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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은 2020년 <뉴욕 타임즈> 편집자들이 팬데믹 시대에 잠식된 시대성에 맞춰 이를 주제로 한 단편소설을 모으는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에 따라 29명의 작가들이 쓰고 <뉴욕 타임즈>에 실린 단편들을 묶어 발행한 앤솔러지 단행본이다.

마스크, 봉쇄조치,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단절, 발열체크. 방역.
2019년 하반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문제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됐음에도 한국의 독자이지만 충분히 납득하고 공감하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도시마다 봉쇄조치가 시행되면서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순차적으로 떠나자 아파트의 빈집은 점점 더 늘어나고 유령 건물처럼 황량해진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전염이 두려워 섣불리 대면하지 못하고 결국 생활고와 고립에 의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발열 증세만으로 잠정적 전염병 보균자로 의심받고, 단순 감기에도 의료 거부를 행사하는 의사를 원망하지 못한다.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건 일상이 됐고, 반가운 사람과의 악수와 간단한 포옹, 느긋한 산책은 사치가 되어가며 어느새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대화는 점점 더 불필요하다.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필요한 대화는 메신저를 이용하며 그 과정에서 언어의 사용 범위는 점점 축소되어 간다. 외부 활동이 현격하게 줄어들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오히려 갈등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역으로 '거리두기'가 무너진 가족 간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던 [친절한 강도]. 강도조차 전염이 두려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고립으로 외로움이 극에 달한 피해자는 비록 강도라도 '사람'이 반갑다. 아들은 말라리아로 죽고, 이웃은 에이즈로 죽었다. 자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죽기 전에 고독해서 죽을 지경이다. 외로움과 우울증이 바이러스에 실려 사람들을 잠식해 간다.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팬데믹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돈벌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노릇이다.
봉쇄조치와 방역 체계로 실업과 폐업이 늘어나면서 가난도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전염병은 취약 계층에게 더 잔인하다. 만성질환 환자들, 돈이 없어 필요한 방역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 지병이 있는 노인들,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노동자와 영세업자들. 전염병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전쟁터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팬데믹 시대. 우리는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버스클럽]에서는 고립과 단절의 시대를 살아갈 방법은 오히려 서로의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위안과 공감이며, 이 힘은 위기 극복과 변화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힘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염병에 의해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되면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럼에도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팬데믹 시대의 위기를 넘기는 방식은 팀워크, 연대에 있음과 이를 통한 희망을 전한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는 독자가 읽어도 괴리감이 전혀 없을 이 이야기들이 한시라도 빨리 과거의 한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와 깨달은 바를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304.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아닌 누군가,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그저 마스크나 창문에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얼굴이면 충분했다.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에서 / 줄리언 푸크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