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전군표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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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계유정난을 시작으로 훈구파 세력과 대립하고 개혁정치의 뜻을 품었으나 재위 13년만에 죽은 예종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효옥은 단종 복위 사건으로 처형당한 사육신 성삼문의 딸로서 유일한 생존 혈육이다. 노비로 전락한 후 20년만에 면천된 그녀와 예종의 독살설에 상상력을 입혀 살려냈다.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삶의 목표가 다른 형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며 충신이 간신이되고 간신이 일시에 충신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지나치도록 알고 있기에 비록 허구지만 효옥의 삶에만 집중했다.  
 



 


계유정난 2년 후, 단종 복위가 세 치 혀 한 마디로 들통나면서 충신들의 목이 다 달아났고 남은 건 그들의 가족이다. 집안의 남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늙은 노모를 비롯한 모든 여자들은 노비가 되었다. 
 


성승 일가의 여인들은 열두 살 어린 효옥만 남겨둔 채 강물에 몸을 던졌다. 효옥은 운성위 박종우의 집으로 보내졌고, 자유의 몸이 된 순심과 바우 모자가 스스로 노비가 되어 효옥을 따라 박종우의 집으로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단단해져가는 바우는 그림자처럼 효옥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효옥은 어느날 찾아온 김시습 덕분에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한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됐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술 한 잔 올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스치듯 지나간 인연을 잊지 못하는 수양의 둘째 아들 황은 형이 죽은 후 세자가 된 이후에도 효옥을 챙겼다. 차라리 잊고 살았으면 좋을 인연이련만. 이를 안 정희왕후는 박종우를 불러 은밀히 효옥을 처치할 것을 지시하고, 세자와 왕후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은 제 아비의 심중을 핑계삼아 그의 아들 박선규가 효옥을 겁탈하려고 덫을 놓는다. 이에 바우와 몸싸움이 벌어져 박선규는 제 칼에 제 명을 단축하고 바우와 효옥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리고 새끼줄 꼬아 놓은 듯 끊어지지 않는 세 사람의 운명.
아직 여물지 못했고, 벼리지 못했던 개혁의 칼날은 젊은 그들을 향했다. 
 
 

 
 


역사 소설의 스포일러는 역사적 사실이며, 매력은 '그랬더라면'이라는 상상에 있다. 효옥과 바우가 원호의 말대로 애초에 땅에 스미듯 살았더라면, 혹은 예종이 좀더 치밀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더라면, 혹은 효옥이 그대로 명나라로 떠났더라면... .  

 
사대부 집안의 딸이 아닌 노비로 산 세월이 더 길었던 효옥은 이 소설에서 당시의 여성들과는 다르게 자주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도망자 신세가 된 후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양반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은세공 장인으로서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자신의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척하는 모습은 양반과 노비라는 두 신분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신분제의 모순을 직접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아침에 모든 가족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것도 모자라 노비 신세로 전락한 가혹한 운명 앞에서 효옥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당부한 대로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아버지의 바람은 복수도 원한도 없이 자신의 딸이 무명으로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여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지 삶이 아니었다. 오히려 효옥은 사대부 집안에서 벗어나고서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것 또한 모순이지 않은가.
 


소설의 마지막, 그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해 애달프고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져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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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와 비순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권예리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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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사생활을 자세히 아는 건 책을 읽는데 그닥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을 먼저 알고 글을 읽어서였을까? 그녀의 소설들이 썩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작가 콜레트가 스스로 자신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부하는 이 책을 만났다.  









 
소설 속 화자는 약물 중독자, 남장 여자, 여장 남자, 동성애자, 바람둥이 등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과 나눈 대화와 일화, 경험 등을 풀어놓는다. 화자는 콜레트 본인이다.  



작가는 여성 스스로 본능과 쾌락적 욕구를 인정하고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성에게 '진정으로'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전통적인 여성성을 거부하는 여자들에게조차 쾌락은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X'를 통해 남성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남자라는 특권으로 부여받은 쾌락을 누리지만 정작 여자들에게 순수와 정숙을 강요하는 이중성, 더불어 사회적 신분이 낮다하더라도 남녀의 성관계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은 늘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작가는 소설에서 '정신적 자웅동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정신적 중성을 추구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르게리트와의 대화를 통해 남자에게는 여성성이, 여자에게는 남성성이 정신적으로 일정 부분 내재해 있다고 말한다. 남성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가랑이를 벌리고 말을 타기를 원하는 여자가 있듯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아름다운 시나 풍경에 감동하는 남자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괴물로 단죄되는 자웅동체' 취급을 하며 성의 특성을 규범화시켜 강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성,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이 (형식적으로나마) 성차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양성평등이 익숙할 만큼 '성평등'에 서투르다.  
 


동성애자였던 시인 르네 비비앵이 독주를 마시고, 느닷없이 자취를 감추고, 울음을 터뜨리고, 지칠때까지 걷고, 실신 상태로 잠을 자고, 결국 알콜 중독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지독한 슬픔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사랑보다는 쾌락을 이야기했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파괴했던 시인 르네 비비앵, 그녀가 궁금해졌다.


이성애에서는 공감받지 못하거나 혹은 홀로 남게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동성애에서 오는 감정은 관능이 아닌 동족성 또는 유사성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이러한 주장은 세상의 편견과 비난에 맞서며 연인으로서, 동반자로서 51년을 해로한 엘리너와 세라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두 여인이 순수함을 저버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싸우겠다고 선언하는 화자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남편의 대필 작가였던 시절, 그녀 주의에 있었던 많은 남성들. 콜레트는 그들 사이에서도 동성애는 존재했고, 그들을 통해 동성애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견해가 '정상인'들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이들 무리에서 유일하게 여자로써 배제된 분위기와 고독을 즐겼으며 이를 '순수'라고 불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혼자 두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아마 자발적 고독과 수동적 외로움은 분명이 다르기 때문일 터다.   


작가는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성에게도 남성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겼던 탐닉과 쾌락의 욕망이 있고, 성적으로 늘 우월하다고 여겨졌던 남성들 또한 여성과 크게 더 나을 바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성별을 떠나 인간은 누구나 타인에 대해 순수와 비순수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으며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쾌락과 성적 욕구가 반드시 비순수는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한데,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  
 


그녀는 마지막으로 반려동물과 어린 아이를 들어 인간이 자유와 사랑을 대하는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포획자에 가까운 우리 인간이 반려 동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유를 주어야하겠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위안과 애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이 주는 구속과 구속에서 벗어나고픈 자유에서 갈등하는 우리의 모순.  
  


작가, 무용가, 배우, 언론인 등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았던 콜레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도덕 관념으로부터의 해방과 여성의 쾌락적 욕구와 성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 무엇보다 사랑이든 질투든 삶에 열정을 다하라는 것.  


이 책을 덮음으로써 작가의 다른 작품을 재독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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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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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 고립과 단절의 시대에 읽어봐야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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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제임스 휘슬러 
 


색채와 음악이 더해진 탐미주의자 제임스 휘슬러. 잭슨 플록을 연상시키는 (블랙과 골드의 녹턴 : 떨어지는 로켓>은 추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였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재판으로 경제적.정신적 타격을 입은 휘슬러는 초상화에 몰두하지만 초상화 역시 전통적이지는 않았다. 끝없이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탐미주의자,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휘슬러가 (블랙과 골드의 녹턴>이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면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인생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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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메리 커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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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커셋을 읽기 전에 앞서 '조화'에 있어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르누아르는 여성 예술가에 대해서 같은 입장을 취한다. 자기의 그림에서 여자를 아름답게 그렸던 그는 여성 예술가들을 '괴물이자 다리 다섯 달린 송아리'라고 편견과 차별을 가득하 담아 표현했다. 같은 예술가가 이럴 정도고, 가족 이외의 남성에게는 모델을 부탁할 수 없고, 여성 혼자 길을 다닐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 당시 여성 예술가들이 현실에서 부딪혀야 할 벽이 얼마나 높았을지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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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습에서 메리 커셋은 육아 및 가정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일상을 그림에 담아 인상주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화가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갖힌 여성의 위치를 은연 중에 비판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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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여성은 못생겼고, 반대로 예쁜 여성은 지적이지 못하다'는 사회적 편견은 최근에 들어서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는 계속되고 있다. 뜨끔하는 분들,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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