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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개정판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21년 4월
평점 :
청년시절 중국 문화혁명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통과해 중년으로 접어든 대학 동창생들과 그 자식들이 등장해 과거로부터 이어진 갈등과 그 원인을 고민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역사적 사건보다는 인물의 서사와 심리, 신념과 갈등의 본질적인 문제를 인간성 회복과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풀어나간다.

등장인물 중 시류와 허징푸의 대립은 극명하다. 시류는 역사를 추진시키는 것은 인민, 계급투쟁, 당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하층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을 온몸으로 체화한 허징푸는 시류가 일컫는 그 모든 것들의 기반은 휴머니즘, 즉 인간성 회복에 있다고 강조한다.
신념을 버리고 권력에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는 쑨웨는 모순으로 가득차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생이 고통스러우나 한편으로 그러한 것들이 자신을 달련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이 속에서 인생의 귀중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진지한 사색을 통한 즐거운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뿌리가 깊지 못함을 자조하면서 그 해답을 허징푸에게서 찾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에서 쑨에게 있어 허징푸는 연모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찾아가는 열쇠로 비춰지고 있다.
허징푸는 자신이 신봉하던 이념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시류의 변한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쑨웨에게 맹목적인 것과 확고하다는 것은 다르며 회의와 신념은 양립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 더불어 쑨웨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녀가 교실과 책에서만 신념을 키웠기 때문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실천적 계급 투쟁에 임했음을 상기시킨다. 즉 실천을 통한 경험이 부재한 신념의 나약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회주의에 국한한 명제일까? 현재 정치인들의 면면은 시류나 쑨웨와 다르지 않다. 선거철에만 서민들의 삶의 현장에 찾아가 몇 시간 체험할 뿐 그들의 삶에 뛰어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같은 연장선에서 젊은 세대에 속한다는 2030 정치인들이라고 다를까? 과연 입법자들 중에 대다수 국민들의 삶에 진정성있게 스며들어본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허징푸는 자신이 저술한 책을 통해 인간성과 개성의 가치와 중요성, 그리고 혁명과 진보를 통한 인간의 가치 실현을 주장한다. 그가 치징하는 개성과 휴머니즘은 부르주아 계급의 특정 소수가 아닌 전 인민,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인민의 낙후를 비난하는 지식인들을 향해 쑨웨는 일침을 가한다. 작금의 문제는 인민에게 있지 않다고. 등장인물들은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냉혹한 교훈을 얻고 그 자리에 있다. 그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그들의 어깨 위에 자신들의 얼굴이 붙어있느냐는 것, 즉 중년으로 접어드는 자신들에게 자아가 확립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미래의 희망은 시왕과 쑨한으로 상징된다. 쑨웨는 딸 한을 바라보며 이상을 추구하고 삶의 의의와 목적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남기게 될지 물음표를 놓아둔다. 허징푸는 시왕에게 창조와 개혁을 실현하는 용기, 원대한 세계를 지향하는 자세와 더불어 인식을 실천으로 옮길 때는 가능한한 몸을 낮추고 사물을 좀 더 자세히 살피라고 조언한다. 방관자, 실패한 개혁가, 변절한 위정자 세대인 자신들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시왕과 쑨한 역시 크고 작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위정자들은 수단을 가지리 않는데, 혁명가들은 군자의 예(정의)에 입각해야 하는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개성은 해방될 수 있는가? 혹은 해방되어야 하는가?
앞으로 시왕이 안고 가야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허징푸에게서 루쉰가 신영복 선생이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연대를 중요시 했던 신영복 선생, 젊은 세대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성세대는 엎드려 그들이 밟고 갈 등을 내려놓으라고 일갈했던 루쉰.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흔쾌히 등을 내어주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