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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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일이란 종교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이 되어야 한다는 아이다의 담백한 말이 크게 와닿는다. 이 거칠고 속임수가 난무한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정의와 인류애라는 것. 묵직한 누와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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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과 이사벨라는 거리에서 우연히 두 사람의 오빠들과 만난다. 존 소프와 제임스 몰랜드. 처음 인사를 나눈 이사벨라와 제임스의 분위기가 말랑말랑하다. 그리고 존과 캐서린의 대화, 둘은 시작부터 안 맞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외모 평가, 어머니와 두 동생들에게 던지는 예의없는 말투와 태도, 존은 심하게 비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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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 네트워크
챈들러 베이커 지음, 이동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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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의류 브랜드 트루비부의 법무팀이 배경인 소설은 다섯 명의 여성 등장인물을 통해 현재 직장인으로서 여성이 갖고 있는 장애와 한계, 고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 역시 오랜 시간동안 직장 생활을 해왔던만큼 충분히 공감되는 내용들이었다. 흡입력이 있고 가독성이 좋음에도 소설의 내용을 들어 감히 재미있다는 표현을 쓰지는 못하겠다. 과거 에임스와 불륜 관계였던 슬론에 대해서는 시작부터 밝히지만 이후 줄줄이 달려나오는 에임스의 추태와 악행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부 독자들은 슬론의 경우 합의 하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냐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에임스와 슬론의 관계는 그 이후가 문제다. 그리고 에임스가 그레이스에게 부탁이라는 말로 포장한 강요 역시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연장선에 있다. 불륜 문제에 있어 여성이 약자일 수 밖에 없는 약점, 유리 천장에 부딪치며 직장생활을 해야하고, 승진과 연봉을 무기 삼아 협박 아닌 협박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성추행같은 물리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이중고를 겪는다.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성취와 자녀의 양육과 교육 등 가정 생활에서 오는 부담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비율로 따져본다면 그 변화를 체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설 속 인물들의 말처럼 늘 죄책감을 안고 일을 해야하는 쪽은 여성이다. 모유 수유를 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직접 양육하지 못하고 보모를 고용한다는 것에 대해, 보육시설에 맡겨야 한다는 것에 대해 등등 그 모든 죄책감의 몫은 여성이다.   
  


에임스는 직장에서 여성 동료를 능력이 아닌 외모를 기준으로 판단하는데, 이 맥락은 슬론의 딸 애비게일이 학교에서 당하는 성추행과 아주 유사하다. 초등학생 남학생이 여학생의 속옷을 만지는 것에 대한 언급은 입 아픈 얘기이므로 굳이 하지 않겠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에 대한 학교장의 대응 방식이다. 서너명이 집단으로 따돌리고 단체 채팅방으로 불러들여 욕설을 내뱉는 것이 그 나이대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고, 남학생들의 도를 넘는 장난을 피해자 아동이 예뻐서 가해 학생의 관심어린 표현이니 무시하라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해결 방법을 찾아야하는 방식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남성들의 다양한 반응이다. 아내의 경제적 능력에 많은 부분 기대는 데릭은 아내 슬론이 딸의 성추행 가해자를 고소하지 못하게 막고, 직장 동료들은 최고 경영자가 될 임원을 성추행으로 소송한 세 여성에게 언어폭력으로써 테러를 가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사망하자 성폭력 피해자를 졸지에 가해자로 몰아가면서 사건의 본질은 사라지고 누군가가 '죽었다'는 결과만 남게 된다.  
 


혹독한 현실에서 그들이 기대고 의지한 대상은 사실 가족이 아닌 연대였다. 슬론이 에임스의 승진 자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시점은 자신이 피햬를 당했을 때가 아닌 시입사원 캐서린이 에임스의 눈에 들었고 곧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아챘을 때였다. 그리고 무상으로 로살리타의 아들 살로몬에게 과외를 해준 아디는 이혼 후 헛헛함을 살로몬의 성장을 통해 위로받는다. 
 


소설에서 언급한 모든 에피소드들이 전혀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직장 생활을 접은지 꽤 오래됐지만 지금의 분위기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득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직장 동료가 생각났다. 출산 휴가 3개월을 채우지 않고 출근한 그녀는 그 사이 자기 책상이 사라졌을까봐 내내 불안했다며 급하게 서둘러 복직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나 영세 소규모 회사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서둘러 복직했던 옛 동료는 지금도 회사에 남아있을까? 
 


미스터리 형식을 취한 소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진실을 마지막에 드러내는데, 이 역시 독자를 딜레마에 빠뜨린다. 이 소설의 결말은 작가가 아닌 우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이 써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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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글에 대한 틸니의 지적은 다소 불편하다. 물론 남성에 비해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그에 대한 원인은 여성의 교육에 재한을 둔 제도를 문제삼아야 될텐데, 남성들과 다른 문장력을 가진 여성들을 넌지시 비난한다. 이 남자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 더 지켜봐야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깊은(?) 속내가 반전인 경우가 많았 듯 아직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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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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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이에게 청혼을 받고 그를 따라 고베에서 도쿄로 이사 온 가호는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낯선 도시에서 남편은 늘 바빠 얼굴조차 마주할 시간이 없던 차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소꿉동무 히라이와 도시아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집에 초대받아 일요일에 방문한다. 그런데 집안 곳곳에 뿌려져 있는 모래,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짙은 다크서클로 어두운 인상을 풍기는 갸날픈 그의 아내 아즈사로 인해 가호는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모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도시아키, 두려움이 가득한 낯빛의 아즈사, 때마침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하시구치 가족이 야반도주 한 이후 유령의 집이라고 불리며 방치된 빈 집에 개구장이들이 탐험에 나섰다. 몰래 거실에 발을 들여놓은 후 이층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쫓아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 발에 밟히는 모래.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건만 2층에서 TV소리가 들려오고 모래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면서 아이들은 하나둘 이상증세를 보인다. 그들은 유령의 집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못했던 한 가족의 실체.
 
 




작가의 <보기왕이 온다>를 읽었을 당시 그야말로 정통 호러소설이라고 느꼈었는데, 이 작품 역시 시작부터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개인적으로 영화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르다). 읽는내내 책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싶어 몸은 오그리고 책은 반만 펴고 있었다는. 일단 호러소설로서의 역할은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다.  
 
소설은 '집'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 안에 사는 가족 구성원을 통해 물질지향주의에서 비롯된 현대인의 소외와 외로움을 짚어내고 있다. 집단 혹은 타인의 가치에 매몰되어 수동적 패턴이 익숙하고 편안한 개인은 자신의 생각이 강요되어진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로 점점 더 현실과 환각의 경계에서 헤맨다. 여기에는 가족이 한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할 뿐 개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가족의 풍토를 꼬집고 있다. 슈퍼 워킹맘, 내조의 여왕, 가장으로서의 권위,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가장, 교양있는 노후를 보내는 조부모,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외모까지 번듯한 모범생 자녀 등 이상적으로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을 강요받고 있음이다. 그러나 그안에는 진정성있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남편의 전근으로 낯선 도시로 이사온 가호는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 그 집과 동창 부부에게 두려움을 느끼지만 발길은 자꾸 그들의 집으로 향한다. 왜일까? 존재감없이 늘 우두커니 남편만 기다리고 있는 가호의 바람은 남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한켠에서는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고 자존감을 높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자기계발과 시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4인 가족(혹은 3인 가족)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과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위치, 그리고 주기적인 여행과 여가 활동이 가능하며 중형 평수의 아파트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평균'의 기준에 도달한다고 여기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이러한 잣대에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 근거없는 기준이 팽배해져 있는 사회에서 '사람'은 그저 원만하고 번창하는 가정을 꾸리는 부속품에 불과함을 꼬집고 있다.  
 
그렇다면 시시리바의 집에 산재해 있는 모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시시리바의 집에 처음 간 사람은 침대, 음식, 의자, 바닥에서 서걱거리는 모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별 상관없는 태도를 보이다고 결국에는 일상의 한 부분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것들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를 묻는다.  
 
이기기 위해서 누군가를 짓밟고,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양심을 외면하고, 폭력을 정당방위라고 눈속임하고, 다수의 집단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포장하는 모습이,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지금이, 당연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족.
작가가 독자를 여러번 들었다 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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