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에두아르 마네 


그림이 일방적으로 관람을 당하는 차원에서 그림이 관람객을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마네는 보여주고 있다. 폴 세잔은 "우리의 모든 로네상스는 <올랭피아>에서 시작됐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써 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는데, 어느 분야든 새로움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틀을 깨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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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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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0년 <뉴욕 타임즈> 편집자들이 팬데믹 시대에 잠식된 시대성에 맞춰 이를 주제로 한 단편소설을 모으는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에 따라 29명의 작가들이 쓰고 <뉴욕 타임즈>에 실린 단편들을 묶어 발행한 앤솔러지 단행본이다. 








 
마스크, 봉쇄조치, 사회적 거리두기, 비대면, 단절, 발열체크. 방역. 
 


2019년 하반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단어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문제는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됐음에도 한국의 독자이지만 충분히 납득하고 공감하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들이다. 
 


도시마다 봉쇄조치가 시행되면서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순차적으로 떠나자 아파트의 빈집은 점점 더 늘어나고 유령 건물처럼 황량해진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전염이 두려워 섣불리 대면하지 못하고 결국 생활고와 고립에 의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발열 증세만으로 잠정적 전염병 보균자로 의심받고, 단순 감기에도 의료 거부를 행사하는 의사를 원망하지 못한다.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건 일상이 됐고, 반가운 사람과의 악수와 간단한 포옹, 느긋한 산책은 사치가 되어가며 어느새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가리는 것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대화는 점점 더 불필요하다.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필요한 대화는 메신저를 이용하며 그 과정에서 언어의 사용 범위는 점점 축소되어 간다. 외부 활동이 현격하게 줄어들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는 오히려 갈등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역으로 '거리두기'가 무너진 가족 간의 관계 회복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던 [친절한 강도]. 강도조차 전염이 두려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고립으로 외로움이 극에 달한 피해자는 비록 강도라도 '사람'이 반갑다. 아들은 말라리아로 죽고, 이웃은 에이즈로 죽었다. 자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죽기 전에 고독해서 죽을 지경이다. 외로움과 우울증이 바이러스에 실려 사람들을 잠식해 간다. [열린 도시 바르셀로나]에서는 팬데믹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돈벌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노릇이다. 
 
 
봉쇄조치와 방역 체계로 실업과 폐업이 늘어나면서 가난도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전염병은 취약 계층에게 더 잔인하다. 만성질환 환자들, 돈이 없어 필요한 방역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들, 지병이 있는 노인들, 일자리를 잃은 가난한 노동자와 영세업자들. 전염병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전쟁터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오는 팬데믹 시대. 우리는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버스클럽]에서는 고립과 단절의 시대를 살아갈 방법은 오히려 서로의 어깨를 빌려줄 수 있는 위안과 공감이며, 이 힘은 위기 극복과 변화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힘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전염병에 의해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되면서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그럼에도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팬데믹 시대의 위기를 넘기는 방식은 팀워크, 연대에 있음과 이를 통한 희망을 전한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는 독자가 읽어도 괴리감이 전혀 없을 이 이야기들이 한시라도 빨리 과거의 한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지금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와 깨달은 바를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304.
나는 누군가의 얼굴을 보기를 갈망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가 아닌 누군가, 내가 모르는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그저 마스크나 창문에 가려지지 않은 인간의 얼굴이면 충분했다.
('죽음의 시간, 시간의 죽음'에서 / 줄리언 푸크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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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22
찰스 디킨스 지음, 류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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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없이 누나 부부의 보호 아래에 살아가던 한 어린 소년이 느닷없는 행운으로 런던에 진출하면서 겪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성장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주인공 핍이 아닌 운명적으로 얽혀 있는 그의 주변인물들을 통해 당시 만연해 있는 사회 부조리와 개인의 욕망, 그리고 '신사'로 규정된 도덕적 잣대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먼저 미스 해비셤을 보자면 과거 자신의 불행에 대한 복수를 위해 에스텔라와 핍을 이용하는데, 에스텔라는 미스 해비셤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고 빚졌지만 정작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며 사랑만큼은 보답으로라도, 의무감으로라도 해드릴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정작 미스 해비샴이 원한 건 오직 사랑뿐이었다는 것과 에스텔라가 자신과 유사한, 원만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자 비로소 자책하는 미스 해비셤의 모습은 삐뚤어진 사랑과 그릇된 욕망을 보여준다. 
 
 
작가는 변호사 재거스, 매그위치와 콤피슨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매그위치는 양육자 없이 불우한 어린시절부터 거칠게 세상을 떠돌고,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지르며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고 그를 두려워만 했다. 반면 매그위치와 같은 죄를 저지르고도 콤피슨은 더 젊고 교육을 잘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매그위치의 절반 수준의 가벼운 형을 선고 받았다. 심지어 둘 다 탈옥했을 때에도 콤피슨은 가벼운 징벌로 끝났지만, 매그위치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해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되고 유배를 당하고 사형을 당하는 모습을 습관적으로 지켜본 아이들은 그러한 인생 곡선을 당연하게 여기고 똑같은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일정 부분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이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직업을 가진 변호자 재거스의 신념이 오로지 '돈'이라는 사실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재거스의 말을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나름의 정의를 수호하려는 웨믹은 사회의 악순환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와 모순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자아를 찾지 못하고 속물이 되어가면서 방황하는 핍이 비로소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각성하게 된 계기는 죽음을 목전에 둔 매그위치의 모습에서였다. 어린 아이의 작은 호의에 평생을 걸쳐 보답했던 그에게서 자신을 지켜준 조를 떠올리며 핍으로 하여금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간에 대한 순수한 호의와 진심이 삶의 소중한 가치임을 깨닫게 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조가 진정한 신사라는데 동의한다. 제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대장장이에 불과하고 어리숙해보일 정도로 착하기만한 그를 왜 신사라고 지칭할까? 조는 갈등 상황이나 문제가 생겼을때 그 원인을 타자가 아닌 자신에게서 찾는다. 이는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덕목이며 자책이나 죄의식과는 전혀 다르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 때만이 해결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타인이 아닌 '나'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핍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국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설의 결론을 놓고 봤을 때 결과적으로 결핍과 불행이 핍을 깨어나게 했다. 에스텔라 역시 오랜 세월과 연륜이 쌓이면서 삶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진부한 말이지만 그래서 인간에게는 결핍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싶다. 



핍은 신사 교육을 위해 런던으로 보내졌지만, 정작 런던에는 그에게 신사 교육을 시켜줄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핍이 진정한 신사의 모습을 발견한 대상은 돈이라는 욕망을 좇아 아첨과 가식으로 포장하고 약한 이들을 짓밟기를 서슴치 않는 상위 계급이 아닌 하층민들이었다. 배고프고 두려웠던 순간 자신에게 음식과 술을 건넨 소년의 측은지심을 잊지 않았던 매그위치, 핍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거창한 충고없이 따뜻하게 곁을 지켜준 조, 핍의 입장을 먼저 이해해 준 비니,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웨믹과 허버트. 그들이야말로 핍에게 진정한 '신사'의 길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었다.
 


비록 삶의 여정에서 때로는 휘어지고 부러지고 상처를 입어도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더 단단해진다. 아니러니하게도 때로는 절망과 불행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그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현재 우리의 삶에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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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이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도착한 수도원의 내부는 생활에 편리하게끔 깨끗하고 단정하게 현대식으로 정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캐서린을 불편하게 하는 요인은 틸니 장군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였고, 더구나 장군이 수시로 화를 내는 원인이 손님인 자신에 대한 예의때문이라는 사실에 긴장했다. 



 
깊은 밤, 혼자 고성 탐험에 나선 캐서린이 의문의 종이 다발을 발견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다음날 읽어본 내용은 고작 여자의 속옷 목록이었다. 캐서린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그려졌고, 그녀가 무척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숙한 여자로서 청혼을 받는 것보다 더 마땅한 열일곱 살의 모습이다. 
 
사람에게는 빈부를 떠나서 할 일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틸니 장군의 말에 동의!

(이 양반에게서 나와 공통점을 찾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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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귀스타브 쿠르베 
 
재미있는 점은 리얼리즘을 추구한 쿠르베가 <오르낭의 장례식>을 스튜디오에서 모델들을 세워놓고 구성해서 그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쿠르베의 말년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트린 브뤼노 브라케의 사진 한 장에 관련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시선으로 사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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