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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로라 대소 월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돌베개 / 2020년 9월
평점 :
환경주의자, 초월주의자, 자연주의자, 반인종차별주의자, 반자본주의자, 개혁가 등 숱한 수식어가 붙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45년 생애를 고스란히 담은 책이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소로의 작가로서의 생애를 추적한다는, 이 책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자연과 사회정의를 대변하는 소로의 짧지만 열정적인 삶 전반을 살펴 볼 수 있다.

<월든>으로 익히 잘 알려진 소로가 자연주의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추적한 소로는 자연주의,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과 우주, 철학, 과학을 아우르는 범우주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통찰한다. 유년시절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마지막 순간까지 자연 탐방, 답사, 야영, 여행,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던 인디언들 삶의 방식에 이입하며 깊은 관심과 실행을 거두지 않았다. 소로가 자연과 우주에 품은 경이로운 감정과 이상향은 책의 곳곳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 영감과 진정한 휴양을 위해, 문명화를 위해 나무를 뿌리째 뽑고 야생 동물을 학살하며 숲을 짓밟는 것에 분노를 느끼면서 우리의 삶은 정말로 순수한지, 그리고 우리가 인간적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한편으로는 자연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언어에 한계를 느낀다. 그는 자연의 생명체에게 조금이라도 불필요하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단언했을만큼 급진적인 자연주의자였다.
개혁가이자 정치가로서의 소로를 보면 초월주의자였던 그에게 반제국주의와 반인종차별주의는 무관하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민자 출신의 자손으로서 누구보다 약자의 입장을 잘 알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자신이 프랑스 출신이라는 것에, '양키'와 다르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을 만큼 백인우월주의에 혐오를 가졌던 소로는 노예제 반대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소로의 배경에는 가정환경도 무시할 수 없다. 소로의 집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정류장이었고, 소로 집안의 여성들도 콩코드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을 주도했다(콩코드에서는 노예제 반대 운동을 여성들이 주도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가 그를 초월주의자로 이끈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거기다 하버드에서는 학문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있는 사람들ㅡ경제 능력, 종교, 직업, 정치, 신념 등에 따른ㅡ을 만나고 경험했는데, 이것이 학문 이상으로 가치 있는 교육이었다고 작가는 판단했다.
반제국주의자였던 소로는 미국 정부의 소수민족 억압과 전쟁을 단호히 반대하며 저항의 의지로 세금(인두세) 납부를 거부한다. 소로는 납세 거부때문에 하루동안 감옥에 갇히는데 오히려 감옥 안에서 가난으로 인해 죄인으로 내몰리는 서민들을 만나면서 그의 의지는 더 단단해졌고, 1832년 여행 당시를 비롯해 이후 여행에서 만나는 인디언들을 통해 백인들에게 밀려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보호 구역에서 갇혀 사는 잔인한 정치사를 실감했을 것이다. 또한 서부 금광 시대를 맞아 인디언을 야생 짐승으로 여기고 학살한 백인 황금광들의 행위, 그리고 총 대신 펜으로 학살자들에 버금가는 행위를 한 역사가들의 비인간성을 개탄했다. 그의 저서 <시민 불복종>을 읽다보면 그가 하고자 하는 말과 의도를 알 수 있다.
기술자, 사업가로서 가업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소로의 면모도 의외였다. 흑연을 이용한 품질 좋은 연필을 개발해 사업에 성공하고, 땅에 관심이 많아 측량까지 섭렵해 결과적으로 생계 수단이 되어주었던 것을 보면서 소로는 다중지능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인생의 곡선을 계획해야하는 21세기형 인재가 아니었나싶다. 쓰다보니 친자연주의, 반제국주의, 반인종주의, 범우주적 세계관을 가진 그가 현재에 살아서 능력을 발현했다면 19세기와는 다른 결과를 끌어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드러난 소로는 극단적으로 범우주적이며 자연주의적인, 말그대로 초월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의 강연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대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힘을 가진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이를 통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와닿겠는가. <월든>이 당시보다는 단절된 세상을 살아가는 현재에 더 환영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소로가 사실 진정으로 열망한 것은 글쓰는 삶, 작가로서의 성공이었다. 에머슨이 동경의 대상이었던 소로는 그의 집에서 2년 동안 미물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졌다. 다양한 영역의 책들을 독파해 나갔고, 크고 작은 모든 여행의 기록을 남겼고, 가능하면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그럼에도 소로의 책들은 대체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며 출판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었다. 몇 편의 여행 에세이와 9년 동안 다듬었던 <월든>이 판매 부수에서 성공을 올렸을 뿐이다. 그나마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출판한 자신의 책이 반품되어 책장의 2/3를 차지했을 때 느꼈을 낙담과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까. 현재 <월든>은 스터디셀러가 되어 필독서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사실 그에게는 많은 저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나를 포함한) 독자는 많지 않다. 단편적으로 헨리와 가까운 호손은 <월든>을 두고, 끝까지 읽을 정도로 결단력이 있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웃픈 그의 말에 혼자 씁쓸하게 웃었다. 소로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아팠을 사실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재밌었던 건 소로가 친구로서 편하게 사귀기는 어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웃곤 했다.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하고,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념때문에 실생활에서 종종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감정 기복도 커서 주변 사람을 당황하게 할 때도 있어 그의 진정성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겠구나싶다. 특히 그의 인생 말년에 갈수록 죽을지도 모르는 병약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소로의 열정은 아집일까? 신념일까? 아니면 자연에 흡수되고자 하는 욕구일까?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된다. 나의 개인적인 결론은, 인생에 단 한순간도 자연과 야생을 놓은 적이 없었고 땅과 자연과 상생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던 그를 떠올려보면 그것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자연을, 생명에 대한 경외와 사랑.
초월주의자, 자연주의자였지만 세속적 성공이라는 야망도 버리지 못했던 소로가 글쓰기에 압박감을 느낀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야심가였기에 때로는 대중에 맞추기도 했고 종종 자기 모순에 갈등했으며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자괴감에 빠져들었지만, 스스로 헤쳐나왔다. 소로를 이룬 것은 독서, 사유, 경험이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소로를 만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