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국부론 - 번영과 상생의 경제학 리더스 클래식
이근식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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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애덤 스미스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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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3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애덤 스미스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의 유산 덕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고, 14세에 그래스고 대학에 진학해(당시로서는 14세에 대학 입학은 보통이었다) 허치슨에게 도덕철학을 배웠다. 허치슨은 데이비드 흄과 더불어 당시 영국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선도한 저명한 철학자였다. 그에게서 자연적 자유, 자연볍, 정의, 이성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핵심 주장을 배웠으며 스미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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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했으나 강의가 부실해 독학으로 그리스.로마의 고전과 문학을 공부하다고 목사가 될 생각을 접고 23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몇 년간 사설 공개 강좌를 열어 수사학, 법학, 문학, 경제학 등을 강의했는데, 이 강의 덕분에 명성이 높아졌다. 이 시기에 철학자 흄과 알게 되어 이후 세상을 뜰 때까지 둘은 학문적으로, 인간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사설 강의를 계기로 그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옮겨 도덕철학(신학, 윤리학, 법학, 경제학을 포괄)을 강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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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 서른여섯 살에 첫 저서인 <도덕감정론>을 출판했는데, 스미스는 이 책을 평생 동안 가다듬어 모두 6판을 출간했으며 마지막 판은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을 <국부론>보다 더 자랑스렵게 생각했다고 한다. <국부론>은 가정교사로 있을 당시 2년이 넘는 여행 도중부터 집필을 시작해 10년 동안 수정을 거쳐 죽기 바로 전 해인 1789년에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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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스미스의 개인 사생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은데, 그의 일생에 대한 짧은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말 흔치않게도, 흠잡을 데 없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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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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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리다테스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루푸스가 스미르나에서 보낸 서신이 도착하기 전까지 로마에서는 아시아 속주의 대학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로마가 루푸스의 서신을 통해 접한 소식은 빝니아를 비롯한 아시아 속주와 에게 해 제도, 델로스가가 미트리다테스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그리스는 폰토스와 동맹을 맺어 로마에 등을 돌렸으며 마케도니아는 홀로 고립된 상태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노예를 포함한 로마 시민 15만여 명이 학살당해 땅에 묻히지도 못한 채 방치되어 썩어간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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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스의 침략 문제를 두고 술라와 마리우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술라는 이제 막 이탈리아 전쟁을 끝낸 로마의 국고는 바닥난 상태라서 전쟁을 치를 자금이 없기에 군대를 출정시킬 수없다는 것이고, 마리우스는 외세의 침략에 돈 타령만 하고 있다며 술라를 비난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전쟁 자금은 미트리다테스가 치르도록 할테니 자신이 이 전쟁을 맡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리우스를 포함한 단 세 명의 의원을 제외한 원로원 의원들은 술라에게 미트리다테스와의 전쟁 지휘권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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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우스는 우아하게 지휘권을 술라에게 넘겼어야 했다. 차라리 아프리카에서의 예언을 듣지 않았다면 나았을텐데. 수석 집정관 술라는 이제 대놓고 독살을 운운한다.  그나저나 무슨 법안이 이토록 쉽게 상정되는지. 어디는 몇 년 째 입법부에서 계류 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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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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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항상 깨어 있어라.




이 책은 고故 김진영 교수가  아도르노의 철학 에세이 <미니마 모랄리아>를 토대로 그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고찰한 강의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소재ㅡ꿈, 사랑, 행복, 자본주의, 선물, 외모, 도덕, 사치, 육체, 남성, 여성, 불면, 두려움, 고독, 삶, 죽음 등ㅡ들로부터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상처와 진실들과 마주한다.   




 




 
읽는동안 저자의 쉬운 해설과 말씀으로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된 채로 맴돌았던 것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 책이 무척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저저가 어떤 명제를 놓고 니체식 바르트식 벤야민식 아도르노식으로 해석해 설명하는 것이 묘하게 흥미롭다.
  



강의 내용 중 저자가 가장 현실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강자와 약자의 연대가 실패했을 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애 대한 극명함이다. 이를 통해 지식인들의 우월감을 넘어 육화되어버린 부르주아 기질을 꼬집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나 교양에 있어서 점점 고급화되어가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면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스노비즘 사회라는 지적에 공감했다. 결국 개개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다.



깊이 동의하는 부분은 소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전제와 소유는 나와 타자, 나의 사물의 관계 맺기이며 내 호주머니에 접어넣는 게 아닌 관계를 맺는 것이 진정한 소유라는 점이다. 오늘날 나와 타자와의 관계는 경쟁구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모든 시장적 합리성, 경제 관념, 교환 원칙, 등가 원칙 속에는 복수와 원한의 정신이 작동하고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문명을 가꾸어왔으나 그 끝에서 야만인이 되었다는 아도르노의 글에 부정하기가 어렵다.



​불행이 일반화되어가면서 어지간한 불행은 불행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사회는 점점 더 차가워진다. 우리 사회에서 부끄러움조차 없어지면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 롤랑 바르트의 인상적인 사유는 노예로 살면 이렇게 생기게 되는구나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만드는 노예주의 얼굴이 어떤지 알 수 있다는, 즉 노예의 얼굴은 주인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유를 통해 진정한 지식인의 얼굴은 세상을 닮은 얼굴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는데, 따라오는 생각이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얼굴이 결국 나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테크놀로지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인간성 상실을 들어 이제와서 퇴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를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테코놀로지의 꿈을 기억해내는 일이며 더불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허파로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도 와 닿는다. 우리는 배려와 위로가 쉽지 않으며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실제로 우리는 위로에 얼마나 서투른가). 나는 진심을 담는다해도 자칫 섣부른 위로가 될 수도 있기에 위로와 배려는 주고받는 어떤 입장에서도 참 조심스럽다. 그리고 배려를 배려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라면 이렇게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에 동의한다. 위로가 상처를 부르는 세상. 오직 가치 획일화 문제만일까? 저자의 말씀에 혜안이 있다.  


"그 사람의 상처를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예요. 절대로 사랑이 먼저가 아니에요."



아도르노에게 인간적이라는 것은 유보 없는 행복이다. 아도르노가 볼 때 야생적이고 맹목적인 것은 쾌락이다. 유보 없는 행복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관계의 성찰이다.
 

 

'산다'와 '살아 있다'는 다른 것('살아 있다'는 그냥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고, '산다'는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다)이라는 아도르노의 지적이 박힌다. 나는 그냥 사는 걸까, 아니면 살아 있는 걸까. 강자와 약자, 싸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문명의 꿈이었지만 현실은 착취와 억압과 차별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습관화된 반응만 하는 무감각 사회다. 정념 아니면 무감각, 그야말로 극단적인 두 가지만 존재하는 사회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는 개인이라는 약자에게 수행해야하는 것들을 지시하고 개인은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돌아가게 만드는 '객관적 권력'과 '성찰'이다. 오늘날의 삶은 물질에 의해서 완전히 종속된 삶이기에, 삶이 살아 있지 못함을 고찰하는 이 강의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버려진 것들의 고통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생을 파괴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씀대로 타인의 상처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주변을 돌봐야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자신의 상처 안에 오래 머물러 스스로를 성찰할 시간을 깊이 갖는 것을 우선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와 나르시시즘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성찰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당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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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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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관통했던 전쟁 안에서 드러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에밀 졸라의 글을 통해 만나는 그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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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호텔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2
마리 르도네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림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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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나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현재 뿐.

 
 






소설을 읽는 동안 늪지대의 습한 기운도 모자라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며 안개까지 드리운 장엄호텔은 그야말로 물속에 가라앉은 듯한 습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제목과는 거리가 먼 장엄호텔(원제 : ​Splendid Hotel)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낡고 노후됐다. 배관은 수시로 말썽이니 누수는 말할 것도 없고, 습한 지역 환경과 마감처리 부실로 주요 건축 자재인 목재는 구멍이 숭숭 뜷려있으며, 지붕 역시 비가 샐 것을 우려할 정도로 부실하다. 할머니가 미래 시장성을 내다보고 세웠던, 늪지대의 아름다운 풍경 속 하나였던 그 장엄호텔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엄마와 함께 떠났던 두 언니, 아다와 아델은 병약해지고 실패해서 장엄호텔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엄마의 죽음과 자신들의 병약함과 실패를 두고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원망과 비난과 힐난을 번갈아가며 쏟아낸다. 이 두 사람에게 공공의 적은 자신들을 살뜰히 보살피지 않는다고 여기는 동생인 '나'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엄마는 막내만을 남겨둔 채 두 언니를 데리고 떠났고, 살기가 막막해지자 돌아온 두 사람을 먹여살릴 뿐만 아니라 아다의 약값을 대고 그녀의 병수발을 든다. '나'가 혼자 동동거리는 동안 아델은 호텔의 남자 손님들과 노닥거릴 뿐이다. 힘들고 고단한 노동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얼핏 보기에는 더없이 밉상으로 보이는 아다와 아델의 삶도 순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나'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아다는 늘 어딘가 아팠다. 그래서 습한 환경에 취약하고 어디든 원하는대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고작해야 할머니가 묻혀있는 공동묘지 정도다. 배우지망생인 아델은 한 번도 이름이 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루지 못한 꿈에 미련이 남아 호텔에 돌아온 뒤에는 손님들에게 허영을 부린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이 없는 호텔을 견디지 못한다. 이렇다 보니 마음 속 어딘가에 분노가 켜켜이 쌓여있는 두 사람은 대상을 막론하고 그 분풀이를 쏟아내기 일쑤다. 아델은 어머니가 아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장엄을 떠났다고 말하고, 아다는 아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떠났다고 말한다. 이쩌면 이들이 상대를 계속 헐뜯는 이유는, 인생을 실패한 탓이 누구도 아닌 자신때문임을 알기에 누군가를 빌어 자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가 있다.

'나'는 아다의 병수발과 두 언니의 횡포를 군말없이 받아들이는데 두 사람에게 딱히 애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사람보다 장엄호텔을 우선한다. 전염병이 발생해 사람들이 병들어 악화되는 것보다 호텔이 악화되는 것이 더 걱정이다. 호텔의 불편 사항을 최소화하고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서이며 리모델링을 하기에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나'의 호텔에 대한 지극 정성은 마치 할머니를 부양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나'에게 있어 장엄은 가족이자 집이요 삶 그 자체다. 그에게는 오직 장엄호텔 뿐이다.  


어느날, 아델이 연극배우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무렵 한 극단주로부터 배역에 대한  최초의 답장을 받았다. 그러나 이 배역을 아델은 이 배역을 거절한다. 그녀의 오랜 염원이었는데, 왜일까?어쩌면 실패와 낙오에 익숙해진 아델에게 새로운 희망은 오히려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꿈이 좌절된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어쩌면 이 가족에게는 장엄호텔(할머니)가 다른 형태의 늪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전염병의 원인이라고 판단하는 쥐가 호텔 근처를 맴돌자 쥐덫을 놓지만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덫을 피해다니는 쥐들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나'의 자조에서 쥐는 두 언니를 비롯한 호텔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일컫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한 자신이 가진 모순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세 자매는 각자의 방식과 나름의 이유로 장엄호텔을 지키고, 호텔과 함께 노화한다.  




장엄호텔에 머물렀거나 거쳐갔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대들보가 무너지고, 할머니의 무덤이 두 동강 나고, 늪이 가족을 빨아들이고, 늪으로 인해 호텔이 고립되었어도, '나'는 장엄호텔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장엄은 끝까지 버틸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끝없이 고단하기만 한 이 삶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문득 지금 우리의 모습과 겹쳐졌다. 2년이 되어가도록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이 지긋지긋한 전염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며 견디고 있는가. '나'가 장엄호텔을 돌보듯, 고립된 호텔에서 단 한 명의 투숙객을 위해 호텔의 문을 열어 두었듯, 우리들 역시 우리의 삶을 유지보수하며 살아갈 것이다. 무사히 잘 버티어 보자.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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