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글에 대한 틸니의 지적은 다소 불편하다. 물론 남성에 비해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그에 대한 원인은 여성의 교육에 재한을 둔 제도를 문제삼아야 될텐데, 남성들과 다른 문장력을 가진 여성들을 넌지시 비난한다. 이 남자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 더 지켜봐야겠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의 깊은(?) 속내가 반전인 경우가 많았 듯 아직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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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리바의 집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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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이에게 청혼을 받고 그를 따라 고베에서 도쿄로 이사 온 가호는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낯선 도시에서 남편은 늘 바빠 얼굴조차 마주할 시간이 없던 차에 우연히 지하철에서 소꿉동무 히라이와 도시아키를 만나게 되고 그의 집에 초대받아 일요일에 방문한다. 그런데 집안 곳곳에 뿌려져 있는 모래,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짙은 다크서클로 어두운 인상을 풍기는 갸날픈 그의 아내 아즈사로 인해 가호는 불편한 기분을 느낀다. 모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도시아키, 두려움이 가득한 낯빛의 아즈사, 때마침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하시구치 가족이 야반도주 한 이후 유령의 집이라고 불리며 방치된 빈 집에 개구장이들이 탐험에 나섰다. 몰래 거실에 발을 들여놓은 후 이층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쫓아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 발에 밟히는 모래. 그리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이건만 2층에서 TV소리가 들려오고 모래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면서 아이들은 하나둘 이상증세를 보인다. 그들은 유령의 집에서 어떻게 빠져나왔을까?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못했던 한 가족의 실체.
 
 




작가의 <보기왕이 온다>를 읽었을 당시 그야말로 정통 호러소설이라고 느꼈었는데, 이 작품 역시 시작부터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개인적으로 영화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르다). 읽는내내 책에서 뭔가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싶어 몸은 오그리고 책은 반만 펴고 있었다는. 일단 호러소설로서의 역할은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다.  
 
소설은 '집'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 안에 사는 가족 구성원을 통해 물질지향주의에서 비롯된 현대인의 소외와 외로움을 짚어내고 있다. 집단 혹은 타인의 가치에 매몰되어 수동적 패턴이 익숙하고 편안한 개인은 자신의 생각이 강요되어진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로 점점 더 현실과 환각의 경계에서 헤맨다. 여기에는 가족이 한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할 뿐 개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가족의 풍토를 꼬집고 있다. 슈퍼 워킹맘, 내조의 여왕, 가장으로서의 권위, 경제적 능력이 뛰어난 가장, 교양있는 노후를 보내는 조부모, 학업 성적이 뛰어나고 외모까지 번듯한 모범생 자녀 등 이상적으로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을 강요받고 있음이다. 그러나 그안에는 진정성있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남편의 전근으로 낯선 도시로 이사온 가호는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의 집을 방문하고, 그 집과 동창 부부에게 두려움을 느끼지만 발길은 자꾸 그들의 집으로 향한다. 왜일까? 존재감없이 늘 우두커니 남편만 기다리고 있는 가호의 바람은 남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한켠에서는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고 자존감을 높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자기계발과 시간을 공유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4인 가족(혹은 3인 가족)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과 사회적 집단 내에서의 위치, 그리고 주기적인 여행과 여가 활동이 가능하며 중형 평수의 아파트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평균'의 기준에 도달한다고 여기는,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이러한 잣대에 우리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작가는 이렇듯 근거없는 기준이 팽배해져 있는 사회에서 '사람'은 그저 원만하고 번창하는 가정을 꾸리는 부속품에 불과함을 꼬집고 있다.  
 
그렇다면 시시리바의 집에 산재해 있는 모래는 무엇을 의미할까? 
시시리바의 집에 처음 간 사람은 침대, 음식, 의자, 바닥에서 서걱거리는 모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별 상관없는 태도를 보이다고 결국에는 일상의 한 부분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것들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를 묻는다.  
 
이기기 위해서 누군가를 짓밟고,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양심을 외면하고, 폭력을 정당방위라고 눈속임하고, 다수의 집단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포장하는 모습이,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지금이, 당연한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족.
작가가 독자를 여러번 들었다 놨다 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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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로라 대소 월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돌베개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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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주의자, 초월주의자, 자연주의자, 반인종차별주의자, 반자본주의자, 개혁가 등 숱한 수식어가 붙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45년 생애를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소로의 작가로서의 생애를 추적한다는, 이 책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자연과 사회정의를 대변하는 소로의 짧지만 열정적인 삶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다.   
 








<월든>으로 익히 잘 알려진 소로가 자연주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추적한 소로는 자연주의,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과 우주, 철학, 과학을 아우르는 범우주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통찰한다. 유년시절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 탐방, 답사, 야영, 여행,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던 인디언들 삶의 방식에 이입하며 깊은 관심과 실행을 거두지 않았다. 소로가 자연과 우주에 품은 경이로운 감정과 이상향은 책의 곳곳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 영감과 진정한 휴양을 위해, 문명화를 위해 나무를 뿌리째 뽑고 야생 동물을 학살하며 숲을 짓밟는 것에 분노를 느끼면서 우리의 삶은 정말로 순수한지, 그리고 우리가 인간적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한편으로는 자연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언어에 한계를 느낀다. 그는 자연의 생명체에게 조금이라도 불필요하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단언했을만큼 급진적인 자연주의자였다.



개혁가이자 정치가로서의 소로를 보면 초월주의자였던 그에게 반제국주의와 반인종차별주의는 무관하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민자 출신의 자손으로서 누구보다 약자의 입장을 잘 알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자신이 프랑스 출신이라는 것에, '양키'와 다르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을 만큼 백인우월주의에 혐오를 가졌던 소로는 노예제 반대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소로의 배경에는 가정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소로의 집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정류장이었고, 소로 집안의 여성들도 콩코드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을 주도했다(콩코드에서는 노예제 반대 운동을 여성들이 주도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가 그를 초월주의자로 이끈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다 하버드에서는 학문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ㅡ경제 능력, 종교, 직업,  정치, 신념 등에 따른ㅡ을 만나고 경험했는데, 이것이 학문 이상으로 가치 있는 교육이었다고 작가는 판단했다.



반제국주의자였던 소로는 미국 정부의 소수민족 억압과 전쟁을 단호히 반대하며 저항의 의지로 세금(인두세) 납부를 거부한다. 소로는 납세 거부때문에 하루동안 감옥에 갇히는데 오히려 감옥 안에서 가난으로 인해 죄인으로 내몰리는 서민들을 만나면서 그의 의지는 더 단단해졌고, 1832년 여행 당시를 비롯해 이후 여행에서 만나는 인디언들을 통해 백인들에게 밀려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보호 구역에서 갇혀 사는 잔인한 정치사를 실감했을 것이다. 또한 서부 금광 시대를 맞아 인디언을 야생 짐승으로 여기고 학살한 백인 황금광들의 행위, 그리고 총 대신 펜으로 학살자들에 버금가는 행위를 한 역사가들의 비인간성을 개탄했다. 그의 저서 <시민 불복종>을 읽다보면 그가 하고자 하는 말과 의도를 알 수 있다.  
 

기술자, 사업가로서 가업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소로의 면모도 의외였다. 흑연을 이용한 품질 좋은 연필을 개발해 사업에 성공하고, 땅에 관심이 많아 측량까지 섭렵해 결과적으로 생계 수단이 되어주었던 것을 보면서 소로는 다중지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인생의 곡선을 계획해야하는 21세기형 인재가 아니었나싶다. 쓰다보니 친자연주의,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범우주적 세계관을 가진 그가 현재에 살아서 능력을 발현했다면 19세기와는 다른 결과를 끌어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드러난 소로는 극단적으로 범우주적이며 자연주의적인, 말그대로 초월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의 강연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대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이를 통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와닿겠는가. <월든>이 당시보다는 단절된 세상을 살아가는 현재에 더 환영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소로가 사실 진정으로 열망한 것은 글쓰는 삶, 작가로서의 성공이었다. 에머슨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소로는 그의 집에서 2년 동안 미물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졌다. 다양한 영역의 책들을 독파해 나갔고, 크고 작은 모든 여행의 기록을 남겼고, 가능하면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그럼에도 소로의 책들은 대체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며 출판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몇 편의 여행 에세이와 9년 동안 다듬었던 <월든>이 판매 부수에서 성공을 올렸을 뿐이다. 그나마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출판한 자신의 책이 반품되어 책장의 2/3를 차지했을 때 느꼈을 낙담과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까. 현재 <월든>은 스터디셀러가 되어 필독서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사실 그에게는 많은 저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나를 포함한) 독자는 많지 않다. 단편적으로 헨리와 가까운 호손은 <월든>을 두고, 끝까지 읽을 정도로 결단력이 있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웃픈 그의 말에 혼자 씁쓸하게 웃었다. 소로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아팠을 사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재밌었던 건 소로가 친구로서 편하게 사귀기는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곤 했다.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하고,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념때문에 실생활에서 종종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감정 기복도 커서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할 때도 있어 그의 진정성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겠구나싶다. 특히 그의 인생 말년에 갈수록 죽을지도 모르는 병약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소로의 열정은 아집일까? 신념일까? 아니면 자연에 흡수되고자 하는 욕구일까?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결론은, 인생에 단 한순간도 자연과 야생을 놓은 적이 없었고 땅과 자연과 상생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던 그를 떠올려보면 그것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자연을,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사랑.




초월주의자, 자연주의자였지만 세속적 성공이라는 야망도 버리지 못했던 소로가 글쓰기에 압박감을 느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야심가였기에 때로는 대중에 맞추기도 했고 종종 자기 모순에 갈등했으며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자괴감에 빠져들었지만, 스스로 헤쳐나왔다. 소로를 이룬 것은 독서, 사유, 경험이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로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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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21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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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이라는 어린 소년이 갑자기 찾아온 행운으로 엄청난 유산 상속을 받게 되면서 시골 대장간의 도제에서 영국의 중심 도시 런던으로 나와 선진 교육을 받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은 이야기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이 소설에서도 예외없이 등장한다.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키우는 성마른 누나, 친형제보다 더 돈독한 측은지심으로 어린 핍의 마음 한 켠을 지켜주는 조 가저리, 부끄러움없이 돈을 따르며 처세에 능한 펌블추크, 자신 또한 입양된 처지임에도 가난한 핍을 낮잡아 취급하는 에스텔라,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처절하게 배신당한 아픔으로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미스 해비셤, 해비셤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는 탐욕스러운 그녀의 일가 친척들, 정도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매슈 포켓과 허버트 등이 핍의 인생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1부의 공간적 배경은 바닷가에서 30킬로비터 떨어진 강 하루의 습지대이고, 2부는 런던이다. 소설의 도입부는 교회 묘지에서 핍이 죄수와 맞닥뜨리고 그의 지시대로 소년이 죄수에게 음식과 줄칼을 가져다 준다. 죄수는 비록 다시 붙잡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핍에게 고마움에 대한 제 나름의 보답을 한다. 2부에서는 런던에 도착한 핍이 처음 마주한 것은 지저분한 시장과 감옥이다. 그리고 후견인이자 변호사인 재거스 씨의 사무실에는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사무적이고 냉정한 재거스 씨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수임료 뿐이다. 이처럼 소설은 두 공간적 배경을 두고 눈에 띄게 다른 모습을 보이며 대비를 이룬다.

인물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펌블추크처럼 오직 돈을 좇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의와 우정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는 조 가저리가 있다. 핍은 미스 해비셤의 저택에 드나들면서 현재보다는 더 넓은 세상을 꿈꾸게 된다. 조의 영향으로 순수하고 진정성있는 성정이 미스 해비셤의 눈에 들어 버락같은 행운을 얻어 런던으로 진출하지만 점점 더 허세에 물들어 가는 핍은 이미 '신사'가 된 것 마냥 자신이 조를 '향상'시키겠다고 말하면서 과거 성장했던 고향을 부끄러워하기에 이른다.

개인적으로 (싱)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조 가저리다.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는 주변 인물들을 보듬는다. 조을증이 있는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성마른 아내와 누나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해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 자리잡은 어린 처남을 위로하고 받아준다. 돈보다는 신의와 명예를 소중히 여기며 늘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자괴감을 느낀 채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확신을 안고 살았다는 어린 핍의 곁에 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른 한 명은 조 가저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비디다. 그녀도 조처럼 배운 것이 짧아 유식한 말을 할 주롬른다. 그러나 진실한 내면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고, 자긍심이 무엇인지 아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한 발 한 발 점점 더 아슬아슬해 보이는 핍의 회상을 다시 따라가 본다. 

(하)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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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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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칭한 작품. 그녀의 독특한 삶의 이력이 최고의 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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