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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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정신 사나운 므이쉬킨을 찾아와 한참동안 사설을 늘어놓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이볼긴 장군의 외도와 도박 습관을 감시하기 위해 그의 아내 니나를 동원해서 감시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레베제프. 진심으로 이볼긴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겠다는 의도인지 다른 내막이 있는지 그 음흉한 속내를 알 길이 없다. 므이쉬킨은 레베제프에게 제발 소동을 일으키지 말라고 당부한다.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이 짜증스럽기는 한가보다. 천사표 므이쉬킨이 짜증을 낼 정도면... .도대체 애초에 아무 관련도 없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어 고생을 자처하는지.... 
 
그나저나 도스토옙스키 선생,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엄청 수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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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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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는 나를 한없이 끌어당기는 우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 미소를 얻었어요. 
 
​ 
 
앞서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읽었기에 그의 말에 어떤 무게가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우울감은 병이 아니고, 우울증은 병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감'이든 '증'이든 현대인으로서 '우울'을 동반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싶다. 특히 요즘처럼 단절과 차별을 강제하다시피하는 세태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살기가 더 힘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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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 박보나 미술 에세이
박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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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현대 미술과 만나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들을 담았다. 현대 미술가인 저자 본인을 포함,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사운드, 그림, 노래, 텍스트 등을 결합해 포퍼먼스 예술을 선보이는 과정과 결과물들에 대한 사유를 담은 에세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옆으로 나누는 대화'다. 브라질의 개혁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생각에서 영감을 받아, 저자는 나무로 시작해서 14가지의 소재를 마치 손을 잡고 원을 그리듯 옆으로 옮겨가다가 열네 번째에 다시 나무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저자는 인간은 비인간 존재들을 제 입맛에 맞춰 재창조하고, 생태계 질서를 재구성하려 든다고 지적하면서 사람과 사람 뿐만 아니라 이 지구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유기적으로 엮일 수 있는 데에 예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예술은 사람 안에서, 사랑이 있는 공간 안에서 완성되며, 우리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물들은 인간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같은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생각해 보니 비생명체인 사물도 개인의 역사 안에서 사연을 담고 있다면 단순 사물의 위치를 넘어선 것임을,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지 않은가.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자면 먼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위치한 마서즈비니어드 섬의 사례인데, 1960년대 청각 장애 이주민들이 정착한 이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네 명 중 한 명에 이르자 청인 주민들까지 모두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주민 모두가 수화로 충분히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아무도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장애가  아닌 그냥 특정한 신체적 상태로 인식한다고. 그런데 미국 원주민의 역사가 그러했듯 이 섬 또한 참혹한 과거를 안고 있다. 청각 장애인에게 이상적인 장소라는, 유명한 휴양지라는 명성이 섬의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모든 공간은 삶의 흔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곳을 담은 예술품이 박제 된 그림일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 대목에서 앞서 읽었던 민정기 작가의 작품도 이와 같은 맥락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는 케이티 패터슨의 <미래 도서관>. <미래 도서관>은 노르웨이 숲에 천 그루의 묘목을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패터슨은 해마다 한 명의 작가를 초청해 원고를 청탁해 받는데, 그렇게 모은 원고는 나무가 다 자랄 때까지 공개하지 않고 봉인해서 오슬로의 공공 도서관에 보관한다. 글을 제공한 작가에게도 참 의미 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2019년에는 한국의 한강 작가가 다섯 번째 작가로 초대되어 원고를 전달하는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패터슨은 이 작업의 완성을 100년 뒤인 2114년으로 잡았다. 생각해 보라. 한 세기 동안 천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키우고, 백 명의 문필가들은 글을 쓴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자신의 완성된 결과물을 볼 수 없다. 패터슨은 이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해 식수와 원고 모집을 계속 해나갈 후원자들을 모집했다고 한다. 100년 뒤의 인류가 살아갈 세상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패터슨의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의미 있는 책을 만들어 서고에 보관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나무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저 앞만 보고 빠르게 달려나가는 인류에게 숨 고르기를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뽑혀나가는 나무, 잃어버린 새소리, 폭력과 혐오, 순혈주의, 동물권, 종차별, 진실과 거짓, 착취 된 자연, 소통, 정상과 비정상, 정체성과 개별성, 도시 난개발, 차별과 소외, 공간이 갖는 의미, 폭력적인 속도 등 생물과 비생물의 경계 없이 조화를 이루어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삶을 수직적 발달이 아닌 물방울이 떨어져 그 울림이 멀리 퍼져나가 듯 사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람한다.   




♤ 하니포터 1기로서 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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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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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세상 만물이 자신의 길을 가지고 있고, 세상 만물이 자신의 길을 알고서, 노래하며 가고, 노래하며 온다. 그런데 그 혼자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사람이건 소리이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며, 세상 만물과 아무 상관 없는 존재, 내팽개쳐진 존재이다.  

 
​ 
 
입폴리트의 논문(이라고 쓰고 고백이라고 읽는)을 보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성이 없음을 깨닫는 순간 존재 가치는 스스로 허물어지게 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어쩌면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라는 자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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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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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의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이 지극히 사랑했던 여인 마리옹 지슬렌을 잃고 그리움을 담아 쓴 에세이다.  



서문에서부터 지슬렌을 향한 보뱅의 애틋함이 절절히 전해진다. 지슬렌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16년간 지속된 그들의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녀를 사랑했던 시간에, 그리고 죽음으로써 그녀를 잃고 찾아온 상실조차 감사하다는 그는, 지슬렌의 죽음 안에 감춰진 고귀하고 순수함을 찾아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되짚는 글쓰기의 여정을 시작한다.  






 




삶이 침묵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처럼 지슬렌의 죽음도 보뱅에게는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보뱅은 지슬렌의 삶의 방식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  
 


사랑하는 이의 결혼을 지켜보는 보뱅의 마음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그가 대답한다. 한 가지를 잃었지만, 다른 하나를 얻었다는 그는 얻은 것에 무어라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단지 그것은 고갈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썼다. 그가 얻은 무엇일까.   
 


자유와 지혜와 사랑은 똑같은 말로서 각 단어가 다른 두 단어와 유리되면 알맹이도 의미도 없는 텅 빈 언어가 되어버린다고 얘기하며, 지슬렌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눈물과 웃음이라는 대목에서 그러한 유산을 남긴 지슬렌도, 떠난 자의 눈물과 웃음을 간직하는 시인도 아름답다.  
 


사는 동안 '사랑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을 끊임없이 찾았다는 지슬렌. 한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어쩌면 인간은 지슬렌이 찾았던 답을 찾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보뱅의 말처럼 다른 질문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어쩌면 전혀 없을지도.  
 


시인이 일컫는 젊음은 곧 삶이다. 완전무결한 삶, 절망과 사랑과 쾌활함이 뒤섞인 삶. 아이들이 자라고 독립해 나가면 혼자만의 고독을 누릴,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으나 그 고독을 채 누려보지도 못한 채 마흔네 살에 그 삶을 놓쳐버린 지슬렌과 함께 하는, 희망할 수 없는 삶을 희망하며, 지슬렌을 향한 그리움으로 그녀를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 보뱅.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죽음에 대해 얘기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는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그럼에도 시인은 그 고통을 사랑과 애도로 승화했다. 읽는 내가 더 슬프다.  
 


1951년에 세상에 나와 1979년 가을에 지슬렌을 만났고, 1995년 여름 그녀를 잃었다.  보뱅은 지슬렌을 만난 그때에 자신이 진정으로 깨어났다고 말한다. 16년 동안 지슬렌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남자였다고 말하는 시인.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이토록 무구하고 무한하하게 사랑할 수 있는지.  
 


그녀는 세상에 없지만 모든 일상에서 그녀와 함께 하는 보뱅은 죽음의 시간이 올 때까지 자신의 일은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뿐이며, 죽음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비로소 쉴 수 있다고 얘기한다.  
 


"만일 이 키스가 충만함과 끝없는 결핌에 입 맞춘 거라면, 결국은 모든 것에서 승리한 게 아닐까? (p51)" 지슬렌이 엽서에 남긴 이 글만으로도 보뱅이 왜 그토록 그녀를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다. 10년 후 지슬렌이 어디에 있을지 묻는 보뱅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쓰고 있는데, 정작 책을 읽고 있는 내가 과거형으로 쓰고 있었다.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이 에세이를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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