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멤버 '봄날아빠'는 과연 누구인가?
서영동이 저평가 되어 있다고 입이 닳다록 얘기하고 다니는 용근 씨, 혹은 아이들 교육시키기에는 더할나위 없다고 말하며 개원한 찬이 엄마? 그도 아니면  자신의 재산권 수호를 위해 사비도 마다않고 고군분투하는 안승복 씨? 






 




읽으면서 조남주 작가가 우리 동네에 사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 중개소 담합, 대중교통 노선 확장, 저평가된(거라고 주장하는) 집값 등 서울 외곽 지역 혹은 서울을 벗어난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얘기들. 더구나 소설에서처럼 언제부턴가 우리 아파트에서도 어지간한 설문 조사나 투표는 온라인을 이용하고 있어, 그야말로 리얼리티 끝판 소설이 아닌가 싶다. 
 


꽤 괜찮은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했지만, 사회에서 노후의 인력을 반기는 곳은 많지 않다. 그나마도 형편없는 박봉에 1인 만역을 감당해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다수의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갑질 사건에는 입을 모아 성토하면서, 정작 우리 주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대하는 모습은 신문 속, 뉴스 영상 속의 가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식상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와같은 소설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나의 유년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을 동시에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골목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놀다가 배고프면 누군가의 집에서 밥을 먹고, 물을 마셨다. 야자 혹은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간 귀가할 때 골목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뒤따르는 듯 싶으면 아무집에나 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선뜻 "OO아, 왜~"라는 말과 함께 바로 대문이 열리곤 했다. 꼰대마냥 라떼 타령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로지 내 자식만 귀하고, 손톱만큼도 손해는 보지 않겠다고 투지를 불태우고, (그게 무엇이든)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이 야박하고 삭막한 세상은 미세먼지 나쁨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을 쓰면서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다고 썼다.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야해야 할 일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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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이제 막 개발 제한 규제가 풀려 신도시로 변화를 시작한 지방 도시 산크리스토발에  1994년 10월 어느날, 느닷없이 서른두 명의 아이들이 나타난다. 아이들 중 절반 가량이 산크리스토발 인근의 도시와 마을 출신이고 나머지는 1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다. 구걸을 시작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아이들은 너댓 명 씩 무리를 지어 강도 행각까지 벌인다. 그리고 밤만 되면 사라지는 아이들. 리더도, 체계도 없는 이 무리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으며 어떤 존재인가?









작가는 처음부터 사건의 전말을 다 드러낸 상태에서 스토리를 전개한다. 밀림과 도시 산크리스토발의 극명한 대비를 시작으로 낯섦과 다름을 대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자 '나'는 느닷없이 출현한 아이들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주변에 있는 물건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부모의 집이나 자동차 등을 자기 소유라고 여기는 것처럼)인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어떤 물건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를 이름 혹은 호칭을 부름으로써 생기는 정체성과 연결해 얘기한다.  


작가는 32명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벌이는 강도 행각을 통해 정치권에서 통상적으로 행사하는 포퓰리즘 정치를 꼬집는다. 통제 불능 상태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한 뒤 자신의 정적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전형적인 방식,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다른 사건으로써 혹은 가십거리를 만들어 내어 민중의 시선을 돌리고자하는 기득권 층의 상습적 수법에 대해 직설적으로 일갈한다.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들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존재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현대인들의 집단 이기주의는 님비.핌비 현상을 통해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산크리스토발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들이다.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여우를 끌어와 '길들여짐'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어른)들이 관계를 맺지 않은(길들이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존재 가치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면서 서른두 명이 '아이'라는 사실보다 '이질적'인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소설에서 특이할 만한 설정은 32명 아이들의 말을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동안 사람들은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왜 거리에 있는지 아무도 그들에게 직접 묻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았다. 산크리스토발 사람들에게 그 아이들은 '사람'이 아닌 해결해야 할 '문제'였을 뿐이다. 한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단 소설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소설에서 결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마켓 습격 사건. 이 사건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저 떠돌이에 불과했던 아이들이 단 10분 만에 폭도로 변해버린 경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는, 아이들은 순수해야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순수를 강박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이미 순진하게 돌아가지 않고, 어른들은 좀 더 영악하게 살아내라고 무언으로 내몰면서 한편으로는 순진하지 않다고 여기는 아이들에게는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그러한 어른들의 이중적 행위로 인해 아이들은 일찍이 가면 쓰는 법을 배우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익숙한 부분은 슈퍼마켓 사건 이후 보수당 국회의원이 산크리스토발시의 현행 형사책임 연령 재검토를 요구하며 입안하는데, 이 법안이 청소년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내용이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초고속으로 통과된다. 이러한 모습은 사건이나 세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각도에서 진정성 있게 고민하기보다는 당장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현재에도 팽배한 정치권의 모습이다. 또한 슈퍼마켓 사건에 이어 발생한 사건에서 시장은 일련의 사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추궁 당하고 대중의 분노가 자신에게 쏟아질 것을 우려해 주변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시민회의를 불허하려고 한다. 포퓰리즘을 표방하며 전횡을 일삼는 시장에게 있어  사라진 아이들은 안중에 없다. 시장이 연설을 하기 위해 분노한 대중 앞에 서는 장면은 그동안 현대사 안에서 보아왔던 권력자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소설은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차별과 폭력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이 21세기 판 '파리대왕'으로 불리는 까닭은, 열세 살 미만의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인간의 폭력적 본능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회 체계 때문일 것이다. <파리대왕>이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 집단에서 우리 사회의 권력과 구조적 폭력, 전쟁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대립의 참혹함, 진정한 정의에 대한 고민을 고스란히 투영했다면, <빛의 공화국>은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32명의 아이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냄과 동시에 삐뚤어진 자화상을 볼 수 있다.  


화자가 밀림에서 유일하게 발견해 살아남은 소년 헤로니모에게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이 묻는 질문은 오직 하나, "다른 아이들은 어디 있지?"였다. 시급한 상황임을 감안할 때 잘못된 질문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면도칼을 손에 쥔 채 굶주린 열두 살 아이가 가장 먼저 듣고 싶었던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기적인 질문과 일방적인 발언으로 대화를 채우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열두 살 아이를 40시간 이상 재우지 않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 그것도 어른이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배신'의 연속성을 얘기한다. 우리가 신의를 저버리는 대상은 뉘려나.


그런데 혼란을 야기시키는 존재가 왜 '아이'일까? 소설의 후반부에서 화자가 바라본 아이들의 은거지는 태초에 인류의 문명이 태동하는 모습과 비유된다. 그곳은 그들의 집이자 관이자 나라였다. 언어를 비롯해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 아이들이 도달한 지점은 폭력과 간절한 구원이었다. 과장해서 보탠다면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핵을 무기삼아 겁박하는 인류가 현주소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다름하지 않다. 이 소설이 <파리대왕>을 떠올리게 하는 다른 장치는 마지막 부분에서 헤로니모가 들었다는 목소리와 입의 형상이다. '파리대왕'이 인간 내면의 공포와 어둠을 상징했던 것과 유사하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헤로니모는 왜 홀로 밀림에 있었을까.


우리가 감추고 싶은 가장 깊은 곳의 민낯을 들켜버린 것 같은 소설이다. 위로와 선善이 가진 한계, 그리고 그 기준은 어디쯤일까. 골딩의 <파리대왕>과 같이 읽어도 재미있는 읽기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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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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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7일, 다코타 슈퍼마켓 습격 사건이 일어났다. 오전 이른 시간에 슈퍼마켓에 나타나 들락거린 네 명의 아이들은 정오에 다시 와 주차장에서 놀다가 매장에서 음료수를 훔치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힌다. 경비원은 어린아이의 뺨을 계속 때렸고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경비원의 행동을 비난하는 이도 없었다. 백주 대낮에 어른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음에도 다코타 슈퍼마켓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과연 보여지는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누구일까? 음료를 절도한 소년일까, 어린 절도범을 잡아 사정 없이 폭력을 휘두른 경비원일까? 만약 이 지점에서 경비원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후 벌어질 참혹한 사건까지 진행됐을까? 그리고 과연 일벌백계가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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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공화국
안드레스 바르바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1994년 10월 15일, 출근하는 화자 부부의 눈에 차 사이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열 살에서 열두 살 가량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런데 아이의 눈동자 흰자위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는데, 구걸을 하는 아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눈빛과 미소가 화자에게 인상을 남긴다.  그 순간 화자는 그 아이와 자신이 어떤 연결 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이에게로 끝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아이들로 인해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자 그 비난은 사회복지과 과장인 화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이 소설이 왜 21세기 <파리대왕>으로 평가받는지 알 것 같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파리대왕>과는 무게 중심이 다르지만, 작가가 가리키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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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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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중 교수의 논문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를 깊게 만날 수 있는 기회. 더하여 그를 연구한 학자가 본 도스토옙스키를 따라갈 수 있을 듯 하여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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