군증심리를 이용한 사투르니누스의 치졸한 정치 방식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역시 권력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 내로남불이다. 마리우스가 군중에 대해 술라에게 하는 이야기, 군중은 거대하고 온순한 황소같아서 언제나 여물통만을 따르게 되어있다는 말이 한편으로 불쾌하면서 일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씁쓸해진다. 굶주림을 해결해주겠다는 사투르니누스를 영웅처럼 떠받들더니, 시위에 참여했던 이들의 죽음을 구경하겠다고 나온 군중의 심리를 한쪽 면만 보았던 사투르니누스의 어리석음이여... . 
 

마지막으로 미래에 로마의 판도를 뒤바꿀, 공화정 시대를 막을 내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났다. 그리고 아마도 2부는 술라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마리우스와 술라의 달라질 운명을 기대하며 1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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